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바이너리 예술가가 보여주는 유기체의 순환과정…아트선재센터 《댄 리: 상실의 서른 여섯달》
논바이너리 예술가가 보여주는 유기체의 순환과정…아트선재센터 《댄 리: 상실의 서른 여섯달》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2.1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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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효소, 영혼, 조상과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과 협업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생태시스템을 화이트 큐브에 구축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탄생, 확산, 죽음 그리고 새로운 탄생에 이르는 생명의 순환을 탐구하는 작가, 댄 리(Dan Lie)의 첫번째 아시아 개인전이 열린다. 아트선재센터(관장 김장언)는 인도네시아계 브라질인이자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 댄 리(과거 작가명: 다니엘 리 (Daniel Lie))의 한국 첫 개인전 《댄 리: 상실의 서른 여섯달》을 내일(16일)부터 5월 12일까지 한옥과 더그라운드에서 개최한다. 

▲댄 리, 《상실의 서른 여섯 달》 전시장 내부 흙을 이용한 설치 작품 (사진=아트선재센터)

댄 리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상호 의존적인 교류와 자연스러운 변화의 주기를 찬미하며, 인간과 인간의 주체성을 탈중심화하고자 한다. 2022년 뉴욕의 뉴뮤지엄에서 선보인 개인전을 비롯해 카네기 인터내셔널, 싱가포르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며 국제 미술계의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작가는 박테리아, 곰팡이, 식물, 동물, 광물, 영혼 및 선조와 같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장소와 시간 특정적인 작업을 진행해왔다. 댄 리의 생태계는 변형, 부패, 진화하는 물질들을 시각화함으로써 다양한 존재들 간의 밀접하면서도 포괄적인 공존을 강조하고, 우리의 살고 죽고 분해되는 과정에 대한 공통적이며 지속적인 참여를 인정한다. 

"우리 인간은 다른 인간을 보는 것과 같이 다른 존재들을 존중하며 볼 수 있을까?" 

삶과 죽음의 사이클을 관찰하며 작가는 ‘공감’을 화두로 던진다. 그는 “비인간 행위자”들과의 지속적인 대화뿐 아니라 곰팡이학자, 후기인본주의 학자, 슬픔의 의식을 연구한 고고학자들과도 대화를 나누며, 인간 중심 세계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비인간 행위자들을 작품의 중심에 뒀다. 

▲화이트 큐브 미술관을 둘러싸고 있는 직물들. 울금으로 노랗게 염색했다. (사진=아트선재센터)

전시는 화이트 큐브 미술관을 유기체의 탄생, 확산 그리고 소멸에 이르는 순환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생태시스템으로 전환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곰팡이, 효소, 영혼과 조상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과 협업했다. 흙, 꽃, 버섯종자와 같은 자연의 재료를 사용하여 대형 설치 작업을 제작해 전시 환경과 기후, 그리고 설치 요소의 생물학적 구성에 따라 작품이 반응하고 변화는 모습을 보여준다. 댄 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생명은 부패와 발효, 즉 삶과 죽음의 사이클 안에 놓이게 되는데, 그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살아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의 조합”이라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개인적인 경험과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한 신작이 공개된다. 올해는 작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지 3주기가 되는 해로, 댄 리는 한국의 장례 문화 중 삼년상을 재해석해 삼베, 면포, 짚풀, 옹기 등의 재료로 자신만의 애도 방법을 성장, 발효, 부패와 소멸의 과정을 통해 보여줄 예정이다. 이 트랜스-논바이너리 예술가에게 특히 부패와 발효는 삶과 죽음,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전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주요 주제다.

▲쌀과 누룩이 발효되고 있는 옹이. 성장, 발효, 부패와 소멸의 과정을 통한 ‘애도’를 보여준다. (사진=아트선재센터)

아트선재센터 더그라운드에 들어서면 울금으로 노랗게 염색한 직물들이 전시장을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댄 리가 조성한 생태시스템이 공개된다. 새싹과 버섯종자가 자라나고 있는 흙더미, 국화와 삼베, 면포로 만든 행잉 구조물, 그리고 쌀과 누룩이 발효되고 있는 옹기들로 구성된 거대한 스케일의 설치 작품은 계속해서 형태가 바뀌며 삶과 죽음의 사이클 안에 놓이게 된다. 

또한 부패와 발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생물, 곰팡이, 박테리아와 같은 비인간 행위자들은 이 순환과정을 촉진시키는 협업자로 활약한다. 중정에 위치한 한옥 안에서는 댄 리의 또 다른 생태시스템이 펼쳐진다. 부정을 막기 위해 걸어 놓는 금줄에서 영향을 받은 작가는 새끼줄, 국화 그리고 옹기를 사용해 대들보에서 내려오는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이 작품 또한 점점 시간이 지나며 변화하는 모습을 관찰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설명하듯 “이 순간에만 존재하는, 다시 만들어질 수 없는 유일한 작업”으로 제시된다.

▲댄 리, 《상실의 서른 여섯 달》 전시 전경 (사진=아트선재센터)

나아가 전시장에 놓인 옹기 안에서 발효되는 막걸리가 관람객들의 후각을 자극한다면, 삼베, 면포, 국화와 같은 한국 전통 장례문화에서 온 모티브들은 거대한 스케일의 설치 작품을 통해 특별한 감각적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댄 리의 다중감각적이고 재현할 수 없는 설치작업들은 전시 환경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이 특정한 생태시스템은 고유한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전시는 오후 12시부터 7시까지 운영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개막일(16일)부터 내달 7일까지 3주간은 무료로 전시를 개방, 이후에는 당일 아트선재센터 입장권 소지자에 한해서만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