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컬렉션 비하인드] 소고기를 사 들고 번질나게 드나들며, 어느 주조장과의 힘겨루기. 박재호(3-3)
[윤태석의 컬렉션 비하인드] 소고기를 사 들고 번질나게 드나들며, 어느 주조장과의 힘겨루기. 박재호(3-3)
  • 윤태석 남평문화주조장 대표
  • 승인 2024.01.1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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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오매불망 하던 그 술의 가치 모르는 이들에게 언성 높여
▲윤태석 남평문화주조장 대표(예술감독)/문화유산국민신탁 자문위원
▲윤태석 남평문화주조장 대표(예술감독)/문화유산국민신탁 자문위원

(지난 호에 이어 계속) 그러던 차에 지자체와 손을 잡고 축제를 기획하던 어느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형님! 근대사 유물 많이 가지고 계시죠? 제가 초대할 테니 출품 좀 해주시죠? 복고풍(Retro) 감성이 뜨고 있어서 판매도 잘 될 겁니다.’ 그렇게 하여 술 수집 과정에서 모으게 된, 추억의 물건들을 싸 들고 축제에 나가게 되었다. ‘어느핸가는 13개의 축제에 초대받았습니다. 판매도 잘 되었지만, 초청비가 쌓이다 보니 꽤 목돈이 되었지요.’ 돈이 생기고 나니 가지고 있던 물건을 처분하지 않아도 되었고, 더 공격적으로 다양하고 희귀한 자료를 수집하는데 집중할 수도 있게 되었다. 한편, 지역축제를 지속해서 나가다 보니 그 지역 자료를 더 많이 가지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 교복과 교련복, 교표, 지역 전화번호부, 한약방이나 농협에서 만든 달력 등이었다. 여기에 앨범이 더해지니 어디를 가도 보여줄 게 풍성해 축제관계자들도 좋아해 주었다. 추억박물관도 이때 붙이게 된 이름이다.

그렇게 2년쯤 지난 늦여름 어느 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날도 목포에서 준비하고 있던 축제장에 물건을 한 트럭 싣고 가 출품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임실로 가려면 거쳐야 하는 길목 언저리에 있던 나주 그 주조장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동안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저녁 시간도 돼 밥도 먹을 심상으로 들르기로 했다.

주조장 근처의 한 식당 앞에 차를 세운 박재호는 주조장 건물을 오랜만에 살펴보았다. 역광 속에서도 주조장은 이전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당당히 서 있었다. 혹시나 해 주조장 주 출입문 쪽으로 돌아서는데 어수선한 사람 소리가 들려왔다. 주조장 본체와 창고를 가르는 골목은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이라 늦더위도 시킬 겸 그곳에서 술자리가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 젊은 사장과, 비슷한 또래의 남성 한 명이 앉아 술판을 가운데 두고 소란스럽게 한껏 목소리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닌가. 이제 제법 중년의 티가 나던 사장을 향해 박재호는 겸연쩍게 웃으며 인사를 청했다.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두 사람은 높아가던 언성을 뚝 끊고 박재호를 쳐다봤다. ‘누구시더라? 아! 사장님 왜 한동안 안 오셨어요. 마침 잘 오셨네요. 술 한잔하십시다.’

▲남평오일장과 중앙 상단에 보이는 남평주조장(60년대)
▲남평오일장과 중앙 상단에 보이는 남평주조장(60년대)

석양 하늘빛이 더해진 사장의 얼굴에는 벌써 취기가 붉게 올라와 있었다. ‘술 한잔 받으세요.’ 엉겁결에 건네받은 술잔 안으로 사장이 따른 술이 채워졌고, 박재호 역시 우선 반가운 마음에 채 앉기도 전에 술부터 받게 되는 어정쩡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자리에 앉아 막 술잔을 입에 대려는데 ‘사장님 혹시 이 술 드셔보셨어요? 오래 묵힌 술이라 그 맛이 기가 막힙니다.’ 통성명도 하기 전이었지만, 함께 있던 사내가 술병을 들어 박재호 눈앞까지 들이대 보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미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 속에서 술병을 자세히 보던 박재호는 그만 까무러치게 놀라고 말았다. 그토록 오매불망하던 그 술, 그 네 홉짜리 소주였던 것이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말은 차마 할 수 없었지만, 소장가들 사이에서 병당 기백만 원씩에 거래되는 그 술.

▲남평주조장 배달(70년대 중반)
▲남평주조장 배달(70년대 중반)

‘아니 가게에 가면 마실만 한 술이 널려있을 텐데 왜 이 술을 땄어요?’ 마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순간 박재호의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아니 왜요 있는 술 마시겠다는데…….’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으로 대들 듯 그 사내가 다시 헤집고 들어왔다.

갑자기 막걸리를 주문받았는데, 병이 떨어져 이 술병에 담아 팔려고 깠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그놈의 막걸리가 몇 푼이나 한다고. 이 술 두 병값이면 막걸리 수천 병과 맞먹을 텐데 말이다. 그 돈 가지면 이런 흙바닥이 아닌 룸살롱을 몇 번은 가고, 양주가 몇 병일 텐데……. 박재호의 속은 타들어 갔지만, 이 술이 왜 귀한지 왜 마셔서는 안 되는지를 더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저들이 알게 되면 이 술과의 인연은 영영 끊어진다는 사실을 박재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재호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다가 차가 있어 술맛도 제대로 못 본 채 허탈한 마음으로 등을 돌려야만 했다.

▲남평주조장 술독(1960년대 초)
▲남평주조장 술독(1960년대 초)

차를 세워놓은 식당으로 와서 식사를 주문하는데 식당 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우리 식당에 차 세워 둔 게 한참 전인 것 같은데 어디 다녀오는 거요?’ 주인의 퉁명스러운 그 말에는 왜 안 오지? 차만 세워놓고 가버린 건 아닌가? 하는 우려와 안도가 함께 묻어 있었다. ‘아 네! 요 앞 주조장 좀 다녀오는 길입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왜요? 술사시게? 우리 식당에도 그 주조장에서 만든 드들강먹걸리가 있는데.’, ‘아닙니다. 차가 있어서.’ ‘그럼 왜? 남평주조장, 그 뭐 볼 게 있다고…….’ 답이 없을 것을 알고도 던진 주인의 이 말마저 박재호에게는 야속하게 들려왔다.

주문을 받아 주방으로 들어가는 주인의 이 푸념 섞인 말이 차츰 흐릿해져 갔지만, 박재호의 얼굴에는 빈속에 글라스에 담긴 소주를 한 번에 털어 넣은 이의 쓰라림이 문신처럼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