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同樂의 시간, 신년음악회의 새로운 전형
[성기숙의 문화읽기]同樂의 시간, 신년음악회의 새로운 전형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4.02.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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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부 주최 “2024 설맞이 음악회 & 신년인사회”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을 앞두고 전국의 문화예술인을 비롯 관광인, 체육인 등 1,200여명이 한 공간에 모이는 뜻 깊은 행사가 개최됐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주최 “2024 설맞이 음악회 & 신년인사회”(2024년 2월 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가 바로 그것이다. 갑진년 청룡의 해를 맞아 우리 전통음악을 중심으로 신년맞이 덕담과 더불어 화합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풍성한 무대로 꾸며졌다.

행사는 크게 인사회와 음악회(공연)로 나뉘어 진행됐다. 막이 오르기 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로비에서 유인촌 문체부 장관과 장미란 2차관이 정성껏 관객을 맞는다.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한 관객은 장·차관의 환대를 받으며 새해덕담을 하기 위해 포토존에 선다. 명사들의 새해덕담 장면은 극장 안 스크린에 동시 상영되면서 극장 안팎의 정경은 장소의 경계를 넘어 실시간 공유된다. 공연시작 1시간 전부터 극장 밖 로비에서 진행된 ‘손님맞이 덕담 및 사진촬영’ 코너 역시 공식행사로 간주된다.

장·차관을 비롯 문체부 주요 관료들은 한복차림으로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여 화제를 모았다. 옥색 두루마기에 술띠로 포인트를 한 유인촌 장관과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올림머리를 한 장미란 차관의 모습은 단아하고 기품있다. 각자의 취향과 기호에 따라 각양각색의 색상과 디자인의 한복을 착용한 문체부 관료들의 모습에서 향유자 중심의 정책 구현 의지와 더불어 진심이 느껴졌다. 

흥과 신명으로 모두와 함께  

설맞이 음악회는 우선 환영의 서곡으로 ‘대취타와 길놀이’를 선보였다. 국빈 방문 행사에 환대의 의미로 연주되는 대취타를 배치한 것에서 관객을 귀하게 모신다는 의미의 정성을 엿본다. 객석에서 무대로 향한 사자춤의 역동성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했고, 풍물로 구성된 길놀이는 흥과 신명을 더했다.

이어진 소원성취의 바램을 담은 ‘비나리’는 잡귀서린 무대를 정화하고 갑진년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의미로 구성되었다. 국립국악원민속악단 채수현의 구성진 목청은 액운을 몰아내고 사악한 기운을 퇴치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금회촌에서 전승되고 있는 ‘금회북춤’은 영남지역 고유의 향토색 짙는 무형유산으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굿판이나 마을잔치에서 주로 걸립패들이 연행하던 북춤형식으로 춤사위가 퍽 이채롭다. 경상도춤 특유의 질박미가 돋보였고, 무엇보다 지역 고유의 덧뵈기 춤사위에 내재한 흥과 멋은 신명을 유도하는 귀한 마중물이었다. 국립부산국악원무용단이 이습(肄習)을 통해 전승한 ‘금회북춤’을 서울 무대에서 접한 것은 보기 드문 행운이라 하겠다.

양방언 작곡의 국악관현악 ‘프론티어’는 도전과 희망을 담은 연주였다. 우리 전통악기의 흥겨운 가락과 다양한 변주의 선율은 경쾌하고 진취적이다. 최경만이 작곡한 ‘태평소 협주곡 호적풍류’ 역시 다채로운 장단으로 감상의 묘미를 배가한다. 진중한 멋의 굿거리를 비롯 자진모리, 빠른굿거리, 당악, 세마치, 휘모리 등 경기시나위 가락이 총동원되었다. 특히 국립국악원창작악단 안은경의 태평소 독주는 공동체의 연대를 불러 모은 호방함의 당찬 팡파르였다.

삼천리 소리길 ‘남도창과 관현악’은 처음 시도하는 화합의 무대로 주목되었다. 국립창극단을 비롯 국립국악원 본원과 각 지역 분원 소속 연주자들이 한 자리에 섰다. 남도소리 중 육자배기, 개고리타령, 흥타령 등을 불렀는데, 남도창 특유의 흥취가 듬뿍 묻어난다. 정미정, 나윤영, 이주은, 정승희, 유하영, 신진원 등 무대에 선 젊은 소리꾼들은 기층에서 즐겼던 남도소리 고유의 신명을 한껏 끌어올렸다.

