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윤범모 전 관장의 미술관 재임 시절 이야기를 총망라한 <현대미술관장의 수첩>이 출간됐다. 2019년 2월부터 2023년 4월까지 관장직에 재임하던 시절의 업적과 취임부터 퇴임의 비사까지 5년간의 회고가 담겼다.
우리나라 제1호 큐레이터라고 말할 수 있는 윤범모 관장이 한국미술의 위상을 제고했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취임과 퇴임의 비사도 담고 있다. 2부~4부는 윤범모 관장이 재임 시절 기고했던 신문 및 잡지 기고문과 인터뷰를 정리했다.
윤범모 관장은 자신을 ‘백조 관장’으로 비유하듯이, 자신의 오랜 현장 경험과 학술적 경험을 바탕으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해 나갔다. 취임 일성으로 발표한 ‘협업하는 열린 미술관’, ‘남북미술 교류 협력’, ‘한국미술의 국제화’, ‘한국미술의 정체성 확립’, ‘4관체제의 특성화 및 어린이미술관 강화’, ‘이웃집 같은 친근한 미술관’ 등이다.
이건희 컬렉션 1488점을 아무런 조건 없이 기증 받은 일, ‘다다익선’의 재가동, 다양한 해외전시, 코로나 중 '세계 10대 온라인 뮤지엄'으로 선정 등이 윤범모 전 관장 임기중에 일어났다. 특히 코로나라는 미술관으로서는 비극적 상황에서도 최대치의 업적을 이끌어 낸 것은 관장 개인의 치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후대를 위한 모범사례로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 ‘미술한류’를 타고 MZ세대가 미술관에 들어오면서 방탄소년단 ‘RM 효과’도 체험했다.
“나는 RM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상설전에서 처음 만났다. 누군가는 말했다. 두 가지의 미술전시가 있는데 RM이 본 전시와 그렇지 않은 전시라고. 전시장에서 만난 RM은 나에게 손상기 화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웬 손상기? 나는 놀랐다. 그는 물었다. “관장님이 굴레방다리의 손상기 화실을 찾아 가셨잖아요.” 그렇다. 나는 무명시절의 손상기와 가깝게 지냈고, 그의 작가적 성장과정을 지켜봤다. '공작도시'와 '시들지 않는 꽃' 같은 연작은 울림이 큰 작품이었다. 더 이상 시들 것도 없어 더 이상 버림받을 것도 없다는 시든 꽃, 바로 꼽추 화가의 자화상이었다. 개성적 예술세계와 극적인 삶을 살다 요절한 화가 손상기. RM은 손상기를 주목했고 문학적 서정성을 기반으로 한 그의 작품을 공부하며 또 자신의 집에 그의 작품을 걸어놓고 음미하고 있다. RM의 미술에 대한 열정과 해박한 지식은 수준급 이상이다. 그의 탐구욕은 절판된 미술책까지 어렵게 구해 탐독하면서 궁금증을 해결했다. 그래서 수십년 전의 ‘굴레방다리 화실’ 이야기까지 나온 것이다. 그는 미술 에서 받은 영감과 치유의 순간을 다른 청소년들과도 나누고 싶어했다. 자신이 경험한 아름다운 것을 타인에게도 권하고 싶은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윤범모 관장은 우리 미술에 관한 강한 애착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 채색화에 대한 재해석이다. 동양화 및 한국화로 알려진 수묵화는 중국미술의 전유물이며, 오방색을 중심으로 한 채색화야말로 우리 미술인데, 이것이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민화라고 명명되면서 저평가되고 있었다. 민화라는 명칭의 오류를 바로잡고 우리 미술의 전통을 찾고 전통을 현대화하는 문제, 즉 법고창신의 정신을 새로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한국미술의 국제화에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동안 해외 교류라 하면, 정확한 표현으로 일방통행이었다고 봐야 한다. 구미 선진국의 미술을 이 땅에 들여오는 것 중심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말로만 교류이지 사실 일방적 폭격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이제 한류시대를 맞아 명실공히 쌍방통행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해외미술 수입의 시대에서 한국미술 수출시대를 펼쳐야 한다”라며 “이와 같은 커다란 과제를 염두에 둔다면 미술관 의 역할은 매우 크다. 특히 국가 미술관은 한국미술의 국제화 시대에 앞장서서 전령사 노릇을 해야 한다. 미술한류. 이제부터 시작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한류 프로젝트의 첨병으로서 미지의 영토를 부지런히 개척해야 할 것이다. 현대미술은 국격을 올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지만, 작품 매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에도 일조할 수 있다. 한류의 거센 바람 속에서 이제 미술한류가 나서야 할 때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