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다양성 작가들의 예술세계…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자展
신경다양성 작가들의 예술세계…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자展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2.2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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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받은 천민준 등 총 13명 구상에서 추상까지
인사동 KCDF갤러리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지난 2일, 인사동을 거닐다 우연히 들른 KCDF갤러리에서는 이색적인 전시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신경다양성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는 국민일보 아르브뤼미술상 수상자 전시회, 《神境(신경): 신이 다니는 길, 그 길 위의 목소리들》이다. 

’아르브뤼미술상’은 국민일보가 신경다양성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 한국 1세대 실험미술 대가 이건용 작가와 손잡고 제정했다. 장애예술 전시가 활발한 가운데, 단순히 전시를 관람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장애 예술을 둘러싼 새로운 담론의 생산을 시도하고자하는 기획의도를 품었다. 올해로 2회차를 맞은 이번 전시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KCDF갤러리(2층)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천민준, 〈북극의 예술가들〉, 캔버스에 아크릴, 72.7×90.9cm, 2023 (사진=국민일보)
▲천민준, 〈북극의 예술가들〉, 캔버스에 아크릴, 72.7×90.9cm, 2023 (사진=국민일보)

’아르브뤼’는 프랑스 화가 장 뒤뷔페(Jean Dubuffet)가 고안해낸 용어로, ’다듬지 않은 거친 형태의 미술’을 뜻한다. 직역하면 원생(原生)미술이다. 이번 전시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신경다양성 작가 13인의 작품들을 선보였다.

대상 천민준의 <북극의 예술가들>, 최우수상 장서연의 <바다 속>, 우수상 김한별의 <별들의 향연 1> 등 수상자들의 회화 작품 총 37점이 출품됐다. 신진이라지만 수상자의 연령대는 20세 청년부터 69세 할머니까지 다양하다. 

전시장의 작품들은 무질서해보여도 기하학과 같은 묘한 정연성을 품고 저마다의 규칙을 따르고 있었다. 뒤엉켜있는 듯한 색의 사용이나 선의 형태는 멀리서 보면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를 통해 하나의 질서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김한별, 〈별들의 향연1〉, 캔버스에 아크릴, 73×61cm, 2023
▲김한별, 〈별들의 향연1〉, 캔버스에 아크릴, 73×61cm, 2023 (사진=국민일보)

13인의 작품 세계는 미술사의 양식적 특성에 기대면 세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다. 첫 번째는 형태 중심의 선(線)적인 작업이다. 도시, 동물 등 대상을 특유의 반복적인 리듬감을 살려서 묘사한 천민준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풍경을 흑백 드로잉으로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게 그리는 박찬흠, 오스트리아에 가서 왈츠 공연을 보고 싶어 그 현장을 상상해 그린 차동엽, 동네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화면 가득 채워 넣은 양집, 도시를 세밀화 같은 지도식 풍경에 담아내는 신의현 등이 이에 속한다. 

두 번째는 형태보다는 색에 집중해 감정을 녹여낸 그림들이다.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꽃과 나비를 풍부한 색감으로 그려내는 최우수상 장서연을 포함해, 해바라기· 양귀비 등 좋아하는 꽃을 수채화 물감의 색 번짐 효과를 최상으로 구현해 표현하는 이재민, 호박을 그린 정물화, 밀짚모자를 쓴 여인 인물화 등을 색면으로 처리해 경쾌함을 주는 이대호 등이 여기 속한다. 

마지막으로는 자연과 도시, 우주의 질서를 추상화하거나 내면의 심리를 표출하는 등 추상 감각을 보여주는 그림들이다. 이런 예로는 어릴 적 산꼭대기 천문대에서 살며 밤마다 별을 보며 자란 기억을 간직해 별과 우주의 숭고를 추상화하는 김한별이 있다. 또 동심원 형태로 꽃을 추상화하는 박성호, 산이 주는 기세를 추상적인 붓 터치로 표현하는 정의원, 사람을 기호화해 그리는 한부열 등이 이에 속한다. 최고령 작가인 윤미애는 버려진 포장지를 세모로 오려 붙이는 콜라주 기법을 쓰는데, 천주교 신자로서 영성체를 상징하는 둥근 원을 화면 안에 구축한다.

▲장서연, 〈바다 속〉, 캔버스에 아크릴, 72×50cm, 2020 (사진=국민일보)
▲장서연, 〈바다 속〉, 캔버스에 아크릴, 72×50cm, 2020 (사진=국민일보)

한편, 국민일보는 이번 공모전의 총괄기획을 맡은 손영옥(국민일보 문화전문기자·국장)의 제안에 따라, 이번 2회부터는 지원 대상을 지칭하는 ‘발달장애’ 대신에 ‘신경다양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언어는 사회적 산물인 만큼, 이들이 가진 행동적·심리적·신경적 특성을 ‘장애’가 아닌 ‘차이’의 하나로 바라보자는 인식의 전환을 제안하기 위해서다.

전시명 ’神境(신경): 신이 다니는 길, 그 길 위의 목소리들’은 신경다양성의 ‘신경(神經, 신 신, 경로 경)'이라는 한자 뜻을 직역했다. 신경다양성의 세계를 비장애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 젖어 살아온 사람들이 한 번도 발을 디뎌보지 못한 길, 즉 신이 다니는 길로 해석하고자 했다.

손영옥 국장은 “장애인은 이 세계에서 가장 큰 소수자집단이지만 그들은 고립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라며, “이 전시가 장애와 비장애가 섞이는 포용적 사회를 실천하는 마당이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