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 해외 순회 기념展 《소산비경 Sublime Beauty of Sosan》
박대성 해외 순회 기념展 《소산비경 Sublime Beauty of Sosan》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2.05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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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24, 가나아트센터 전관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전통 수묵을 현대적으로 변용해 동시대 한국화의 세계화를 이끈 소산 박대성(小山 朴大成, b.1945-)의 개인전이 열린다. 가나아트는 박대성의 해외 순회 기념전 《소산비경(小山祕境): Sublime Beauty of Sosan》을 내달 24일까지 가나아트센터에서 운영한다. 

▲박대성, 만월, 2022, Ink on paper, 125.5 x 100.5cm, 49.4 x 39.6 in. (사진=가나아트)
▲박대성, 만월, 2022, Ink on paper, 125.5 x 100.5cm, 49.4 x 39.6 in. (사진=가나아트)

이번 전시는 지난 2년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센터, 다트머스대학교 후드미술관 등 총 여덟 곳의 해외 기관에서 한국 수묵화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 작가의 행보를 돌아보고, 박대성과 한국화의 새 지평을 조망하고자 기획됐다. 

전시는 순회전 출품작과 최근 완성된 신작으로 구성했다. 박대성이 화업 전반에 걸쳐 천착한 주제와 소재의 가장 완숙한 형태를 선보이고, 해외 미술 현장에서 특히 찬사를 받은 박대성의 대형 산수화를 조명한다. 

박대성의 이번 해외 순회는 2022년 독일, 카자흐스탄, 이탈리아의 한국문화원에서 개별적으로 개최한 초대전으로 포문을 열었다. 이후 미국에서 2023년 말까지 계속되며 유력 경제지 포브스(Forbes)에서 소개해 이목을 끌었다.  

총 다섯 차례의 북미 일정 중 LACMA에서 열린 초대전은 본래 일정보다 약 두 달 간 연장 전시될 정도로 현지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어서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센터와 다트머스대학교 후드미술관,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찰스왕센터 및 메리워싱턴대학교는 전시 개최와 함께 심포지엄이나 강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특히 찰스왕센터와 메리워싱턴대에서 있었던 《Park Dae Sung: Ink Reimagined》는 박대성의 해외 전시로는 최대 규모로, 서른 점이 넘는 작품을 선보였다.

박대성, 불밝힘굴, 2024, Ink on paper, 100 x 80cm, 39.4 x 31.5 in.
▲박대성, 불밝힘굴, 2024, Ink on paper, 100 x 80cm, 39.4 x 31.5 in. (사진=가나아트)

존 스톰버그(John Stomberg) 후드미술관 관장은 “박대성의 작업은 한국 미술의 과거와 동시대 미학을 융합한다”라며, “박대성의 필법과 소재, 그리고 재료는 전통적이나, 동시에 그의 색채사용, 작품의 크기와 구성은 현대적”이라고 평한 바 있다.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역시 “박대성의 그림은 그만의 독창적이고 기백이 넘치면서 열려 있고 개념적 경계에 얽매이지 않는 작품으로 완숙했으며, 그의 시각적 진화는 ‘전통미술’과 ‘현대미술’ 등 양분화를 뛰어 넘는다”라고 말하며 소산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실험적 면모를 높게 평가했다.

박대성의 작품이 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데는 그의 작업에 깃든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한몫했다. 그는 수묵화를 기본 매개로 지필묵(紙筆墨)의 전통을 따르면서도 장르를 넘나드는 시도를 통해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했다. 

박대성은 기성 동양화론과 국내외 현대미술의 동향을 모두 섭렵하며 조형 실험을 거듭했다. 그는 정규 교육없이 산수화에 입문했음에도, 1969년부터 1978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大韓民國美術展覽會)에서 총 여덟 번을 입선했고 1979년 2회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등 활동 초기부터 화단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1974년 중국수채화회(中國水彩畵會)의 초청으로 방문한 대만고궁박물원에서 송, 원, 명(宋, 元, 明)시대의 작품을 실견한 것을 시작으로 그는 중국 북경, 계림, 연변 등지로 화문기행(畵文紀行)을 떠나거나(1988~1989년), 실크로드(1993년, 1995년)를 방문해 명산대천(名山大川)의 이국적인 풍경을 현장에서 스케치하는 등 창작의 바탕을 넓히는 데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특히 중국 화문기행에서 만난 중국 현대 산수의 대가 이가염(李可染, Keran Li)의 조언에 따라 먹과 서(書) 연구에 정진했으며, 현재까지도 박대성은 명필가의 서법(書法)을 습득하고 서작(書作) 원리를 배우는 임서(臨書)로 매일 아침을 시작한다. 이렇듯 전통의 범주 안에서 작업의 뿌리를 공고히 한 박대성은 1994년부터 1년 간 머무른 뉴욕에서 다양한 장르의 현대미술을 접하고는 한국의 수묵화를 현대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작업 중인 박대성 작가의 모습이다. (사진=가나아트)
▲작업 중인 박대성 작가의 모습이다. (사진=가나아트)

“히말라야부터 실크로드까지 전 세계를 여행하고, 
마침내는 뉴욕 소호에서 1년을 보내면서 현대 미술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때 하나의 작품에 여러 양식과 기법을 적용하고 싶어졌다. 
붓을 다루는 것은 자신 있었다. 계속 해왔던 것이니까. 
어색하게 내 작품을 서구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 작품에 다양한 기법을 쓰는 것, 그것이 내가 작품을 현대화하는 방법이다.” 

-박대성, 2019년 LACMA에서 있었던 브리타 에릭슨(Britta Erickson)과의 인터뷰 中

1995년 한국으로 돌아와 경주에 정착한 박대성은 신라 문화에 집중해 불국사를 비롯, 작업실 주변에 가득한 석불과 석탑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신라몽유도>(2022)를 보면 경주를 대표하는 유적들이 비례가 맞지 않을 정도의 큰 크기로 강조되어 있고, 한 데 모여 있으며, 실제 남산(南山)의 모습과는 다른 형태로 산맥이 단순화, 혹은 왜곡돼 있다. 

이는 박대성이 불적지(佛蹟地)가 많은 남산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택한 방법으로, 대상의 재현에 연연하지 않고 작품을 통해 특정한 발언을 하려는 시도가 녹아있다. 풍경의 면면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강조하여 자유자재로 재구성하는 방식은 추상화로 대표되는 서양미술의 언어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작가의 정신성을 표현하는 데 초점이 있었던 동양의 사의적(寫意的) 산수와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밖에도 박대성은 작업실이 있는 경주 삼릉의 풍경이나 경복궁과 같은 일상의 소재에 과감한 소산양식을 더해 <삼릉비경>(2017), <경복궁 돌담길>(2024)과 같은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낸다. 또한 <현율> 연작에서처럼 과장된 부감법을 사용해 역동적인 화면을 완성하는 등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사용해 산수화의 정형에서 벗어났다.

박대성은 이번 순회전에 대해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다. 일평생 ‘보이지 않는 뿌리’를 찾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그 진정성을 느낀 것이다”라며 소회를 밝혔다. 

한편, 이번 순회 일정의 가장 큰 수확은 다트머스대의 김성림 교수 주관 하에 네 개의 대학이 전시와 연계하여 발간한 도록이다. 한국화 작가를 미술사적으로 비교 분석한 최초의 영문 연구서로, 평론집 형식으로 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