마지막 무대는 박범훈 작곡의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 3악장’으로 장식됐다. 사물놀이 농악 장단과 국악관현악의 조화와 협력이 돋보이는 최상의 연주였다. 이 곡엔 경기 이남지역 무속음악에서 신(神)을 모은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혼신을 다한 연주는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모으는 흥겨운 축제의 장으로 손색이 없다.

설맞이 음악회는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과 국립국악원(원장 김영운)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뜻 깊다. 국립극장 소속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창극단을 비롯 국립국악원의 정악단·민속악단·창작악단 그리고 국립민속국악원 창극단,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 국립남도국악원 성악단 등이 참여했다. 특히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를 가득 메운 국립국악관현악단과 국립국악원연주단으로 구성된 67명의 연합오케스트라는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처음 있는 일로 주목도가 높았다.

지휘봉을 잡은 예술감독의 열연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국립국악원창작악단 예술감독 겸 지휘자인 권성택은 강약과 완급이 조율된 임팩트 있는 지휘로 연주단을 호령했다. 마지막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 3악장’과 앵콜곡으로 마련된 ‘아리랑’은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겸 단장인 채치성 지휘자의 몫이었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연륜 배인 선 굵은 지휘로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장관의 ‘祝文’, 문화론적 함의 

반추하건대, 설맞이 음악회의 백미는 ‘축문(祝文)’ 낭독이었다. 축문이란, 공동체 구성원들이 제의를 행함에 있어 주관자의 의지와 소원을 신(神)에게 전달하는 내용을 문자언어로 기술한 글귀를 말한다. 축문에는 공동체가 기원하는 바램이 담겨있다. 전통의례에서 축문이 사용된 시기는 고려 말엽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유교식 예법이 수용되었으며, 축문 서식도 이에 따랐다. 축문을 읽는 사람을 일컫어 대개 독축(讀祝)이라 칭한다.

축문 낭독을 위해 유인촌 장관이 독축으로 깜짝 등장했다. 모두가 놀랐다. 두루마리 축문이 담긴 호족반을 직접 들고 무대에 등장한 유 장관은 두 무릎을 꿇은 자세로 축문을 읽어 내려갔다. “우리 모두에게 축복을!”로 운을 뗀 축문은 “바라옵건대, 땅과 바람과 물과 불을 잘 건사해서 땅의 작물에게 은혜로운 열매를 주고 강과 바다의 생물에게 생육번성과 백두대간의 수목에게 울울창창한 우거짐을 허락하고 우리에겐 부디 순탄한 날들을 주소서”라며, 천지만물의 존귀함을 설파함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했다.

저출산 늪에 빠져 인구절벽에 이른 위기의 대한민국을 위한 구원의 바램도 담겼다. “마을마다 갓난아기들이 신생의 울음을 터뜨리고 산모에겐 휴식과 아늑한 보금자리를 주셔서 인구절벽 같은 흉흉한 소문 따위가 사라지게 하소서”. 이어 “우리의 어린 것들이 무탈하게 자라게 하며 산업 현장에는 작은 재해조차 없게 하소서”라고 읊었다. 어린 새싹의 건강한 생장과 산업 현장의 무탈함 그리고 재해로부터의 안전을 염원했다.

“바라옵건대, 고갈된 영혼에 큰 영감을 내리고 저마다 창작의 열정으로 제 몸을 살라 백지와 캔버스를 풍성하게 채우고 우리의 악기들이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게 하소서.” “창작의 열정으로 밤을 불사른 노고로부터 전대미문의 역작들을 낳게 하소서. 바라옵건대, 문화예술계의 모든 이들에게 비범한 손과 독창적인 영감으로 가득찬 머리를 주소서”라는 대목에서는 창작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예술가들을 위로하고 경탄했다.

이렇듯 축문에는 사색과 고뇌를 양식 삼아 창조의 산고(産苦)를 자처하는 순수예술 분야 예술가들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한편, “우리의 예술창작으로 슬픈 자의 눈물을 씻기고 근심 있는 자의 근심을 덜어 주고 눌린 마음은 펴주소서” 라는 축문은 예술의 효용성과 더불어 예술창작의 가치 확산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게 읽힌다.

“우리 운동선수들의 아낌없이 흘린 땀과 각고의 다짐이 파리올림픽에서 큰 결실을 맺어 국위를 드높이고 우리의 근면함과 문화창조 역량을 만국에 떨치게 하소서”라며, 체육인을 위한 응원의 메시지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올해 프랑스에서 열리는 파리올림픽의 힘찬 선전을 기원했다.

