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히말라야권 샤만문화 사전답사 I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히말라야권 샤만문화 사전답사 I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4.02.02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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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인들의 '정월 초하루굿' 볼 기회 얻은 '복 많은 학자'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2000년 나는 뜻하지 않게 8월 말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규모로도 세계 제1 큰 <제15회 세계 실험연극제>에 초청을 받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떠났다.

극작가 고 박조열 선생님과 연극 평론가이며 서울대 문리대 선배님인 이태주선생님과 함께 초청에 응한 대망의 이집트 여행이었다. 아마도 ITI 세계 대회장이 되신 김정옥 선생님께 한국 연극인 초청을 의뢰했던 모양이다.

가서 들은 얘기이지만 그동안 카이로 실험연극제는 주로 공산권 나라들 중심으로 반쪽짜리 세계연극제였던 것을 최초로 서방 연극인들에게도 문호를 활짝 열고 최초로 명실공히 <세계 실험 연극제>로 발돋움한 한 해였다.

하지만 나의 마음은 온통 <히말라야권 샤마니카 페스티벌> 사전답사 진행건에 쏠려 있었기에 뜻밖의 횡재와 같은 이집트여행에도 그리 감사한 줄 몰랐다. 두바이를 거쳐 생애 처음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땅을 밟으며 나는 이집트라는 거대한 문명권의 땅으로 들어섰음에만 감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글은 내가 네팔과 티베트에 있는 무당을 만나러 가기 위해 진행하고 있던 사전답사 진행과 그 성사가 이루어짐에 따라 미지의 나라, 네팔을 찾아간 얘기와 네팔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던 티베트 샤먼불교의 절에 관한 얘기를 하려 한다.

또한 부탄을 가보기 위해 미리 아는 스님에게 부탁하여 초청장을 마련해 오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8일 동안 네팔 고유의 독특한 문화와 경이로운 풍광, 고풍이 창연하면서도 재건을 기다리고 있는 정겨운 목조건물로 들어찬, 단아한 네팔의 옛 수도 파탄의 정겨운 마당을 거닐고 있다.

어렵사리 유네스코 네팔 본부를 통해 추천받은 네팔의 학자를 대동하며 내게는 너무도 낯선 네팔문화에 매료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게 경이롭게 다가온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의 소박한 모습은 평화로웠다. 색다르게 전통복식을 차려입은 22개의 종족들이 평화롭게 어우러져 도시의 분위기를 다채롭게 수놓으며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이러한 분위기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겠다 할 정도로 평화롭고 안온하였다.

그러한 도시의 풍광을 즐기면서도 놀라웠던 일은 네팔인들이 정월이라 하여 <정월굿>을 하기 위해 각기 제 나름의 전통복식을 갖추어 입고 제각기 다른 풍악을 울리며 굿을 하기 위해 몰려 오르는 산정의 호수는 내 눈에는 작은 연못에 불과한 호수가 산 정상의 연못이었다.

나를 안내하는 네팔의 학자는 나를 보고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감탄하고 있었다. 본인은 유럽과 미국의 무속학자들을 여러 차례 안내하였지만 이렇게 네팔의 <정월 초하루 굿>을 안내해 본 적은 최초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부터 내 이름 대신 ‘복 많은 학자’로 불렸다.

신기하게 다가온 것은 엄연히 7월 중순인데 그들에게는 신년 정월이며 그들의 우기, 이 7월에 <정월굿>으로 신년의 행운을 빌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의아함은 그들의 설명을 듣고 독일 가서 독문학과 철학, 미술사를 공부하고 온 유식한 교수라고 칭송받던 내가 네팔인들이 ‘독자적 달력’을 갖고 독자적인 4계절의 운행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까맣게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의 무식함’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던 사실은 지금도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또한 미지의 나라 네팔에 와서 유독 내 눈을 경탄스럽게 열어준 것은 그들의 건축물을 장식하고 있는 서까래였다. 지붕을 받치고 서까래를 장식하며 버티고 있는 동물의 수컷 성기의 힘찬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건물의 맨 끝 처마에 뽐내듯 자랑하고 있는 말의 성기는 힘차고 당당함의 끝판왕이었다. 외설스러움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당당한 아름다움이 오히려 경이로웠다. 여기에 네팔인들의 성과 속을 받아들이는 철학의 근본이 서려있으리라 믿으며 나의 발걸음은 그다음의 놀라움을 위해 옮겨가고 있었다.

나를 안내한 22개 종족 중 가장 온순하며 협력을 잘하고,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타망족 출신의 안내인 학자의 긴 이름을 외울 수가 없어 그의 이름을 올리지 못해 유감스럽다. 그의 선한 미소 짓는 모습과 그가 사는 미음자 집의 가운데 마당을 놓고 빙 둘러 지어진 2층 건물에 친족들이 모여사는 모습이 지금도 역력하다. 마당 가운데를 통해 모든 삶을 공유하며 사는 모습은 정말 대가족제도의 또 하나의 독특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아름답고 정 겹게 다가왔다.

나를 초대했다고 하니 각 집에서 제각기 맛있는 독특한 음식을 한 가지씩 가져와 차려주어 훌륭한 대접을 받고 왔다. 타망족은 네팔 22개 종족 중 가장 불심이 강한 종족이라고 하여 그들은 그들의 챠크라 그림 속에 담긴 챠크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러한 문화체험들은 나의 제일 큰 임무인 무당을 만나기 위한 전초작업이었다. 여러 종족 중에서도 히말라야 산에 제일 가깝게 거주하는 셀파족의 무당 중 가장 용하다는 남자 무당과 여자무당을 만나는 날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 체험한 일정들이었다. 다음에는 두 명의 남, 녀 큰 무당을 만난 얘기와 그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면서 일어난 이야기들을 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