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man Library] 경계의 美, 다름의 공존
[Human Library] 경계의 美, 다름의 공존
  • 독립기획자 김민지
  • 승인 2024.03.06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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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때때로 다르다는 이유로 경계를 그리곤 한다. 깊고 짙은 경계를 통해 다른 것들을 마주하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 그린 경계를 지우고, 모든 것을 오직 자신으로만 덮으려고 하기도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다른 색과 모양, 다른 소리, 다른 촉감을 가지고 공존하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 그 사실을 망각한다면 서로가 서로의 얼룩이 될 수밖에 없다.

 ‘경계’는 우열을 나누는 기준이 아니라, 정체성이다. 무지개가 각기 다른 색이 공존하기에 더 아름답듯, 각기 다른 악기들이 만났을 때 더 황홀한 음악이 만들어지듯, 정체성‘들’의 공존은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낸다. 우리는 이것을 항상 이해하고 인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사회에서의 경계는 ‘장애’의 유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시대를 막론하고 장애는 항상 차별의 대상이 되었다. 과거에는 단순히 멸시의 대상이었다면, 현재는 과한 연민, 또는 기득권층 가식의 대상이다. 장애인을 과하게 연민하거나,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라는 증명의 수단으로 그들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가 점차 다양해지고 인식이 개선되어 가는 추세지만, 아직도 그들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

 특히 장애인의 예술 환경은 상당히 열악하다. 대중적으로 유명해지지 않는 이상, 그들이 그들의 능력만으로 예술성을 인정받기란 절대 쉽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그들의 예술이 인정받는다 해도 예술성보다는 그들의 장애가 더 주목받곤 한다. 특히 한국은 그들의 활동이 ‘장애인의 예술’보다는 ‘예술을 하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예술 그 자체보다는 행하는 주체가 더 관심받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1984년에 설립된 장애인이 관리하는 예술단체인 영국의 장애예술단체 ‘다다(DaDa)’의 사례에는 참고하기 좋은 지점들이 매우 많다. 첫 번째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활동한다는 점이다. ‘예술을 하는 장애인’,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비장애인’ 등의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짙게 그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예술을 추구한다.

 두 번째로, 현대의 예술처럼 끊임없이 성장한다. 우리는 끝없이 분해하고 결합하며 다양해지는, 융복합 예술 시대에 살고 있다. 이에 발맞춰 다다(DaDa) 또한 다양한 예술에 도전하고, 실험하며 시대에 발맞춰 나가려 한다. 실험적, 분석적, 철학적인 주제를 선정해 작품활동을 하고, IT를 이용해 디지털 접근성을 높이고, 온라인 공연을 진행하며, 더 나아가 관객과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는 등 계속적인 성장을 도모한다.

 마지막으로, 장애 예술가들의 자생을 지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 그들이 스스로 예술 활동을 하며 살아갈 수 있게끔 하는 환경인데, 다다(DaDa)는 그러한 예술 생태계를 조성한다. 단체의 운영부터 교육, 공연 등 모든 과정에 장애인이 참여하며, 그것이 세대를 이어나가고 있다. 단발성으로 장애인 몇 명만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지속적인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장애인 예술 활동이 점점 이루어지고 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2023년 국립극장 연극 <우리 읍내>에서는 실제 장애인 배우와 비장애인 배우가 협업해,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갔다. 비록 현재는 아주 작은 불씨일 뿐이지만, 조금씩 천천히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다 함께 공존해 나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장애인을 대표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장애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짙은 경계 속 모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다. 인간도, 동물도, 들에 핀 작디작은 들꽃조차도 그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유일무이한 역할과 의미로서 존재한다. 다름을 알고, 서로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며, 함께 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에,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역할이 있으며, 어떤 의미로든 필요한 존재라 말할 수 있다.

 예술은 대개 독창성, 개성을 추구하며, 인간 그 자체를 표방한다. 그렇기에 예술에 있어서는 더욱이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차별을 위한 경계가 아닌, 자연히 존재하는 경계는 우리를 더욱 조화로이 아름답게 만들 것이다. ‘다양함’에 대한 예술 활동을 넘어서서, 실제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하는 예술 활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오늘날 예술인들의 숙제이다. 세상의 모든 다른 사람들이 세상에 각자의 빛을 발하며 공존할 수 있기를.

2024년 3월
독립기획자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