설맞이 음악회의 축문은 인류의 생존과 지구촌 위기를 일깨우면서 마무리된다. “기후재난 같은 지구의 위기를 각성하게 하고 나라가 상서로운 기운을 타고 부강토록 하소서. 우리의 실패가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우리의 살림이 창대해지도록 축복하소서.”

유 장관의 축문 낭독 모습은 연극 ‘파우스트’에서의 독백 장면을 연상케 하는 등 기시감(旣視感)을 안겨줬다. 연기의 정석 혹은 전범으로 통하는 명배우답게 뚜렷한 발성의 낭독은 울림이 컸다. 심신을 정제하고 평정(平靜)한 가운데, 50년 세월이 빚어낸 독보적 카리스마로 1,200여명에 달하는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주지하듯, 축문은 하나의 메시지다. 천지만물의 존귀함으로 시작된 축문은 대한민국의 번영과 풍요 기원, 문화예술인·관광인·체육인의 헌신과 노고에 대한 응원과 격려, 그리고 인류생존과 지구촌 위기에 대한 각성과 함께 미래 희망적 전망을 담고 있다. 이렇듯 설맞이 음악회에서 낭독된 축문은 담대하고 융숭 깊다. 전통의례 속 축문 형식의 현대적 변용 혹은 극장의 공연문법에 걸맞는 새로운 전형 창출이라는 점에서 의미롭다. 

청룡의 기운으로 ‘글로벌 문화강국’을 꿈꾸며

문체부 주최의 2024 설맞이 음악회는 갑진년 푸른 용의 기운으로 K-컬처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스며들고 세계로 확산되어 문화강국으로 비상하는 대한민국이 되기를 기원한 행사였다.  문화예술인, 관광인, 체육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덕담을 나누고 전통음악을 감상하며 동락(同樂)의 시간을 가졌다. 문화예술, 관광, 체육을 포괄하는 부처의 정체성을 함축한 독창적 기획이라 평가된다. 또 일찍이 없었던 일로 주목을 끌었다.

각 분야 명사들이 전하는 신년 덕담은 희망찬 새해를 여는 값진 촉진제가 됐다. 예컨대, 신달자 시인은 새해 선물로 받는 ‘시간’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연극배우 박정자는 유인촌 장관이 동료이자 연극인임을 강조하며 집(국립극장) 떠난 국립극단의 집으로의 귀환을 청했다. 수영선수 박태환은 7월에 열리는 파리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기를 기원했다.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축사에서 언급했듯이 ‘세계인들이 대한민국 문화예술을 통해 한국을 받들어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이제 보편적 정서로 통한다. ‘지금·여기’, 우리는 일제강점과 해방, 6.25전쟁 그리고 산업화와 민주화 등 격동의 시기 거친 풍랑을 뚫고 맞이한 오늘의 대한민국이기에 더욱 감격스럽다. 그 중심에 문화예술이 버티고 서 있다.

최근 몇 년 우리는 코로나펜데믹으로 ‘침묵의 강’을 건너고 혹독한 시련의 터널을 지나왔다. 중세 흑사병(페스트)이 휩쓸고 간 이후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유럽의 근대화가 태동되었음은 역설적이다. 몇 년전 지구촌에 역병이 창궐하여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다수의 사회학자들은 코로나펜데믹 이전의 시대로 완전히 복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최근 문화예술 현장의 흐름을 보면 그 예측은 틀린 것 같다. 결정적으로, 문체부가 판 벌린 설맞이 음악회만 보더라도 예술인들은 코로나펜데믹 이전보다 더 뜨거운 열정과 기대감으로 가득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 총리실 문화정책 브레인을 지낸 세계적인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문화는 정의된 객체가 아니라 계속적으로 변하는 동적인 것”이라고 역설했다. 더불어 “세계화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도 긍정적인 힘”이라면서, 인류의 미래를 살찌우는 키워드로 ‘세계화’를 꼽았다.

급변하는 예술환경 속에 대한민국 문화예술이 나아갈 방향은 어디인가. 한류의 열풍 속에 K-컬쳐의 세계화 및 국제교류 가속화가 예측된다. K-컬쳐의 효율적 해외 진출을 위해 문화예술, 관광, 체육을 아우르는 정책의 연계와 기관 간 협력을 모색한다는 청사진이 반갑다.

2024 갑진년! 청룡의 기운으로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 빛나는 진정한 문화강국으로 재도약하는 원년이 되길 바래본다. ‘문화로 행복한 사회, K-컬쳐가 이끄는 글로벌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힘껏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