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2024 시즌 12개 작품 공개…“안정감과 새로움의 하모니”
국립극단 2024 시즌 12개 작품 공개…“안정감과 새로움의 하모니”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4.01.2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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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석 <활화산>, 50년 만에 국립극단 무대로…윤한솔 연출 참여
천선란 SF소설 <천 개의 파랑>, 김도영 각색 X 장한새 연출로 테크놀로지 적용한 무대 첫 선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지난해 11월 김광보 단장 겸 예술감독의 임기가 만료됨에 따라 새로운 기관장 체제를 준비하고 있는 국립극단(단장 겸 예술감독 직무대행 오현실)이 올 한 해 선보일 12개 작품 라인업을 발표했다. 

올해 국립극단 라인업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새로움’이다. 작품 분류로 보면 고전, 레퍼토리, 근현대극, 창작신작, 해외신작 등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고려하여 균형감 있게 안배했지만,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과 첫 선을 보이는 작품 모두가 ‘새로움’을 지니고 있다. 

▲국립극단 2024 시즌 라인업
▲국립극단 2024 시즌 라인업

고전이 주는 안정감 위에 새로운 요소를 덧입혀 변주하다
<스카팽> <활화산> <햄릿>

2019년 초연 당시 주요 연극상을 휩쓸며 매 공연 매진을 기록해 온 <스카팽>(몰리에르 원작, 임도완 각색·연출)이 전 회차 ‘열린 객석’으로 4월에 찾아온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만큼, 장애인, 노약자, 어린이 등 보다 폭넓은 관객층이 열린 환경에서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다. ‘릴랙스드 퍼포먼스(relaxed performance)’라고도 불리는 ‘열린 객석’은 통상적인 공연과 달리 공연 중 관객이 자유롭게 입․퇴장할 수 있도록 객석을 열어 두며, 조도와 음향을 부드럽게 조절하여 눈과 귀가 예민한 관객들이 보다 편안하게 느끼도록 한다. 미동 없이 공연을 관람하는 ‘시체 관극’이 매너로 여겨질 만큼 관극 문화가 경직되고 있는 시대에,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공연을 즐기는 ‘느슨한 관극 문화’를 지향한다. 

5월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하는 <활화산>은, 1974년 국립극단 제 67회 정기 공연으로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초연됐던 작품으로, ‘한국 연극의 거인’ 故이해랑이 연출했다. 50년 만에 선보이는 국립극단의 <활화산> 연출은 극단 그린피그 상임연출이자 한예종 연극원 교수로 활동 중인 윤한솔이 맡았다. 윤 연출은 <두뇌수술>, <안산순례길>, <나무는 신발가게를 찾아가지 않는다> 등 사회적 메시지와 미학적 완성도를 추구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을 더해 생동감 넘치는 작품을 선보여 왔다. 이번 작품에서 윤 연출은 과거 한국 사회 생활상과 더불어 시대착오적이었던 모습을 유머러스한 감각으로 풀어내고, 등장인물 중 원작에서는 일부로써 다뤄졌던 아이들의 시선을 가미할 예정이다. 특히 2024년은 차범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해서, 더욱 뜻깊은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7월에 개막하는 <햄릿>(윌리엄 셰익스피어 원작, 정진새 각색, 부새롬 윤색·연출)은 ‘관객이 애타게 부르던 그 이름’이다. 2020년 제작 당시 배우 이봉련을 ‘햄릿’에 전격 캐스팅하여 화제가 되었으나, 코로나19로 관객과 만나지 못한 채 온라인 극장을 통해서만 몇 차례 공개되어 더욱 애틋하다. 화면 너머로 만난 무대임에도, 관객들은 편견을 깨부수는 이봉련의 파격적인 연기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3년간 꾸준히 국립극단 SNS에 재공연 요청 DM(다이렉트 메시지)이 도착할 만큼, 관객들의 관심과 갈증이 대단했던 작품이다. 이번에는 무대디자인과 의상 등 전체적인 비주얼 컨셉을 변경하여 새로운 미장센과 더 날카로운 시대성으로 관객에게 찾아간다. 

▲국립극단 창작공감 (왼쪽부터) 장한새 연출, 김연민 연출, 신효진 작가, 박지선 작가
▲국립극단 창작공감 (왼쪽부터) 장한새 연출, 김연민 연출, 신효진 작가, 박지선 작가

독창적인 시선으로 관객의 마음을 노크하는 신작 7편
<천 개의 파랑> <김연민 신작>(제목 미정) <간과 강> <사일런트 스카이>
 <은의 혀> <모든> <슈퍼 파워>(가제)

4월, 천선란 SF소설 『천 개의 파랑』이 연극으로 찾아온다. 연출을 맡은 장한새는 2023년 국립극단 작품개발사업 [창작공감: 연출]을 통해 7개월 간 ‘과학기술과 예술’이라는 주제 아래 리서치, 스터디, 특강, 자문과 워크숍 과정을 거쳐 로봇 혹은 비인간의 개념이 무대에 존재할 수 있는지 탐구했다. 장 연출은 모션 캡처와 입체음향 기술 등을 활용하여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희미해진 ‘연극적 메타버스’를 무대 위에 구현할 예정이다. 발달한 기술이 배제하고 지나쳐버리는 이들, 고도화된 자본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 부서지고 상처 입은 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이들을 내내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서사로 문학계에 돌풍을 일으킨 이 작품은 <왕서개 이야기>, <붉은 낙엽> 등으로 대단한 저력을 과시하며 활발한 극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김도영의 각색을 거쳐 무대 언어로 변모한다. 

