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2023 토끼해에 걸었던 변화의 희망-무용계의 진보와 퇴보
[이근수의 무용평론]2023 토끼해에 걸었던 변화의 희망-무용계의 진보와 퇴보
  •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4.01.10 14: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경희대 명예교수

평화와 회복, 다산과 번성을 상징한다는 토끼(癸卯)의 해, 2023년이 저물었다. 평화 대신 전장이 확대되고 회복 대신 침체가 지속된 경제 사정, 최저 출산율과 최악의 기후변화, 상식이 무시된 채 양극화로 치닫는 정치판을 바라보면서 토끼해에 걸었던 기대가 역시나 실망으로 마무리된 해였다. 무용은 어땠을까. 2023년 무용계의 키워드(Key Word)를 ‘변화-진보와 퇴보’라고 읽고 싶다. 

세대교체와 얼굴교체
국립현대무용단(김성용)과 국립무용단(김종덕), 국립국악원무용단(김충한)의 수장이 새로 임명되고 강수진의 네 번째 국립발레단장 연임이 확정되는 등 국립 4개 무용단의 수장이 모두 바뀌거나 임기를 같이 하게 되었다. 국립발레단과 광주 시립발레단에 이은 세 번째 공립발레단으로 서울시 발레단이 설립된 것도 주목할 사건이다. 40대 단장이 임명되면서 국립단장의 연령대가 60~70대에서 40~50대로 낮춰졌다. 김성용은 취임 5개월 만에 신작 ‘정글-감각과 반응’을 발표하고 웨일즈국립발레단을 벤치마킹한 이름의 ‘댄스 하우스’를 독립 공간에 설치하는 등 현대 무용 선도기관으로서의 창의적인 발걸음을 내디뎠다. 김종덕은 내년 4월 공연될 ‘사자(死者)의 서’를 통해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서의 본격적인 검증을 앞두고 있다. 대학도 변하고 있다. 1세대 무용교수들이 대부분 교단을 떠나면서 MZ세대를 포함한 30~40대가 자리를 이어받는 추세다. 서연수(한양대), 김영진(숙대), 김형남(세종대), 김나이(성대), 정옥희(이대), 정재혁(한예종) 등 국내외에서 검증된 무용가들이 신세대 무용과를 대표하는 얼굴로 변하고 있다. 교수무용단이 누렸던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대학이 주류를 이루던 공연의 중심이 독립무용단으로 이동하는 환경에서 이들이 변화시킬 무용계의 미래가 기대되는 한 해였다.

페스티벌 전성시대-독립무용가들과 컨템퍼러리무용
서울과 지방의 공연 수가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한동안 중단되거나 축소 운영되던 페스티벌은 모두 살아났다. 4월의 한국무용제전을 필두로 대한민국발레축제(6월), 크리틱스초이스와 현대춤작가12인전(7월), 창무국제공연예술제(8월), 모다페와 SIDance(9월), 전국무용제∙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K-Balled World가 집중된 10월을 지나 11월의 서울무용제와 12월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SCF)까지 수많은 무용제가 올해의 캘린더를 빼곡히 채웠다. 차별성 없는 행사들이 걸러지고 신작 공연을 위주로 한 페스티벌에 국가지원금이 집중적으로 지원되는 변화를 수반한다면 페스티벌은 독립무용가들에게 신작 발표 기회를 제공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독립무용단의 활동이 두드러지면서 이경은(LKDance), 장혜림(나인티나인무용단), 김정훈(C2댄스), 김성훈 댄스프로젝트, 댄스프로젝트보라, 황수현, 윤별 등 개인무용단의 활동이 두드러진 해였다.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는 댄스시어터 사하르(지우영)의 광폭 행보 역시 눈에 띄었다.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도 ‘레미제라블’, ‘헤븐스 지저스’ 등 2편의 대형창작발레를 대극장무대에 올리는 저력을 보여준 노력이 인상 깊다. 국립단체로서 ‘종묘제례악’ ‘가무합설’ ‘일이관지’ ‘우면산별밤축제’ 등 대형프로젝트를 서울과 지방을 순회하면서 연이어 터뜨려준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거침없는 행보도 돋보였다. 국립무용단과의 정체성 차별화도 새해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창작물들이 컨템퍼러리화 하는 현상도 보였다. 증가하는 유료 관객 수와 활발해진 국제교류로 높아진 눈높이에 반응하면서 출중한 작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내가 관람했던 작품 중에서는 ‘SELF PORTRAIT WITH PUBLIC CORNER'(미나유)’, ‘정글-감각과 반응’, ‘활’(강효형), ‘지금은 미끄러지지만’(김용흠), ‘고립주의자’(이루마), ‘안녕, 나의 그르메’(정보경)등이 특히 인상에 남았다.

평론개념의 변질로 퇴보하는 평론계 
공연계의 진보와는 반대로 평론계는 오히려 퇴보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쉽다. 평론의 개념이 매체별로 다르게 인식되고 소수자에 의해 리뷰가 독점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11월호 4대 전문매체에 게재된 40여 편의 리뷰작품 중 30편을 두 평론가가 쓰고 있다는 것이 평론 과점화(寡占化)의 단적인 예일 것이다. 국내 모든 공연에 참석했다고 인증샷을 찍은 듯한 이런 형태를 ‘서베이식 평론’이라고 부를 수 있고 리뷰와 공연소개가 함께 게재되어 홍보인지 평론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운 특정 매체의 글들은 ‘홍보성 평론’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거래성 평론에 대한 우려도 비평기능을 약화하는 위험한 현상이다. 예술가가 자기 작품에 전력을 다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평론가도 정성을 기울여 정직한 리뷰를 쓰는 것이 마땅하다. 진심이 담긴 예술이 관객에게 위로가 되는 것처럼 진정성과 깊이를 갖춘 평론만이 예술가에게 힘이 되면서 평론의 존재가치를 주장해줄 것으로 믿는다. 변화의 희망으로 상징되는 청룡의 해 갑진(甲辰) 새해엔 정통(authentic)평론의 기능이 되살아나 무용전문매체들을 살찌우면서 공연계와 평론계가 함께 진보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