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   서울시발레단, 21세기 ‘어버니즘’을 구현할 수 있을까
[성기숙의 문화읽기]   서울시발레단, 21세기 ‘어버니즘’을 구현할 수 있을까
  • 성기숙 무용평론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승인 2024.01.2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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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발레단 창단에 즈음하여, 진단과 조언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조엘 코트킨이 진단하듯, 도시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발명품이라 할 수 있다. ‘지리학자 이상의 학자’ 혹은 미국을 대표하는 도시역사문화이론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조엘 코트킨의 주장이 솔깃하게 들리는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도시의 생성과 발전의 키워드는 ‘종교와 정치, 경제 그리고 개방성’에 있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어떤가?

코트킨의 주장에서 보자면, 서울은 조선왕조 이래 종교와 정치의 중심지였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友社: 좌측은 종묘, 우측은 사직단)의 형국을 이룬 수도 한양(서울)은 신들의 영역이었다. ‘은둔의 왕국’ 조선왕조 오백년의 도읍지였고, 한말에는 서구열강이 패권을 다투는 제국의 수도였다. 근대화의 여정에서는 식민지의 ‘초췌한 그늘’에 머물렀으나 다른 한편으론 신문명(新文明)·신문화(新文化)가 만개한 이른바 ‘모던도시’로 존재감이 넘쳤다.

해방의 기쁨이 채 사라지기 전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으로 국토는 폐허로 변했고, 남북 분단 상황에서 피나는 노력으로 조국재건에 성공하여 절박한 가난으로부터 벗어났다. 대한민국 건국 당시 경제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서울의 면적은 넓어졌고, 인구 또한 급속히 팽창했다. 1960년 3백만 명이던 서울의 인구는 2000년에는 1천 1백만 명으로 늘었다. 2024년 현재 930만 명이 살고 있는 서울은 비교 불가한 거대도시로 성장했다. 도시 곳곳에 세계 각국의 이름이 붙으면서 ‘개방과 세계화’의 문턱에 도달한 것도 경이롭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서울은 정신적 충만과 더불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창작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유의미한 터전으로 손색이 없다. 서울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성(聖)과 속(俗)이 공존하는 유서 깊은 도시로 우리의 기억을 채우고 있다. 금융자본과 산업엘리트가 활보하는 서울은 하늘높이 솟아오른 빌딩숲, 선진화된 지하철시스템을 자랑하는 21세기 어버니즘(urbanism)의 전형으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즉 나날이 새로운 가치 창출에 나서고 있다.

어버니즘 관점에서 미국 뉴욕은 예사롭지 않은 도시임에 틀림없다. 20세기 뉴욕은 산업화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세계 도시문명의 첨단으로 우뚝 섰다. 최고의 ‘수직적 도시’로 발돋움한 뉴욕은 고층으로 향하는 미국을 상징하기에 충분했다. ‘세기의 건축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는 뉴욕 맨하튼에 대하여 “황혼이 내리면 유리로 된 마천루들이 불타오르는 듯 보이는 곳”이라고 썼다. 불타오르는 마천루에 각인된 뉴욕이라는 도시가 품은 웅장한 위업은 원대한 모더니즘 비전으로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그 중심에 러시아 출신 발레무용가 조지 발란신(1904~1983)이 있다. 그는 일찍이 뉴욕의 도시적 이상을 뉴욕시티발레단 작품에 투영하여 명성을 얻었다. 조국이자 제국 구러시아의 발레 전통을 신대륙으로 옮겨온 발란신은 신고전주의라 불리는 추상발레를 통해 미국 정신을 담아냈다. 조각 같은 선과 절분된 리듬, 기하학적 움직임으로 차갑고 냉담하며 극적이지 않은 새로운 스타일의 발레를 창조하여 기념비적인 성취를 이뤘다. 뉴욕의 마천루 빌딩에서 ‘빛처럼 차갑고 번쩍이며 단단한’ 미국정신을 발견한 것이다. 발레의 현대화를 통해 신고전주의를 완성한 조지 발란신은 뉴욕의 얼굴이자 뉴욕시티발레단의 상징으로 통한다.

서울의 도시적 이상을 예술로 구현할 수 있을까? 시울시에서 발레단을 창단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반가운 소식이다. 국립발레단(1962), 광주시립발레단(1976)에 이은 세 번째 공공발레단으로 출범한다는 점에서 사적(史的) 의의를 지닌다. 컨템포러리(동시대) 발레를 지향하는 서울시발레단은 기존의 국공립예술단체와는 다른 성격으로 창단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우선 10명 내외의 정예단원으로 구성되며, 공연 특성에 맞게 시즌무용수 혹은 프로젝트무용수로 운영될 방침이라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속단원을 최소화하고 시즌단원제로 운영된다는 점에 있다. 갑진년 새해를 맞아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단원 10명 모집에 126명이 응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관심을 확인한다. 예술감독 없이 안무가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점도 색다른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미 6명의 안무가를 낙점해 놓았다는 전언이다. 4월 프리 창단공연(트리플빌)에 이어 8월 창단공연(전막) 그리고 10월 정기공연(더블빌)이 준비되어 있다.

서울시발레단의 운영방식이 일종의 프로젝트시스템을 표방하고 있음은 다분히 흥미롭다. 조직체계와 운영방식에 있어 기존의 예술단체와는 차별화된 구상으로 설계된다. 이렇다보니, 서울시발레단 창단에 즈음하여 기대와 우려가 병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한국발레의 한계로 지적돼온 창조성의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점에서 반갑다. 무엇보다 발레단 창단을 통해 선진 문화예술 도시로의 위상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겠다는 서울시의 포부에 박수를 보낸다. 또 젊은 발레인재의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K-발레의 스팩트럼이 확장된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적지 않다.

다만, 예술감독을 두지 않는다는 방침은 다소 우려스럽다. 작품창작과 단체 운영을 책임지는 예술감독은 어떤 측면 예술단체의 간판이자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예술감독은 단체가 표방하는 예술적 이념 및 좌표의 구현과 더불어 안정적 리더십으로 조직을 충실히 운영할 책무가 주어진다. 이 모든 것을 일회성으로 선발된 안무자가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까?

나아가 발레라는 장르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시즌단원제 역시 효율성을 반감시킨다는 점에서 다소 회의적이다. 발레예술은 고도의 체계화된 매소드 훈련을 통한 최고 기량의 몸짓언어와 공연문법의 완벽한 체득을 전제로 한다. 특히 장기 지속을 목표한 레퍼토리화를 추구할 때 시즌단원제는 제한적으로 도입해야 할 운영방식이라 여겨진다. 또 매년 시즌별로 신규 선발하는 일회성 무용수로 정기공연을 충당하기엔 일정부분 한계가 있다. 서울시발레단이 명실공히 K-발레의 지구촌 확산을 목표로, 이른바 한류를 지향한다면 앞서 열거한 약점들은 제고의 여지가 있다.

서울시발레단은 21세기 도시적 ‘어버니즘’을 구현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라는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상징과 특성의 복합체들이 정교하고 세련된 발레 특유의 예술미학으로 승화되길 고대한다. 물론 서울이라는 지역성을 배제한 보편적 가치의 예술미학을 추구해도 좋다. 그럼에도 ‘서울시+발레단’의 성립이고 보면, 문화도시 서울의 도시적 어버니즘에 대한 갈망은 자연스런 귀결이라 하겠다. 뉴욕의 마천루를 차가운 이성으로 절개하여 추상발레 형식에 담아낸 신고전주의의 아버지 조지 발란신의 뉴욕시티발레단에 서려있는 예술적 이상과 그 존재론적 의의를 새삼 반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