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김달진, 한국 미술 아키비스트』 출간 기념회 “삽질로 미술계에 산을 하나 옮겼다”
[현장에서] 『김달진, 한국 미술 아키비스트』 출간 기념회 “삽질로 미술계에 산을 하나 옮겼다”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2.27 16: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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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인 차원에서 국가가 해야할 일을 한 사람이 해냈다”
“미술계의 중요한 자료이자 위인전기가 될 것”
“김달진의 미술자료 박물관은 끈기로 가시밭길을 헤쳐온 뚝심이 이뤄낸 왕국”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일평생을 미술 자료 수집에 바쳐온 김달진의 일대기가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내달 4일, 저자 김재희가 김달진의 삶을 밀착 조명한 전기적 에세이, 『김달진, 한국 미술 아키비스트』가 발간된다. 발간에 앞서 지난 22일,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김달진의 삶과 업적을 집대성한 첫 번째 책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가 열렸다. 그 현장의 분위기를 담아봤다. 

▲『김달진, 한국 미술 아키비스트』 출간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단체 사진을 촬영 중인 모습이다. ⓒ김연신 기자

이날은 밤새 눈이 한가득 내려앉아, 적갈색 벽돌의 예술가의 집은 하얀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10시라는 이른 시간이었던데다가, 오는 길이 순탄치 않았을 것임에도 현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남들이 의아한 시선을 할 때부터 남다른 길을 걸어오고,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건립해 공유의 가치를 실현하는 김달진 관장의 삶의 풍경과 같은 시작이었다.

김달진이 오랜 시간을 한국 미술 아카이빙에 전념해온 만큼, 그의 궤적을 알고 기쁜 순간을 나누러 온 미술계 인사들이 가득했다. 본격적인 행사 시작 전부터 서로 인사를 나누느라 행사장은 들뜬 분위기였다. 

행사는 김동기 교수의 사회와 함께, 윤희원 성악가의 축가로 시작됐다. 성악가의 명랑한 목소리가 ‘지금 이 순간’과 ‘아름다운 나라’, 두 곡의 아름다운 선율로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이후에는 김달진 관장과 김재희 작가를 소개하는 영상이 재생됐다. 다시 한번 김 관장이 걸어온 쉽지 않은 길과 그간의 업적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축사를 나누는 정병국 한국예술문화위원회
위원장의 모습 ⓒ김연신 기자

축사는 정병국 한국예술문화위원회 위원장과 윤범모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이은수 국립현대미술관 주무관이 맡았다. 정병국 위원장은 “늘상 어떤 전시장을 가든지 그 장소에서 늘 뵙는 분이 김달진 선생이었다”라고 말하며 김 관장과 인연이 닿게 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어 “공적인 차원에서 국가가 해야할 일을 한 사람이 하는 걸 보고,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어 놀라웠다”라며 김 관장의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윤범모 전 관장은 “저는 김달진을 싫어하는 사람이에요”라는 말로 운을 띄었다. 그는 “김달진 하면 ‘바보 김달진’으로 입력이 되어 있다”라면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어깨 한쪽이 기울 정도로 자료를 짊어지고 다니던” 김 관장에 대한 첫인상을 이야기했다. 그는 당시 ‘저런 바보가 세상에 다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그 ‘바보짓’이 평생 가는걸 보고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떠올랐다고 말한다. 바보가 삽질해서 산을 옮기듯, ‘바보 김달진’이 어느덧 한국미술계에 있어 큰 산을 하나 옮긴 ‘의인 김달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발간될 책이 미술계의 중요한 자료이자, 젊은 세대에게는 거울처럼 훌륭한 위인전기의 역할을 할 것이라 예견하며 축사를 마쳤다.

이은수 주무관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년 가량 근무해오며 결재를 맡아주시던 관장님, 실장님 등이 모두 이 자리에 모인 것 같다”라며 쑥쓰러움을 표하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도슨트 운영을 체계화하던 시점인 2006년, 김재희 작가와 맺게 된 인연을 회고했다. 당시 도슨트 프로그램의 초기 정착에 기여해온 김 작가의 행보에 존경을 표하며, “두 분이 몸소 체득하며 만들어온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이번 책은 역사적인 기록이 될 것”이라 말했다. 

▲김달진 관장이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김연신 기자

다음으로는 김 관장과 김재희 작가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김 관장은 “이번에 발간될 책은 16번의 인터뷰와 그간 공개한 적 없던 일기장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전기적 에세이”라고 설명하며, “나조차도 기억하지 못했던 내 삶이 한 권의 책으로 정리되니 마치 알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부끄럽기도 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특강을 가게 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강조한다고 한다. ▲첫째, 좋아하는 것을 하되 그것이 자기 만족을 넘어서 사회에 공유되어야 한다. ▲둘째,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 ▲셋째, 차근차근 쌓아 올려라.

그는 “겉모습으로 판단하기 쉬운 사회이지만,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은 분명 있다”라면서, “이 일을 계속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열렬한 사랑과 후원 덕분이다”라고 말하며 이날 자리를 빛내준 이들을 향한 감사함을 표했다. 

▲인사말을 나누는 김재희 작가 ⓒ김연신 기자

김재희 작가는 “정민영 대표의 제안에 따라 이름은 알아도 개인적으로는 안면이 없던 김달진 선생에 대한 책을 쓰게 됐다”라며 집필계기를 밝혔다. 이어 그는 김 관장과 처음 만난 날을 회고했다. 비가 많이 내리던 날, 김 관장과 첫 만남 이후 함께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사진을 보내달라는 김 관장의 메시지에 비를 맞아 머리도 젖어 있고 사진이 못 나온 것 같아 ‘이걸 관장님께 보내드려야 하나’ 싶어 망설이던 와중 김 관장은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정확한 역사를 만듭니다”라는 문장을 보내왔다고 한다. 그것이 김 관장의 좌우명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이후 김 관장과 소통하면서도 김 관장은 요청한 자료를 그날이 지나고 보내주는 법이 없었다며 김 관장의 ‘기록가’다운 치밀하고 꼼꼼한 성격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그는 개인의 가장 내밀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일기장을 선뜻 내어주는 모습이나, 한 번도 글을 잘 써달라는 말을 꺼내지 않던 김 관장의 올곧고 꾸밈없는 모습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마지막으로는 “젊었을 때부터 칠십이 넘는 지금까지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김달진 선생의 근면 성실함은 타인의 사표가 된다고 생각한다”라며, “김달진의 미술자료 박물관은 끈기로 가시밭길을 헤쳐온 뚝심이 이뤄낸 왕국”이라고 비유하며 소감 발표를 마쳤다.

이날 있었던 자리는 단순히 김달진의 수집 인생을 다룬 책이 나왔음을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자리에 모인 이들은 미답의 길을 걸어온 김 관장의 외길 인생과, 그의 꿋꿋한 고집에 존경하는 마음을 모았다. 모두가 걸어다니는 미술사전, 김달진이 앞으로도 축적해나갈 한국 미술의 역사를 마음 깊이 응원하는 뜻깊은 자리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