[현장 참관기]기후 위기 시대, 미술은 무엇을 해야 할까
[현장 참관기]기후 위기 시대, 미술은 무엇을 해야 할까
  • 김경아 독립 큐레이터.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 승인 2023.12.1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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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뮤지엄 심포지엄,12. 1~3 리움미술관
‘인류세Anthropocene’의 새로운 지질 시대에 아이들 미래 위해 판단하고 행동해야
▲김경아 독립 큐레이터.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나는 사십이 넘어 두 아이를 낳았다. 오십이 넘은 지금 두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인생 선배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리라 예견했듯 아이들은 내 삶을 새로운 경지로 이끌었고 때론 인간으로서 충만감을 맛보게 해준다.

그러나 요즘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무쌍을 겪고 있노라면 내가 두 아이에게는 매우 못할 짓을 한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세계 곳곳에서 초대형 산불이 발생하고, 폭염과 폭우, 폭설은 전 지구적 상황이 되었으며, 빙하는 계속 녹아내리고, 바다에는 수많은 미세 플라스틱이 떠다니고 있다. 그 많던 벌은 찾아보기 힘들게 된 지 오래고, 미세먼지와 바이러스 때문에 마스크 없이 바깥 공기를 쐬는 건 1년에 며칠이나 될까. 지금도 이렇게 지구는 망가져 가는데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는 얼마나 더 망가져 있을까.

‘인류세Anthropocene’. 인간이 활동한 흔적이 지구 표면을 뒤덮은 시대라는 의미다.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은 파울 크뤼천Paul J. Crutzen이 2000년 지구가 새로운 지질시대에 접어들었다며 붙인 이름이다. 이 인류세의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기후 책The Climate Book》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뒤표지부터 앞표지까지 지구의 온도 상승을 연도별로 시각화한 가열화 줄무늬Warming Stripes로 디자인된 이 책은 그레타 툰베리가 103명의 세계 지성들과 함께 쓴 기후 위기 교과서다. 인류의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과학적 사실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우리에게 아직 미래를 바꿀 기회가 열려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썼다고 한다. “희망은 우리가 진실을 말할 때만 찾아온다. 과학이 우리에게 행동해야 할 근거로 알려준 모든 지식이 곧 희망이다.” – 주: 그레타 툰베리 외, 이순희 역, 《기후 책》(김영사, 2023), p. 204. 그러나 책은 첫 장부터 무시무시한 데이터를 쏟아내며 충격과 공포 속으로 날 몰아넣는다. 희망을 찾기 전에 홀로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진실의 무게에 짓눌린다.

▲지난 1일~3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샤넬 컬처 펀드와 리움미술관의 퍼블릭 프로그램'아이디어 뮤지엄' 심포지엄 전경.(사진=샤넬 제공)

이 때 리움미술관의 심포지엄과 만났다. 국내외 미술가뿐 아니라 철학자, 사회학자, 건축가, 디자이너, 큐레이터 등 다양한 문화 구성원들이 참여하여 기후 위기라는 시대적 조건 속에서 지구의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다양한 생태계와의 연대를 모색하는 자리다. 제목은 <생태적 전환: 그러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 샤넬 컬처 펀드(CHANEL Culture Fund)의 후원을 받아 ‘생태적 전환’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3년간 기후 위기와 지속 (불)가능성, 생태학과 여성, 교육과 돌봄 등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지점을 포착하는 연구 프로젝트 ‘아이디어 뮤지엄’의 첫 시도다.

지난 1일부터 3일까지 총 3일에 걸쳐 열린 심포지엄에서 가장 흥미로운 강연자는 사이토 고헤이다. 그는 인류세(사이토 고헤이는 ‘인신세’라고 부른다.)에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비약적으로 증가, 그로 인해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이 존속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한다. 근대화에 의한 경제 성장은 분명 풍요로운 생활을 약속했지만 인류세의 환경 위기로 인해 점점 명확해지는 사실은 얄궂게도 경제 성장이야말로 인류의 번영을 기반부터 무너뜨리는 주범이라는 것이다.

기후 변화가 급격히 진행되어도 초부유층은 지금까지처럼 방만한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생활 자체를 잃어버리고 살아남을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매게 될 것이다. 그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정치가나 전문가에게만 위기 대응을 맡겨서는 안 된다. ‘남에게 맡기면’ 결국 초부유층의 배만 불릴 것이다. 더 좋은 미래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이 당사자로서 일어나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해야 한다. 이 때 올바른 방향을 목표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올바른 방향을 알아내려면 먼저 기후 위기의 원인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원인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급격히 늘어난 시점이 산업혁명 이후, 즉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이후이기 때문이다. – 주: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역,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다다서재, 2021), p. 8.  

▲사이토 고헤이. 직접 현장에는 참석하지 못 하고 줌(ZOOM)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리움미술관,  ⓒ홍철기)
▲사이토 고헤이. 직접 현장에는 참석하지 못 하고 줌(ZOOM)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리움미술관, ⓒ홍철기)

사이토 고헤이는 마르크스 연구의 최신 성과를 발판 삼아 기후 위기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분석하는 와중에 만년의 마르크스가 탈성장 코뮤니즘에 도달했으며, 그것이야말로 인류세의 위기를 뛰어넘기 위한 최선의 길이라고 확신한다. 인류가 환경 위기를 넘어서서 ‘지속 가능하며 공정한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가 탈성장 코뮤니즘이라는 것이다.

