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 ‘사회적 뇌’를 다친 좀비 조직 증상의 이유
[장석류의 예술로(路)] ‘사회적 뇌’를 다친 좀비 조직 증상의 이유
  • 장석류 국립인천대 문화대학원 초빙교수·칼럼니스트
  • 승인 2024.03.0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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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류 국립인천대 문화대학원 초빙교수·칼럼니스트
▲장석류 국립인천대 문화대학원 초빙교수·칼럼니스트

건강한 조직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병든 조직은 각자의 이유가 있다. 어떤 조직이 최근 몇 년간 좋은 사업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면, 그 이면에 좋은 조직문화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여기서 ‘좋은 조직문화’란 무엇일까? 먼저 조직 구성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동상이몽(同牀異夢)하지 않고, 한곳을 바라보는 미션과 비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강한 팀워크와 조직적인 직무체계, 성장의 관점에서 인재육성 시스템을 가진 곳이 좋은 조직문화가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 건강한 조직문화를 갖게 된 이유와 사례를 찾는 연구만큼, 건강했던 조직이 좀비화된 이유를 찾는 연구도 중요하다. 필자는 최근 몇 년간 공공문화예술조직을 중심으로 이 분야를 연구하고, 조직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진단과 처방을 시도해 보고 있다. 

‘병든 좀비 조직’에서 보이는 주요 증상

현실에서 문화와 예술을 업으로 삼는 많은 공공문화예술 조직의 ‘조직문화’는 아이러니하게도 병이 들어 내적 고통을 호소하는 임직원들이 많다. 좀비 조직에서 나타나는 대표적 증상은 협력이 필요한 다른 팀, 다른 본부, 혹은 위·아래에 있는 다른 직급에 있는 동료들에 대한 ‘무관심’ 증상을 보인다. ‘무관심’ 증상은 동료들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증상으로 이어진다. 가장 빈번하게 협력해야 하는 동료들의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증상은 반대로 다른 동료도 내가 느끼는 고통에 ‘무감각’해짐을 의미한다. 삶이 아플 때 진통제는 사람일 수 있다. 좀비화된 조직에서는 내가 힘들 때, 나를 고립시키는 사람 사이에서 그 고통은 배가 될 수 있다.

조직 내에서 쟤네, 게네, 그놈 등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우리의 범위’를 좁히는 호칭 속에서 ‘무관심’, ‘무감각’ 증상이 지속되면 조직문화는 좀비화 2단계로 가게 된다. 2단계는 팀원들에게 말문을 닫고, 리더에게도 말문을 닫고, 옆에 팀이나 옆 본부 사람을 마주쳐도 눈빛도 닫아 버리는 ‘언어상실’ 증상으로 이어진다. 조직 내에서 겪는 언어상실은 말해도 소용없다는 경험의 누적에서 쌓인 불신의 상처이다. 조직 내에서 언어상실은 소통의 형식화를 강화한다. 수비력 만렙에 기계적 사이보그 행정이 강화된다. 조직문화가 이 상태가 되면 필요한 정보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왜곡하고, 누군가를 비방하고 물어뜯는 ‘카더라’ 그리고 조직보다는 나를 보호하는 조작된 정보를 선택적으로 흐르게 한다. 투명한 정보는 오해를 이해로 바꾼다. 하지만 ‘카더라’와 선택적 정보는 오해에 오해가 더해져 진짜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르는 각자도생, 동상이몽의 조직문화 상태가 된다. 

이런 증상이 연속되면, 특히 일 잘하고 좀비가 되기 힘든 ‘인간’들의 퇴사가 이어진다. 그중에서 다른 조직에서도 수요가 높은 3~10년 차 사이에 역량 있는 직원들의 퇴사는 뼈아프다. 그래서 어떤 조직에서 최근 1년 채용 빈도가 높다면, 퇴사율이 높다고 추정할 수 있고, 퇴사율이 높다면 좀비 조직일 수 있는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 있다. 

