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Issue] ‘약자 프렌들리’ 내세운 정부 ‘장애예술 정책’, 실효성 고찰 필요
[Hot Issue] ‘약자 프렌들리’ 내세운 정부 ‘장애예술 정책’, 실효성 고찰 필요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4.03.0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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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 복지’ 개념 이상의 자발성 높이는 근본적 고민 필요
창제작과 소비 간 균형 이뤄야…“적극적 활동 위한 정책 가능한 환경 조성 요구”
지난 1월 ‘장애인문화예술과’ 신설, 정책 통합 관리 나서
유통 플랫폼 구축 통한 ‘우선구매 제도’ 활성화, 창작 생태계 구축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윤석열 정부 문화예술 정책의 슬로건은 ‘국민과 함께하는 일류 문화매력국가’로 대표된다. 지난 2022년 7월, 정부는 6대 국정 목표, 23개 약속, 120대 국정과제를 최종 확정 지으며 국무회의를 통해 발표했다. 이 중 문화예술 분야 해당 내용은 국정과제 56번과 57번에 해당된다. 56번 국정과제의 주요 내용은 ▲공정한 문화 접근 기회 보장 ▲품격 있는 문화시민 역량 강화 ▲전통문화의 독창적 가치 확산과 창조적 발전 ▲지역 중심 문화 균형 발전이다. 57번 국정과제의 주요 내용은 ▲공정한 맞춤형 예술 지원 ▲예술산업 경쟁력 제고 ▲예술인 복지 안전망 강화 ▲장애예술 활성화다.

▲지난 2022년 8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에서 장애예술인 특별전 <국민 속으로 어울림 속으로>가 열렸다
▲지난 2022년 8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춘추관에서 장애예술인 특별전 <국민 속으로 어울림 속으로>가 열렸다

‘약자 프렌들리’ 정책을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 기조에 따라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22년 발표한 ‘제1차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 기본계획(2022~2026)’을 바탕으로 지원을 강화해간다는 방침이다. 기본계획에는 장애예술인 창작 지원 강화, 일자리 등 자립 기반 조성, 문화예술 활동 접근성 확대 등의 과제를 담았다.

또한, 장애예술 정책을 통합ㆍ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9일 ‘장애인문화예술과’가 신설됐다. 주요 업무는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기본계획 수립 ▲실태조사 및 통계관리 ▲시설별, 장애유형별 표준서비스 개발운영 ▲장애예술인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 시행관리 ▲장애예술인 작품의 공연ㆍ전시 정기적 실시 지원 ▲인력양성, 일자리 지원 등 장애예술인 정책지원 강화 등이다. 

장애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기 위해서 문체부는 장애예술인 표준 공연장을 비롯해 맞춤형 거주 작업공간(레지던시)을 조성했다. 지난해 10월 24일 장애인의 창작ㆍ향유 등 문화예술 활동 접근성을 확보한 ‘모두예술극장’을 서울 구세군 빌딩 안 아트홀을 리모델링해 개관했다. 더불어, 시각예술 분야 표준전시장을 조성해 작품전시 및 다양한 방식의 관람 서비스 제공도 지원할 방침이다. 

‘우선구매 제도’ 장애예술 활동 지원, 장르별 특성 고려한 세부 정책 마련돼야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2021년 실시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예술인 중 62.2%가 예술을 전업으로 하지만, 개인 평균 소득은 809만 원, 창작활동을 통한 수입도 218만 원에 불과하다. 응답자의 92.4%가 '문화예술활동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고 답했고, 문화예술활동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으로 '창작지원 및 수혜자 확대'(70.5%)를 꼽았다.

이에 정부는 ‘우선구매 제도’를 통해 장애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우선구매제도는 국가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 총 847개 기관이 창작물 구매 전체 총액을 기준으로 3% 이상을 장애예술인이 생산한 공예, 공연, 미술품 등 창작물로 구매하도록 한 정책이다.

