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국박 기증관 전면 개편…추사 '세한도' 5월5일까지 만날 수 있어
[현장스케치] 국박 기증관 전면 개편…추사 '세한도' 5월5일까지 만날 수 있어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1.12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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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점, 644평 공간 전시...기증관 개관 이후 19년만의 개편
기존 약 20인 기증품에서 114인 기증품으로 확대
이홍근 기증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병', 박병래 기증 '백자 컬렉션' 등
촉각 전시품, 음성 안내, 쉬운 설명 책자 등 문화취약계층 위해 노력
투명 OLED 패널을 활용한 배경 영상과 인공지능 전시안내 로봇까지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기증관이 새단장을 마치고 완전히 새로워진 모습을 공개했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윤성용)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개편된 기증관을 전시 투어를 통해 소개했다. 오늘(12일)부터 1671점이 전시된 644평의 공간이 관객을 기다릴 예정이다.

▲최신 기술을 접목시킨 전시 공간 모습 ⓒ김연신 기자
▲최신 기술을 접목시킨 전시 공간 모습 ⓒ김연신 기자

기증관의 19년만의 대변신

2005년 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하며 개관한 기존의 기증관은 그동안 389차례에 걸쳐 5,456점(전체 소장품의 11%)을 기증 받았음에도 다른 전시실에 비해 관람객 수나 관람객 만족도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실적을 보여 왔다. 이에 따라 개편의 필요성이 내·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제시됐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이후 2016년, 2017년 논의를 거쳐 2021년에는 개편을 확정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개편을 거쳐 마침내 얼굴을 드러낸 기증관의 모습은 기존과는 전혀 다른 형태다. 현재까지는 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한 총313인의 기증자 중 20인 가량의 기증품만을 전시하고 있었다면, 이번에는 114인의 기증품으로 대폭 늘리게 됐다. 공간 역시 최신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등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있었다.

이번 재개관 전시를 담당한 김혜경 학예사는 기증의 의미 및 가치 전달과 관람객들로 하여금 전시를 즐기고 재방문하게 하는 것 두 가지에 중점을 두고 전시관을 기획했다. 박물관의 전체 소장품 중 기증품의 비율이 11%에 달하는 만큼, 기증의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 2022년부터 2년에 걸쳐 기증자 영상을 아카이빙 했다. 기증의 의미와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수집가로서의 기증자와 기증에 이르는 과정에 주목했다. 2022년 12월에는 기증관 도입부에 해당되는 기증자실을 '나눔'을 주제로 '기증 오리엔테이션 공간'(기증Ⅰ실)으로 개조해 기증자의 이야기를 영상을 통해 만나볼 수 있게 했다. 

기증자의 이름을 따 기증자별로 기획한 11개의 전시실로 이루어져 있던 구조를 기증물에 담긴 서사에 집중해서 각각의 테마에 따라 공간이 구획되도록 '기증 주제 전시 공간'으로 개조했다. '기증 주제 전시 공간'(기증Ⅱ‧Ⅲ‧Ⅳ실)은 이번에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으로, ‘문화유산 지키기와 기증’, ‘기증 문화유산의 다채로운 세계’, ‘전통미술의 재발견’으로 나눠져 있다. 전시의 마지막에는 '기증 테마 공간'을 마련, 이번에는 2020년 손창근 선생의 기증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와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이 기증한 <수월관음도>를 5월 5일까지 전시한다.

개편된 기증관은 최신 기술의 접목이 눈에 띈다. LG디스플레이의 투명 OLED 패널을 활용해 전시품을 배경 영상과 함께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나눔의 길’에서는 전시품을 초고화질로 다각도에서 촬영한 영상이 재생된다. 다음달부터는 인공지능 전시안내 로봇 큐아이가 전시실에서 전시 구성과 주요 전시품을 소개하면서 관람객을 안내할 예정이다.

문화취약계층의 접근성 향상을 위해 전시실 입구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 패널과 음성 안내를 받을 수 있는 QR코드를 설치했다. 영상 공간에는 수어 영상과 음성 자막이 함께 제공되며, 곳곳에 배치한 쉬운 설명 책자, 전시 공간에서 기증 문화유산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촉각체험물 등을 통해 모든 관람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오리엔테이션 공간을 소개하는 학예사의 모습
▲오리엔테이션 공간을 소개하는 학예사의 모습

이야기를 담아, 기증자와 테마의 결합

오리엔테이션 공간은 기증 영상실과 기증품들이 어우러진 휴게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증품들을 단순하게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현대와 전통의 공존을 통해 풀어낸 공간이다. 영상을 감상한 후에는 '나눔의 길'에 접어든다. 나눔의 길에는 기증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패와, 은하우와 같이 기증자들의 어록과 이름이 스쳐지나가는 미디어 아트가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오리엔테이션 공간은 고 손기정 육상 선수가 기증한 '그리스 투구'(보물 제904호)가 전시된 전시실로 끝이 난다. 전시된 작품은 손기정 선수가 192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부상으로 받은 것으로, 1994년 기증됐다. 