‘좀비 조직’으로 병든 이유를 과학적 방법으로 설명해볼 수 있을까 

오랫동안 몸담았지만 병든 조직에 있는 사람이 “오늘 등에 칼을 맞았다”고 하면서 지난 시간에 대한 회한과 오늘의 슬픔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가 있다. 잠시 술 한잔 부딪히며, 그 사람에 진통제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한 때, 빛났던 순간도 있었던 조직은 왜 좀비화가 된 것일까? 국내에서 100만 부가 넘게 팔린 손원평 작가의 베스트셀러 <아몬드>라는 소설이 있다. 공연으로도 제작되었고, 많은 독자에게 위로를 준 책이다. 책을 소개할 때, “이것은 두 명의 괴물에 관한 이야기”라고 소개하면서, “첫 번째 괴물. 감정을 느끼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는 열여섯, 선윤재”라는 인물이 나온다. 

우리의 뇌, 측두엽에 ‘편도체’라는 부위가 있다. 이 편도체는 영어로 ‘아몬드(almond)’라고 한다. 편도체는 감정 중에서도 특히 공포와 공격성을 처리하는 핵심 부위이다. 소설 <아몬드>의 주인공은 이 ‘편도체(almond)’의 문제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캐릭터이다. 조직에서 인간은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을 반사적으로 느낀다. 우리 리더와 생각이 다른 이 말을 해도 괜찮을까, 이 직원에게 필요한 행동 변화를 얘기해도 될까, 어떤 조직에 들어가면 그 조직이 뿜어내는 여러 신호가 있다. 그 신호를 조직원들은 눈치라는 더듬이를 세우고 읽어낸다. 편도체는 경계병처럼 조직과 이곳에 있는 사람을 관찰하며 나를 방어한다. 조직에서 느껴지는 신호가 나를 밀어내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고, 소속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 좋은 소속 신호는 개개인을 특별하고 값어치 있게 대하고, ‘우리의 관계’가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느끼게 한다. 소속 신호가 증가(+)하면, 안전감이 증가(+)한다. 안전감이 증가(+)하면, 편도체는 ‘경계모드’에서 ‘교류모드’로 변화된다. 좀비 조직은 서로를 갈라치게 하는 반(反) 소속 신호가 높게 나온다. 반 소속 신호가 증가(+)하면, 안전감이 감소(-)하고, 편도체는 ‘교류모드’에서 ‘경계모드’로 변화하게 된다. 조직에서 우리가 함께한다는 ‘사회적 뇌’가 파괴되는 것이다. 병든 좀비 조직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핵심은 다친 ‘사회적 뇌’를 회복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조직에서 어떤 인생을 선택해야 할까 

“협력하세요!”라는 다그침과 지시사항으로는 이 병을 고칠 수 없다. 병든 조직은 나름의 이유와 서사가 있다. 무관심, 무감각, 무책임의 기저에 있는 ‘반 소속 신호’가 만들어진 원인을 찾아봐야 한다. 소속 신호를 높이기 위해 차별 짓기가 있었던 제도적 개선, 소속감과 안전감을 높일 수 있는 ‘리더십 언어’에 변화, 투명하게 정보가 흐를 수 있게 하는 애씀이 필요하다. 조직도 개인이 필요하고, 개인도 조직이 필요하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 조직에서 어떤 인생을 살지 결정해야 한다. 좀비화된 조직에서 계속 좀비로 살 것인가. 변화의 시작은 상하좌우에 있는 동료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다정한 안부와 작은 칭찬을 던져보는 것이다. ‘괜찮아?’, ‘오늘 너무 멋졌어요’. 문화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가치 있는 것이라 주장하려면, 우리의 조직 문화가 값어치 있어야 한다. 같이 가야,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 빛나는 봄, 좀비로 숨 쉬고 있기에는 아까운 계절이다. 만약 당신에게 좀비 증후군 증상이 있다면, 그 무기력을 떨쳐낼 수 있는 ‘용기’가 함께 하길 바란다. 용기의 뿌리는 초심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