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나영수와 김미정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나영수와 김미정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4.02.02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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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김의경(제작), 박만규(감독), 최창권(작곡), 임영웅(연출), 한익평(안무), 나영수(합창지휘), 유경환(무대감독), 최연호(무대미술), 김미정(여배우), 강대진(남배우).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 뮤지컬은 존재하기 어려웠다. 

1995년 10월 26일. 한국뮤지컬협회는 제2회 뮤지컬의 날을 맞아 뮤지컬 발전에 공헌한 인물에게 공로상을 시상했다. 앞의 열 사람은 그 날 상을 받은 사람이다. 홍일점인 김미정은 강대진과 함께, 초창기부터 뮤지컬 배우로서 한 길을 걸어왔다. 나영수는 대한민국 합창을 얘기할 때도 제일 먼저 거론된다. 배우로서는 물론, 음악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했다. 

나영수와 김미정은 부부다. 재즈 보컬로 유명한 나윤선과 사진작가 나승열 남매의 부모이기도 하다. 20세기 두 사람이 초창기 뮤지컬에 끼친 공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 보인다. 

한국뮤지컬의 시작은, 예그린악단의 ‘살짜기 옵서예’라고 함이 타탕하다. 예그린악단은 1962년에 창단했다. 당시 516혁명(박정희 군사쿠테타) 1주년을 기념하면서 화려하게 창단했다.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나. 한 해를 넘기고 단명했다. 1966년, 김종필의 후원으로 예그린이 재창단했다. 박용구가 단장을 맡았고, 호현찬과 황운헌이 기획으로 등장했다. 이들에 의해서 ‘살짜기 옵서예’가 탄생하게 된다. 1966년 10월 26일부터 30일까지, 시민회관 (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예그린 재기 공연을 ‘살짜기 옵서예’를 올렸다. 

이 작품은 크게 성공한다. 이듬해 1967년 2월 22일부터 26일까지, ‘살짜기 옵서예’는 재연하게 된다. 주인공이 패티김에서 김상희가 바뀌었고, 후라이보이(곽규석) 김성원이 시민을 극장으로 오게 하는데 몫을 했다. 

그런데 실제 살짜기 옵서예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구동성으로 한 배우를 특히 칭찬했다. ‘빛나는 조역’이란 말은 여기에 딱 통하는데, 바로 나영수였다. 예그린뮤지컬에서 합창지도를 맡은 나영수는 무대에서도 매우 개성적인 역할을 해냈다. 이후 예그린은 ‘살짜기 옵서예’ 후속작 ‘꽃님이 꽃님이’를 공연한다. 예그린악단 단원인 문혜란이 주인공을 맡았다. 

1960년대 후반 이후, 대한민국 뮤지컬을 이끈 여배우 트로이카로 문혜란 장영애 김미정을 꼽겠다. 이들은 노래와 춤, 연기의 삼박자를 고루 갖추었다. 초기엔 문혜란이 큰 주목을 받았으나, 뮤지컬배우로 입지를 굳힌 인물은 김미정이다. 

1976년 12월, 음악팬클럽(회장 박용구) '이 달의 음악가'로 나영수를 선정했다. 국립합창단을 당당한 직업합창단으로 성장시켰고, 그동안 한국민요를 레파토리화하고, 한국작곡가의 작품을 발표한 공로를 인정한 것이었다. 나영수 지휘의 국립합창단을 통해서 ‘거문도뱃노래’와 ‘놀량’이 알려지고, ‘아리랑’이 합창음악으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나윤선의 아리랑은 이제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그 뿌리를 살피면, 거기에 한국의 민요를 서양 발성을 통해서 승화시킨 나영수가 있다. 예그린악단부터 국립합창단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국적 레파토리를 구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78년 4월.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예술제. 당시 ‘종합무대’라는 이름으로 개관 첫 번째 공연의 제목은 ‘위대한 전진’(4. 14~16) 박만규 구성, 김희조 작곡 지휘, 이기하 연출, 임성남과 문일지 안무. 프로듀서 허규. 손숙, 권성덕, 강부자, 정혜선, 민욱, 이정길 등 배우와 함께, 뮤지컬을 대표하는 배역은 김미정이었다. 

세종문화회관 개관기념으로 공연한 뮤지컬은 ‘결혼 삼중창’(6. 28~29). 이근삼 대본, 김희조 작곡 지휘, 허규 연출, 문일지 안무, 최연호 무대미술. 남자 주인공은 더블, 여주인공 원캐스트로 김미정이었다. 이 시기 김미정의 활약은 컸다. 

한국뮤지컬의 역사를 얘기할 때, 예그린악단과 살짜기 옵서예. 나영수 김미정 부부를 비롯해서 많은 배우와 스텝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뮤지컬의 효시로 누군가는 제3극장의 '새우잡이'(전세권 연출)를 꼽는다. ‘살짜기 옵서예’보다 앞서기에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곧 연극인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 작곡한 노래를 바탕으로 배우가 노래와 연기를 함께 하는 작품으로 따진다면, ‘새우잡이’ 이전에 그런 작품을 더 거슬러 올라가서 밝혀낼 수 있다. 

‘예그린악단’의 ‘살짜기옵서예’를 포함한 일련의 작품은, 이른바 뮤지컬을 제작하기 위한 크리에이티브팀이 존재를 했으며, 나영수 강대진 한상림 문혜란 장영애 김미정과 같은 뮤지컬배우로서의 기량을 충분히 갖춘 배우들에 의해서 공연했다는 사실을 잊어 선 안된다. 대한민국 뮤지컬발전에 크게 공헌한 나영수와 김미정 부부의 초창기 뮤지컬 얘기를 듣게 되는 자리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