2023년 [창작공감: 연출]을 통해 개발된 또 하나의 작품 김연민 신작(김연민 작·연출/제목 미정)은 7월, 관객 앞에 선다. 장한새와 마찬가지로 7개월의 작품개발 과정을 거친 김연민은 과학기술을 어떻게 ‘이야기’와 접목시켜 드라마를 만들 것인가에 주목했다. 인구 감소로 폐쇄조치가 내려진 소멸 지역에 전기 공급 중단이 시작된다는 설정 하에, 전기망으로 표현한 ‘소멸일기’를 소재로 기술 문명의 이기가 사라져가는 마을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위해 공간기록센서 기술을 공연에 적용하여 ‘기억’과 ‘장소’라는 화두를 던진다. 

2020년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한 <간과 강>(동이향 작, 이인수 연출)도 9월 무대에서 첫 선을 보인다. 일상에 지치고 무감각해진 주인공 'L'이 의학적으로 판명되지 않은 자신의 통증과 대면하는 이 작품은, 진화론을 통해 현대인의 인식을 지배하는 ‘공허’를 꺼내어 보여줘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짧은 대사들을 감각적으로 배치해 어딘가 익숙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신선한 재미를 선사할 예정이다. 섬세한 인물 해석과 군더더기 없는 무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인수가 연출을 맡아 새로운 무대 미학을 선보인다.

연말의 명동예술극장은 해외신작 <사일런트 스카이>(로렌 군더슨 작, 김민정 연출)가 따뜻하게 채운다. 로렌 군더슨은 아메리칸 씨어터지가 선정하는 ‘미국에서 작품이 가장 많이 무대화된 극작가 TOP20’에 매 시즌 상위로 랭크될 만큼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극을 집필해 왔다. 여성은 투표조차 할 수 없었던 19세기, 하버드 천문대 소속 천문학자 헨리에타 레빗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연극은 과학에 대한 열망과 개척정신으로 천문학을 바꿔버릴 만한 발견을 한 강인하고 총명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라이브 피아노 선율이 감미롭게 어우러진 매혹적인 무대를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슴 벅차는 이야기를 전한다. 

하반기 소극장 무대는 [창작공감: 작가]가 책임진다. 8월 무대에 오르는 <은의 혀>(박지선 작, 윤혜숙 연출)는 ‘돌봄 연대’를 키워드로, 기댈 곳 없이 살아가는 정은과 은수가 만나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주는 이야기를 통해 ‘돌봄’이 한 사람이나 가족의 희생을 통해 이뤄지는 낡은 가치가 아니라, 지금의 우리를 이어주는 적극적인 행동임을 이야기한다. 리듬이 살아 있는 맛깔난 대사와 랩 등 음악적 요소가 살아 있는 희곡은 서정적 터치와 명료한 연출로 두산연강예술상, 서울예술상 등을 수상하며 주목받고 있는 윤혜숙 연출이 맡았다.

10월에는 [창작공감: 작가] 두 번째 작품 <모든>(신효진 작, 김정 연출)이 무대에 오른다. 인류 인구가 20만여 명밖에 남지 않은 디스토피아적 근미래, 인간지성의 집대성인 AI가 전 가정에 보급된 세계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 방향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신효진 작가의 전작 <머핀과 치와와>에서 구축한 SF 세계관 안에서 또 다른 구역을 그리고 있는 후속작으로, 연출은 지난해 국립극단의 5시간짜리 역작 <이 불안한 집>을 통해 무르익은 연출력을 보여 준 김정이 맡는다.

청소년극 신작도 어김없이 준비되어 있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가 준비 중인 <슈퍼 파워>(가제)(박근형, 이미경 작, 윤혜진 연출)는 2022년 선보인 [트랙터]에 이은 두 번째 청소년극 단막극 연작으로, 청소년이 갖고 싶어 하는 힘과 초능력의 근원을 탐구하고, 우리 사회에 작동하는 힘의 원리와 위트 있게 연결하여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힘’의 실체를 풍자적으로 그릴 예정이다. 2012년 국립극단 청소년극 <빨간 버스>로 청소년극에 대한 인식을 넓힌 중견 작가 박근형과 <그게 아닌데> 등으로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인정받은 극작가 이미경이 참여하고, <X의 비극> 등으로 주목받은 윤혜진이 연출을 맡는다.   

