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침묵의 언설 속에서 I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침묵의 언설 속에서 I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4.02.0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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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섭 미술평론가
▲윤진섭 미술평론가

Ⅰ.
 김근중의 그림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는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이후부터의 일이니 연조도 꽤 오래 됐다. 일찍이 70년대에 한국화를 전공했으나 지금은 딱히 한국화라고도 할 수 없는, 동서양이 혼합된 화풍을 구사하고 있다. 김근중의 화풍은 특히 재료 면에서 볼 때 그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가령 유채와 아크릴 칼라를 쓰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동양화 재료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화(동양화)를 전공한 그가 아크릴 칼라를 쓰는 것은 한국화(동양화)의 정체성 논의에서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다소 완고한 견해를 가진 사람은 김근중이 한국(동양)의 정신을 잇지 못하고 있다거나, 좀 심한 경우에는 오히려 훼손시키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대만 유학에서 돌아온 김근중이 국내 화단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기 시작한 80년대 후반은 포스트모더니즘 논의와 맞물려 이러한 문제들이 비단 한국화 분야뿐만이 아니라 화단 전체에 폭넓게 퍼져가고 있었다.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는 다름 아닌 삶의 문제라는 점에서 그런 논의들이 설득력 있게 스며들었다. 

이 지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까닭은 김근중이야말로 80년대 후반 이후 현재에 이르는 기간 동안 화단의 중심에서 문제작가로 부상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집중됐는데, 가령 [’89 서울현대한국화전](서울시립미술관, 1989)을 비롯하여 [젊은 시각-내일에의 제안전](예술의 전당, 서울, 1990), [한국현대회화전](호암갤러리, 1991), [현대미술 40년의 얼굴전](호암갤러리, 서울, 1991) 등등이다. 또한 이와 관련된 도서로는 1996년 시공사 발행의 <아르비방/ART VIVANT> 총서를 들 수 있는데, 총 55권까지 발행된 이 화집은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을 엄선하여 뽑은 것이다. 박석원, 심문섭, 이건용, 이강소, 구본창, 석난희, 고영훈, 이석주 등등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한국 현대미술사를 수놓은 문제의 작품들이거니와, 김근중이 이 총서에 선정된 것은 그 자체 그의 왕성한 활동에 값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아르비방 화집에도 잘 나타나 있는 것처럼, 이 책이 나올 무렵 김근중은 포스트모던적 경향의 실험에 깊이 빠져 있었다. 특히 80년대 초반 이후 한국화 분야에서 수묵화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던 사실을 감안하면, 김근중이 자신의 작업을 통해 보여준 채색의 세계는 매우 이색적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김근중 역시 80년대 후반에는 수묵화를 실험하기도 했다. 1987년 무렵의 <풍경>에서 1989년 경의 <오시화순(五時化順)> 연작으로 이행해 가면서 점차 추상화(抽象化)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른바 드로잉의 성격이 뚜렷하게 두드러지면서 유희적인 필획과 마치 자연 속에서 노니는 듯한(遊於藝), 동양화의 규범과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듯 자유롭고 분방한 세계를 드러낸 것이다. 

Ⅱ. 

앞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김근중이 90년대 초반에 화단의 주목을 받은 것은 아마도 당시 그가 구사한 프레스코화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일 수 있다. 이 무렵이면 한국화단도 수묵화에서 채묵과 채색의 시기로 상당히 전이돼 있었다. 김근중은 채색화 중에서도 프레스코라고 하는, 당시 한국화 분야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영역에 천착해 들어감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견지해 나가고 있었으며, 바로 이 점이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이 시기에 김근중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다양한 실험을 보여주었다. 여러 원천으로부터 온 상징과 기호들은 물론 금속편이나 짚 등등 서로 이질적인 오브제들을 화면 위에 부착함으로써 한국화의 순혈주의적 순수성을 거부하는 동시에 동서양에 대한 구분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펼쳐나갔다. 1990년대를 통해 제작한 <자연존재(Natural Being)>와 <원본자연도(原本自然圖)> 연작은 대만 유학시절(1983-6)에 고궁박물관에서 본 작품들의 영향과 고구려 고분벽화, 두 차례에 걸친 돈황석굴의 견학, 실크로드 여행 등등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 김근중의 작품에는 다국적인 출처를 지닌 파편적인 상징들이나 기호들, 식물의 문양,창, 투구, 새, 별자리, 상자, 말굽, 부처의 머리, 숫자와 언어 등등이 편재돼 있었다. 거칠고 투박해 보이는 화면 속에서 이질적이며 다양한 재료들이 충돌하면서 빚는 조화와 부조화, 협화와 불협화의 효과가 보는 자의 시선을 자극했다. 김근중은 돈황이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프레스코 기법을 화면에 도입함으로써, 마치 동굴벽화를 옮겨다 놓은 듯한 화면효과를 창출했다. 그리고 그것은 먹과 물의 관계에서 나오는 발묵, 파묵, 농묵, 담묵과 같은 수묵화의 기법에 전면적으로 도전하는 행위였다.  

당시 김근중이 기울인 이러한 류(類)의 실험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미술사적 평가를 위해서는 아마도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동서의 문화가 빈번히 교차하는 동시대의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엄격한 전통의 구각을 깨고 새로운 호흡을 시도하고자 한 김근중의 실험정신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Ⅲ.

2001년에서 2004년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된 <자연존재-내면의 방> 연작은 화면이 ‘미니멀’해지면서 평면성이 더욱 두드러짐과 동시에 화면의 다양한 마티엘이 주는 맛에 깊이 빠져든 흔적을 보여준다. 이 시기는 그 반동으로 나타난, 대략 2005년에서 2014년까지 지속된 <Natural Being(꽃세상, 원본자연도)>과 판연히 비교된다. 즉, 단순미에서 복잡미로의 이행이 교차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김근중의 작품은 구상과 추상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러한 교차는 크게 이 시기(2001-2014)와 뒤에서 언급하게 될 최근의 단색화적 경향을 통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김근중에게 있어서 모란과의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김근중의 전체작업에서 모란을 소재로 한 그림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김근중이 모란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 1학년 시절 채색화 수업을 통해서였다. 그렇게 처음 접한 모란은 2005년의 어느 날 한 민화전에서 본 12폭 병풍의 모란도를 통해 다시 충격적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