기증 주제 전시공간의 첫번째 전시실인 '기증Ⅱ실'에 입장하면 <분청사기 상감 연꽃 넝쿨무늬병>과 <청자 퇴화 연꽃 넝쿨무늬 주자> 등 이홍근 선생의 기증품들을 마주할 수 있다. 이홍근 선생은 국외에 반출되거나 훼손되는 민족 문화재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수집해 모은 컬렉션을 전부 기증한 바 있다. 이홍근 선생의 대표 컬렉션인 도자 컬렉션과 서화 컬렉션을 이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어진 공간에서는 <백자 청화 난초무늬 조롱박 모양 병> 등 박병래 선생의 백자 컬렉션을 볼 수 있다. 골동품 수집에 관심이 많던 박병래 선생은 1973년 중앙일보에 '골동 40년'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던 글을 <도자여적(陶瓷餘滴)>이라는 서적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한 측에서는 선생이 어떻게 골동 수집을 하게 됐고, 백자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이야기를 담은 영상이 재생된다. 이후 나오는 환수 문화재들을 모아둔 공간 역시 여러가지 사연을 담아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가운데 놓인 금관을 중심으로 금속 공예품들이 전시돼있다.
▲가운데 놓인 금관을 중심으로 금속 공예품들이 전시돼있다. ⓒ김연신 기자

'기증Ⅲ실'로 이동하면 문방과 규방을 테마로 나뉘어진 공간이 나온다. 오른쪽에는 문방 문화유산을, 왼쪽에는 규방 문화유산을 배치했다. 문방 문화재로는 불교와 유교를 주제로한 서책들을, 규방 문화재는 코리아나 화장품 회장인 유상옥 선생이 기증한 화장도구 등 옛 여성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던 공예품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다음 공간 역시 대비되는 두 가지 테마로 분할했다. 일반적으로 따로 전시되는 경우가 많은 토기와 도자기들을 각각 좌·우측 공간에 함께 놓여 있다. 왼쪽에는 토기를, 오른쪽에는 도자기를, 가운데에는 조형성이 유사한 토기와 도자기들을 함께 전시했다. 반대편에는 기와 작품들이 걸려있다.

이동하면 흙 공예 작품이 주를 이루던 이전과는 다르게 금속 문화유산을 만나볼 수 있다. 이 공간 역시 왼쪽에는 형형한 한 황금빛의 금관을, 오른쪽에는 푸르스름한 청동 풍로를 배치, 대비와 조화를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후 석기와 판화가 전시된 공간으로 기증Ⅲ실은 끝이 난다.

창 밖으로 보이는 듯한 김종학 선생의 설경이 사랑방 가구와 함께 어우러진다.
▲창 밖으로 보이는 듯한 김종학 선생의 설경이 사랑방 가구와 함께 어우러진다.

접근성 위해 '기술'을 입다

기증Ⅳ실은 목공예품들로 시작된다. 300여점을 기증한 김종학 선생은 "간결함과 조형성, 절제된 아름다움이 마치 현대의 조각을 보는 것 같다"라며 특히 사방 탁자를 애정했다. 사방 탁자가 전시된 공간은 투명 OLED패널을 활용해 창문 밖으로 보이는 차경을 함께 연출했다. 김종학 선생은 사랑방 가구를 두고 자신의 설악산 설경 작품과 닮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한 이야기를 담아 창 밖으로 보이는 차경으로 김종학 선생이 그려낸 눈 내리는 풍경을 보여준다.

이어서 유강열 선생의 기증품들을 만날 수 있다. 유강열 선생은 전통 미술품들을 수집하며 현대 공예와 판화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 영감을 받게 됐다. 이 공간은 아뜰리에처럼 구성된 섹션과 선생이 영감을 받게 된 공예품과 그로부터 탄생한 선생의 작품이 함께 걸린 섹션이 눈에 띈다. 

▲유강열 선생의 기증품 중 작품에 영감을 준 공예품들이 작품과 함께 놓여 있다.
▲유강열 선생의 기증품 중 작품에 영감을 준 공예품들이 작품과 함께 놓여 있다.

마지막 공간으로 나아가기 전 벽면에서는 로봇 암(Robot Arm)을 통해 촬영된 대형 영상이 재생된다. 문화유산을 특수 촬영을 위해 고안된 최신 기술을 도입해 정밀하게 촬영한 영상으로, 다각도에서 디테일을 보여준다. 뒤편에는 손으로 만져볼 수 있는 촉각 전시품들이 일렬로 놓여있다. 문화 취약계층 접근사업의 일환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마지막 공간은 기증 테마 공간으로, <세한도>전시가 종료되는 5월 5일 이후에는 새로운 테마가 관람객을 맞이할 예정이다.

이날 진행된 질의응답에서는 "서화 작품의 비중이 적다"는 점과 "진열장식 배치가 관람에 어려움이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박물관 측은 "서화류는 4개월을 주기로 교체할 계획이다"라고 밝혔으며, "선반식 배치는 기증자의 수집 방식을 반영한 연출이나, 지적을 반영해 QR코드나 다른 대안을 통해 작품의 디테일을 볼 수 있도록 보완하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관에서 만나볼 수 있느냐"라는 물음에, 박물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의 경우, "현재 지방 순회 전시 중에 있으며 이후에는 해외 순회 전시가 예정되어 있기에  당분간은 전시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앞서 진행된 소감 발표에서 윤성용 관장은 "관람객들이 쉽고 재밌게 박물관을 찾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라며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기증관의 새 모습이 많은 관람객에게 닿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