올해부터는 장애예술인의 활동 지원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우선구매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유통플랫폼을 구축해 장애예술인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홍보한다. 이를 통해 거래를 활성화하고 장기적으로 자생적인 창작 생태계 구축을 뒷받침한다.

문체부의 우선구매 제도 시행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비장애예술인과 장애예술인 모두 우선구매 제도가 장애예술 활성화에 기여(비장애예술인 71.3%, 장애예술인 66.5%)하고 예술계의 다양성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비장애예술인 67.5%, 장애예술인 66.5%)이라고 응답했다.

해당 제도 시행에 맞춰 서울 종로구 KCDF갤러리숍 ‘공예정원’은 인사동에 장애예술인 공예품 판매 전용 공간을 마련하고 지난해 3월 18일부터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이번에 판매하는 공예품은 장애예술인 13명의 도예, 금속, 섬유 공예품 30여점이다.

나아가, 올해 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중증장애인 미술작가를 직접 채용하고 가족을 초청한 가운데 특별한 임명장을 수여했다. 채용된 발달장애인 등 미술작가 3명은 예술위와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안정된 근로환경에서 예술적 재능을 펼치며 직업인으로 근무할 예정이다. 예술위는 이번 채용을 위해 '미술작가' 직무를 신규로 개발했고 향후 작가들이 창작한 작품들로 전시회를 정식 개최할 계획이다. 

반면, 공연은 장르의 특성상 미술ㆍ공예품과 비교해 실연하는 예술이다 보니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어 창작물 ‘우선구매 제도’의 혜택을 받기 쉽지 않다는 것이 현장의 의견이다. 

공연을 제작하는 한 장애인 창작자는 “‘우선구매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현실적으로 지자체나 공공기관에서 필요한 시기에 맞춰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공급은 수요에 비해 부족할 것으로 생각한다. 사전 제작 후 보관이 가능한 유형의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시나리오와 연출이 준비되어 있다고 한들 연습 기간과 공연 기간 등을 전부 고려해 본다면, 공연 분야는 ‘우선구매’가 아닌 현장 상황을 반영한 다른 제도가 필요하다”라고 진단했다.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음악극 <합★체>의 한 장면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음악극 <합★체>의 한 장면

‘약자’ 위하는 복지 정책, ‘시혜적’ 태도 경계 필요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의 문화 정책 본격 시행에 앞서, 현장 예술인들이 모여 새 정부의 정책 특징을 살펴보고 문화예술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과제와 전망, 현 정책의 한계를 지적하는 ‘아르코 현장 대토론회’ 자리가 마련된 바 있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조현성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윤 정부의 문화 정책을 두고 “장애 예술인 지원사업이 많은 게 특징”이라고 짚어냈다. 

조 연구위원은 “국정과제 56번의 세부 과제는 문화 참여 기회를 확대하는 것으로 통합 문화이용권 확대, 장애인 문화 접근 장벽 해소, 공공 수어 통역 지원 등 언어 복지 개선, 문화 기반시설의 디지털·친환경ㆍ무장애 전환 등”을 꼽으며 “장애 예술인 지원정책은 매우 빠른 속도로 현실화되고, 시민 호응도 역시 높은 편”이라고 전했다. 

안태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이사는 “‘지역의 문화 자치’라는 대원칙이 ‘약자 복지’로 대변되는 이번 정부 정책과 맞아떨어지는가 의아하다. 문화 정책이 현장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이 아니라 공급 위주의 시혜적 정책으로 치우칠까 우려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이 확대됐지만 ‘약자 복지’ 개념만으로는 돌파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장애인들의 예술 활동에 대해 개인의 자발성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 방법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연수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대상으로 문화예술, 국내 여행, 체육 활동 등을 지원하는 ‘통합문화이용권 사업’에서도 단순히 금액을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더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돕고 적극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이끌기 위해 교통지원 정책 설계도 함께 필요하다고 밝혔다.