SDGs도 그린 뉴딜도, 나아가 지구공학도 기후 변화를 멈출 수 없다. ‘녹색 성장’을 추구하는 ‘기후 케인스주의’는 ‘제국적 생활양식’과 ‘생태제국주의’를 우리 삶에 더욱 침투시킬 뿐이다. 그 결과 불평등은 한층 확대되고 전 세계적 환경 위기는 악화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일으킨 문제를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를 그대로 둔 채 해결할 수 있을 리 없다. 해결로 향하는 길을 개척하려면 기후 변화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해야 한다.

또한 희소성을 만들어내어 이윤을 끌어모으는 자본주의야말로 우리 생활에 결핍을 초래하는 주범이다. 자본주의 탓에 해체된 ‘커먼’을 재건하는 탈성장 코뮤니즘은 더욱 인간적이고 윤택한 생활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를 연명시킨다면, 우리 사회는 기후 위기가 일으킨 혼란 속에서 야만 상태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냉전 종결 직후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을 제창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거대 서사’의 붕괴를 선언했다. 하지만 그 뒤로 30년 동안 명백해졌듯이, 자본주의를 등한시한 냉소주의의 미래에 있는 것은 ‘문명의 종말’이라는 형태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역사의 종말’이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는 연대해서 자본에 급제동을 걸고 탈성장 코뮤니즘을 세워야만 한다. – 주: 사이토 고헤이, 김영현 역,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기후 위기 시대의 자본론》(다다서재, 2021), pp. 355~356.

에코백을 사거나, 텀블러를 들고 다니거나, 전기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 행동은 그린 워시, 즉 자본이 실제로는 환경에 유해한 활동을 하면서도 환경을 위하는 척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에 너무도 간단히 이용되고 만다는 대목에서는 사이토 고헤이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된다.

▲철학자 에마누엘레 코치아가 ‘태어남과 자연’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사진=샤넬 제공) 

에마누엘레 코치아(Emmanuele Coccia)는 영적인 뉘앙스까지 감지하게 만드는 독특한 강연자였다. ‘태어남과 자연’을 주제로 생의 집합으로서 자연, 그리고 생태 위기에 맞서 인간이 비인간 타자로서 지구와 맺는 관계와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했던 물질 및 생명의 순환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술관은 오감을 사용해 내일 이후의 미래를 상상해 보게 하는 곳이라는 코치아의 견해에서는 미술은 세계의 지진계라고 했던 아도르노의 말이 오버랩되었는데, 이어지는 토마스 사라세노(Tomás Saraceno)의 영상이 그것을 웅변했다.

▲토마스 사라세노 & 막시밀리아노 라이나 Tomás Saraceno & Maximiliano Laina,_'에어로센을 향해 파차와 함께 날다', 2017-2023 (진행 중).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76분 25초, 작가 제공, 사진: 스튜디오 토마스 사라세노. (출처:리움미술관)
▲토마스 사라세노 & 막시밀리아노 라이나 Tomás Saraceno & Maximiliano Laina,_'에어로센을 향해 파차와 함께 날다', 2017-2023 (진행 중). 단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76분 25초, 작가 제공, 사진: 스튜디오 토마스 사라세노. (출처:리움미술관)

<에어로센을 향해 파차와 함께 날다>는 사라세노가 2017년부터 현재까지 6년간 아르헨티나 원주민 커뮤니티와 협업한 결과물이다. 생태사회적 정의를 위한 연대, 그리고 그 지난한 투쟁을 아름답게 기록한 사라세노의 작품은 묵직한 감동과 함께 미술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인류세의 미술가는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재난 상황과 기후 변화에 얼마나 예민한가.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고통에 얼마나 촉각을 곤두세우며 반응하는가. 그것을 작품을 통해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느껴지지 않는 진동을 표현하는 지진계가 되고, 내일 이후의 미래를 드러내는 샤먼이 되는 게 바로 미술가가 아닐까 생각하게 해주었다.

▲포스트휴머니티 시리즈 창립편집자인 캐리 울프가 지구 온난화와 멸종 위기 가속화에 따른 동물과 생태계 보호에 큰 관심이 쏠리는 현상을 진단했다.(사진=샤넬 제공)

포스트휴머니티 시리즈의 창립편집자인 캐리 울프(Cary Wolfe)는 지구 온난화와 멸종 위기 가속화로 몇 년 간 동물과 생태계 보호에 큰 관심이 쏠리는 현상을 진단하며, 비인간 세계를 대변할 수 있는 법과 정책에 대해서 논의했다. 인간 중심주의로부터 탈피해 포스트휴머니즘의 미래에 종을 초월하는 인간, 동물, 사물과의 관계를 재정의하고 존재들의 개념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사진=리움미술관,  ⓒ홍철기)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사진=리움미술관, ⓒ홍철기)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대표의 발표 또한 매우 몰입해서 들었다. 활생과 재야생화의 기본 개념과 논의의 추세를 돌아보고, 문명의 대척점으로 여겨졌던 야생이 지금 우리가 추구해야 할 관점과 개념으로서 가지는 의미를 논의했다. 인간을 위한 활생, 방치가 곧 보존, 지저분함이 곧 자연스러움, 종의 다양성이 행복의 지표라는 문구들이 가슴으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