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 80] 재산 1호, 재봉틀
[정영신의 장터이야기 80] 재산 1호, 재봉틀
  • 정영신
  • 승인 2024.03.2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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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의 장터이야기 80

 

2012 예산 삼교장 Ⓒ정영신
2012 예산 삼교장 Ⓒ정영신

예산 덕산장 터줏대감인 고봉태랑(84)할배는 재봉틀 하나로

반평생을 장()에서 살아냈다.

재봉틀이 귀할 때 장만해 친구 같다는 할배는

요 재봉틀이 우리집 재산 1호유, 재봉틀 하나로 식구들 먹여 살리고,

자식들 가르쳤으니 젤 귀한거쥬. 올해로 재봉틀 산지 오십삼년됐시유,

장날이 아닌 무식날에도 한번씩 돌려봐유,

요놈한테 이상 있으면 내가 출입을 못허잖아유,

요즘은 재봉틀하고 얘기도 해유, 아직꺼정 내옆에 있어줘서 고맙다,

나 일허게 해줘서 고맙다, 근디유, 말없는 요놈도 지한테 잘허는 것은 알드만유

 

2022 예산 덕산장 Ⓒ정영신
2022 예산 덕산장 Ⓒ정영신

 

재봉틀이 돌아가는 수선집에는 동네 사랑방처럼 사람들이 모인다.

김순택할배가 구두를 내놓자 대뜸 또 고쳐유, 발바닥 아플틴디 그만신어유

김씨는 안사람이 큰맘 묵고 사준 구두유, 안사람 생각허면 버릴 수가 없구먼유

 

2022 예산 덕산장 Ⓒ정영신
2022 예산 덕산장 Ⓒ정영신

 

재봉틀이 돌아가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 따뜻한 웃음소리에 놀란

바람이 장터 뒤쪽으로 빠져나간다.

먼저 세상을 등진 안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김씨할배 마음을 알아차리고,

공들여 재봉틀을 돌리며 수선하는 모습을 햇살이 내려다본다.

 

2022 예산 덕산장 Ⓒ정영신
2022 예산 덕산장 Ⓒ정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