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서울시향 협연’ 임윤찬 ‘황제’의 왼손, 2024년 문을 두드리다
[공연리뷰]‘서울시향 협연’ 임윤찬 ‘황제’의 왼손, 2024년 문을 두드리다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4.02.0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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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 취임 연주회, ‘황제’ㆍ‘거인’ 선봬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새 선장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을 맞이한 서울시향이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함께 첫 항해의 닻을 올렸다. 

지난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츠베덴 감독의 취임 기념 연주회는 임윤찬과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5번으로 문을 열었다. ‘황제’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은 열정과 감성을 동시에 담고 있는 장엄함으로 유명한 명작이다. 임윤찬은 지난 2022년 10월에 광주시향(지휘 홍석원)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이 곡을 연주한 바 있으며, 실황 음반으로도 발매됐다. 

▲지난달 25일 열린 서울시향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 장면 ⓒ서울시향
▲지난달 25일 열린 서울시향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 장면 ⓒ서울시향

이날 무대는 약관(弱冠)의 임윤찬의 성장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1악장 도입부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화음과 함께 등장한 임윤찬의 소리는 서울시향 단원들과 ‘하나’로 조화를 이뤘다. 강렬하지만 여유 있다는 감상은,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악기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자신의 해석을 더한 임윤찬의 자유로움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는 각자의 악보대로 화음과 트릴, 스케일을 질주하면서도 경쟁하지 않으며 아름다움의 질량을 높였다. 

1악장이 힘찬 새해의 시작과 같았다면, 2악장은 소리 안에서 유영하는 시간을 선사했다. 또렷한 음을 짚어내기로 유명한 임윤찬이 그려낸 수채화 같은 연주는, 마치 귀로 들리는 음악을 눈앞에 그려놓은 듯 투명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물 흐르듯 이어진 3악장에서는 잠시 막아뒀던 임윤찬의 기세가 아낌없이 터져 나와 절정을 이뤘다. 베토벤이 악보로 전한 음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제대로 전하는 임윤찬은 아름다운 메신저 역할을 톡톡히 했다. 화려한 스케일은 뭉개짐 없이 또렷했지만, 부드럽게 이어졌다. 선율을 따라 춤을 추며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를 보며 관객들 역시 그 순간에 함께 몸을 맡겼다. 연주가 끝을 향해 갈 때까지, 임윤찬은 관객들을 방심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같은 악보라도 다른 음으로 들리게 하는 그의 연주의 비밀은 ‘왼손 타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 구성에 익숙해질 때쯤 ‘꽝’하며 오감을 깨우는 묵직한 왼손의 두드림은, 타건 후 허공에 머물렀던 연주자의 손처럼 꽤 오래도록 마음을 울렸다. 2022년 연주 당시 천둥처럼 강하게 내리치던 음을, 이날 무대에서는 피아니시모로 시작해 점차 소리를 키우는 방식으로 변주하여 놀라움과 신선함을 동시에 안겨줬다. 

▲지난달 25일 열린 서울시향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 장면
▲지난달 25일 열린 서울시향과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협연 장면 ⓒ서울시향

연주를 마친 후 3층까지 꽉 찬 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쏟아지자, 임윤찬은 곧장 피아노 앞으로 가 망설임 없이 건반에 손을 올렸다. 앙코르는 오페라 <노르마>의 대표 아리아 ‘정결한 여신이여’를 쇼팽이 편곡한 버전이었다. 앞서 연주한 ‘황제’와는 또 다른 서정성을 객석에 선물하며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1부에서 임윤찬의 연주가 홀로 튀지 않도록 함께 호연한 서울시향은, 2부에서 구스파트 말러의 첫 교향곡 ‘거인’으로 정점을 찍었다. 삶과 죽음, 희망과 절망, 낭만과 이성을 한 데 담아낸 ‘거인’을 지휘한 츠베덴 감독의 손짓은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거침없으면서도 섬세했다. 파트별 악기들을 직접 연주하는 듯한 역동성은, 서울시향 전 단원을 모두 흡수하고 있는 듯하다는 인상을 줬다. 

특히, ‘클래식스럽지 않은’ 선율의 3장을 가장 인상적인 대목으로 꼽고 싶다. 동요 '마르틴 형제' (프랑스어로는 Frère Jacques)를 단조로 바꿔 장송 행진곡이 연상되도록 연주한 3악장에서는 작곡가 말러가 의도한 대로, 오묘한 부조화를 통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말러가 그리고자 했던 인생의 한 줄 요약이 아니었을까. 이어 4악장 피날레에서 현악기 연주자들의 하나 된 움직임 속 호른과 트럼펫 주자들이 일어서서 연주하는 대목에선 응집된 기운이 폭발하는 듯했다. 

▲지난달 25일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의 취임 연주회를 선보인 서울시향 ⓒ서울시향
▲지난달 25일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의 취임 연주회를 선보인 서울시향 ⓒ서울시향

츠베덴과 서울시향의 동행을 알리는 첫 연주는 ‘전석 기립 박수’라는 뜨거운 응원으로 시작됐다. 신아라ㆍ웨인 린 부악장과 임상우 클라리넷 수석, 안동혁 더블 베이스 수석 등을 비롯해 각 파트 간 섬세하고 치밀한 호흡이 빛났던 이번 연주회를 시작으로 앞으로 츠베덴과 서울시향 단원들이 어떤 선율을 만들어낼지 기대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