해외 희곡을 소개하는 국제 교류
<제11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 <제7회 중국희곡 낭독공연>

3월, 이웃 나라 일본과 중국의 희곡이 명동예술극장에 찾아온다. 한일연극교류협의회(회장 이성곤), 한중연극교류협회(회장 홍영림)와 각각 공동으로 무대에 올리는 <제11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 <제7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우수한 현대일본희곡과 중국희곡을 낭독공연으로 소개한다.

<제11회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은 최근 일본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여 일본 현대 극작가의 세대적 흐름과 특성을 발견하고 양국 간 문화교류의 장을 마련한다. 부대행사로 마련되는 심포지엄은 일본 문화 및 연극에 관심 있는 관객에게 작품에 대한 새로운 환기와 심도 있는 관람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제7회 중국희곡 낭독공연>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우수 중국희곡을 소개하여 공연 가능성을 타진해 본다. 한중 연극계 간 의미 있는 교류를 지속하고자 시행해 온 사업으로, 소개된 작품을 민간 연극단체에서 본 공연으로 제작하기도 하는 등 양국의 문화 다양화에 긍정적인 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부대행사로 마련된 심포지엄은 동시대 주제를 아우르며 양국 연극인들의 교류의 장이 될 것이다.

▲국립극단 ‘스카팽’(2020) 공연 사진
▲국립극단 ‘스카팽’(2020) 공연 사진

국립극단 2024 주요 사업
<스카팽> <햄릿>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우리동네 작은극장> 지역 순회
‘리서치-아시아 청소년’쇼케이스 … 한국-인니 청소년 리서치 4년 갈무리
36개월 이하 영유아 및 보호자 대상 <더 어린 관객을 위한 극장>

2024년 국립극단은 지역 협력 방식을 다각화한다. 기존에 참여 기관을 공개 모집하여 선정하던 방식으로 <스카팽> 4개 지역,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 2개 지역 방문이 예정되어 있으며, 화제작 <햄릿>은 2개 지역문예회관과 공동제작 방식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또, 서계동 옛 국립극단 야외 및 실내 공간에서 운영해왔던 어린이·청소년 공연 축제 <한여름밤의 작은극장>은, 올해부터 <우리동네 작은극장>으로 확장하여, 지역 어린이청소년 공연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코로나를 헤치고 우직하게 진행해 온 ‘리서치-아시아 청소년’은 4년간의 리서치·작품개발 과정을 갈무리하며 쇼케이스를 선보인다.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간 한국-인도네시아 청소년 연계로 다양한 리서치 활동을 진행해 왔고, 2023년에는 참여 작가를 중심으로 작품을 발전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올해는 그간의 과정을 공유하고 도출된 작품을 쇼케이스 형태로 선보일 예정이다.

36개월 이하 영유아 및 보호자 대상 쇼케이스로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더 어린 관객을 위한 극장>은 올해 새로운 무대에서 더 많은 관객과 만난다. 2018년부터 영유아를 위한 공연예술 분야 활성화를 위해 연구와 창작 과정을 운영해 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기존에 개발된 작품 중 1~2편을 발전시켜 외부 기관과 연계하는 방식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2021년 11월 개관하여 누적관람자 12,757명(2023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순항하고 있는 온라인 극장은 신작으로 지난해 전석 매진을 기록한 <벚꽃 동산>과 국립극단 인기 청소년극 레퍼토리 <영지>, 올해 선보이는 <활화산> 등의 공개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벚꽃 동산>은 3월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영회를 개최하여 현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작품을 선공개한다. 또, 공연예술창작산실과 협업한 <견고딕-걸>, <인어: 바다를 부른 여인>을 온라인 극장에서 계속해서 만나볼 수 있으며, 다양한 단체와 협업으로 새로운 기획초청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글자막을 기본으로 제공하며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스카팽>, <벚꽃 동산>, <영지> 등 8개 화제작은 배리어프리 옵션으로 수어통역, 음성해설을 선택할 수 있다. 특히, <영지>는 농예술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대표적인 문화예술기업 ‘핸드스피크’의 농인아티스트들이 수어통역으로 참여하여, 좀 더 연극적이고 특별한 배리어프리 영상을 만날 수 있다.

오현실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직무대행은 “국립극단은 2024년에도 다채로운 층위의 작품을 소개할 수 있도록 라인업의 균형 감각을 유지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사업적 측면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 3대 혁신 전략 중 ‘국민의 문화향유 환경 혁신’을 위해 지방 공연을 다각화하고 정부 기조와 발맞추고자 한다. ‘최고의 예술, 모두의 문화’ 위해 보다 폭넓은 국민 및 예술가와 함께 하는 국립극단이 되겠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