개선되는 장애예술인 창작 환경, 관람 환경 개선도 균형 이뤄야 

창작 지원이 강화되는 만큼 이를 관람할 수 있는 환경도 함께 조성되어야만 한다. 장애예술인의 활동화 그들의 창작활동이 입지를 넓혀간다 한들, 공연장과 전시장에 관객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창작자와 관련된 정책이 늘어나는 것만큼, 장애인들이 이를 즐길 수 있는 환경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문화누리카드의 비용을 몇만 원 늘리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들이 공연장과 전시장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고 그 공간에서 예술을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방안이 반드시 함께 마련돼야 한다. 향유자 없는 예술은 결국 창작자 개인의 몫으로 남고, 이것의 지속성은 그리 길지 못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11조 제1항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 한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등에 관한 법률 ‘국가 및 지방자체는 장애인이 문화 예술 시설을 이용하고 문화 예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하며 성별, 장애의 유형 및 정도, 특성에 따른 문화 예술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등의 법률적 장치가 있음에도, 우리나라 장애인 문화예술정책은 국제적 수준에서 봤을 때 상대적으로 느리게 발전해왔다.

장애인 및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가 겪는 물리적 장애물이나 심리적, 제도적 장벽을 없애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ㆍ무장애 운동)는 문화예술 분야에도 적용되며 확산하고 있다. 국립극장과 국립극단, 국립정동극장을 중심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제공, 시각장애인을 위한 비상구 안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드는 공연 제작 등이 이러한 변화의 일환이다. 하지만, 아직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음센터(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가 자리하고 있는 혜화역에서는 오늘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물리력을 행사하는 경찰에 의해 진압 당하면서도 시위를 이어간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장애인 거주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게 해달라’는 기본적인 시민권 보장을 위한 외침이다. 단순한 금액 지원을 넘어, 창작자와 향유자가 균형을 이루며 함께 예술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국내 첫 장애예술 공연장, 모두예술극장
▲국내 첫 장애예술 공연장, 모두예술극장

장애예술 무대, 까다로운 이용 절차 개선 필요

한 장애인 미술가는 “장애예술에 대한 지원체계 변화는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나, 이를 둘러싼 사회적 그리고 집단 내부의 인식이 변화하지 않은 채 ‘시혜적’으로 시행되는 정책은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장애인의 예술적 표현, 비장애인 작품과의 차별성, 이것에서 비롯된 가치 등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역차별의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앞서, 장애예술을 하는 당사자들도 이해가 동반되지 않은 시혜적 정책은 원치 않을 것이다. 근본적 이해와 접근 없이 의무만으로 이뤄지는 정책은 당위성을 잃어 곧 소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시각장애인 전문예술단 한빛예술단 최용환 사무국장은 “현 정권들어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수립되어 장애예술인들이 예술 시장에 진출하게 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장애 예술인 문화예술 실태조사에도 장애예술인들이 창작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장소 및 축제 등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며 현장에서 지켜보면 장애인들이 창작활동을 자유롭게 하기는 거의 힘들다”라고 말했다. 

이어 “2023년 모두예술극장이 개관하였지만 까다로운 서류절차부터 승인까지는 수개월 진행이 된다. 예술의 전당처럼 인터넷 접수로 단순한 서류접수와 심사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또한 이런 것을 도움 을 받을 만한 전문가도 없기에 장애예술인 행정 도우미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라며 “작년 12월에는 국공립 공연장, 전시장 등 총 759개 시설에서 매년 1회 이상 장애예술인의 공연과 전시를 개최하도록 법령 개정안을 시행하였지만, 장애예술가가 무대에 서긴 어렵다. 보통 장애 예술가들은 공연장과 무대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보통의 공연장들은 배리어프리 환경이 아주 좋지 않다. 장애편의 시설 조차 갖춰지지 않았기에 이 정책 역시 쉽지 않다”라고 평가했다. 

최 국장은 “장애인문화예술과 신설을 찬성하며 예산도 장애유형별도 확대 운영되었으면 한다. 장애 예술인과 기획자의 교류 유통을 통한 공연예술의 발전을 위한 아트 마켓이 필요하다. 이로 인해 한국 장애예술인이 세계에 진출하여 K-컬쳐 보급에 일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