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조합?…부산비엔날레 올해 주제 및 방향성 발표
[현장에서]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조합?…부산비엔날레 올해 주제 및 방향성 발표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3.27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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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7~10.20, 부산현대미술관, 중앙동 현대빌딩, 초량 가옥 등
윤석남, 방정아, 이두원 등 참여작가 1차 리스트 10인(팀) 선공개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 조합 다소 뜬금없어…주제 관련 지적 잇달아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다소 독특한 주제와 함께 열리는 올해 부산비엔날레 전시 계획이 공개됐다. 부산시와 (사)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 조직위원장 박형준 부산광역시장)는 지난 26일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를 개최, 2024부산비엔날레 전시주제 및 기획 방향과 함께 메인 이미지, 참여작가 10명(팀)을 선공개했다.

이번 전시는 《어둠에서 보기(Seeing in the Dark)》를 주제로 오는 8월 17일부터 10월 20일까지 65일간 부산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중앙동과 초량 등 원도심 일대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기자 간담회 현장에는 공동으로 전시 감독을 맡게 된 베라 메이(Vera Mey)와 필립 피로트(Philippe Pirotte), 방정아 작가와 이두원 작가 등이 참석해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지난 26일 개최된 2024부산비엔날레 기자간담회 현장.
▲지난 26일 개최된 2024부산비엔날레 기자간담회 현장.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

메인 이미지를 해적과 깨달음을 연결하는 심벌인 ‘타륜’을 오브제로 하고 있는 이번 비엔날레 주제는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깨달음’이라는 개념 사이에서 고안됐다. 그동안 유럽에서 관습적으로 계몽주의를 ‘빛’과 관련한 것으로 여기고, 지식은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해서만 나타난다는 믿음을 가져왔다면, ‘어둠’을 쫓아낼 대상이 아닌 포용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장치로 활용하고자 한다.

첫 번째 주제는 베라 메이 감독이 2023년 출간된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책 '해적 계몽주의'에서 받은 영감으로부터 출발했다. 베라 메이 감독은 “바다와 해양을 끼고 있는 대안적 공동체인 해적 유토피아의 역사에 대해 고찰했다”라며, “이것이 항구도시 부산의 다양성 그리고 불교적 깨달음과 어떻게 중첩되는지 주목했다”라고 밝혔다.

'해적 계몽주의'에서 해적 유토피아는 다문화적이고, 정신적으로 관용적이며, 때로는 순수한 평등주의 사회를 포용한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해적들의 이러한 실험을 유럽 계몽주의 운동에서 발견되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았다. 

대부분의 해적이 암흑의 역사 속에서 국가의 눈을 피해 활동하거나, 수행자들이 고통의 종결을 향하는 길을 찾는다는 점에서 어둠은 해적 계몽주의와 불교의 깨달음 모두에 닿아있는 요소다. 이번 전시의 근간이 되는 두 개념의 전통 모두 풍부한 시각적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적인 감시 체계를 두는 대신 루머를 퍼뜨리는 것과 같은 유쾌한 방식으로 서사와 연결된다. 

베라 메이(Vera Mey)와 필립 피로트(Philippe Pirotte) 두 전시감독은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지위나 계급에 상관없이 소통하며 섞여서 생활하는 해적들의 모습이 항구도시 부산이 가진 디아스포라적 지역성과 정직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과 맞닿은 지점이 있다고 보았다. 

▲이두원, 부다페이스도, 2015, 울, 햄프카펫에 오브제와 혼합재료, 31.5x28cm. (사진=부산비엔날레)
▲이두원, 부다페이스도, 2015, 울, 햄프카펫에 오브제와 혼합재료, 31.5x28cm. (사진=부산비엔날레)

1차 참여작가 리스트 선공개

조직위는 2024부산비엔날레 전시 방향과 흐름에 부합하는 참여작가 중에서 10명(팀)을 선공개했다. 존 베아(John Vea)는 뉴질랜드 타마키 마카우리우(Tāmaki Makaurau, 오클랜드의 마오리어 지명) 태생의 통가 출신 작가다. 그는 태평양 지역 예술가들의 활동이 미술의 맥락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노동 및 이민 정책과 관련된 법률이 제정되는 헤게모니적 풍경이 어떤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조각, 비디오, 퍼포먼스를 통해 탐구한다. 부산 출신의 방정아는 인간의 삶과 그 이면의욕정을 그림에 담아왔다. 작가만의 그림체와 특유의 해학으로 구축된 방정아식 리얼리즘은 비판적 축제의 장이 될 이번 전시와 맞아떨어진다. 

송천은 지난 17년간 전국 사찰에 흩어진 불화를 조사하여 집대성하며 통도사의 성보 박물관장을 역임했다. 전통 불화 이수자로서 국가 보물로 지정된 괘불과 벽화 등을 모사한 바 있다. 골록흐 나피시 with 아마달리 카디바(Golrokh Nafisi with Ahmadali Kadivar)는 암스테르담과 테헤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각예술가와 예술 연구자이자 민족음악학자다. 나피시는 자신이 여행하고 작업하는 도시들의 현지 수공예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인다. 두 작가는 지난 6년간 나피시가 시각적 요소를 제작하면 카디바가 디자인과 설치, 퍼포먼스의 무대장치와 음향, 음악 등에 대한 의견을 제안하는 형태로 협업해왔다. 

이외에도 베트남의 응우옌 프엉 린 & 트엉 꾸에 치(Nguyễn Phương Linh & Trương Quế Chi), 한국의 이두원, 정유진, 가나의 트레이시 나 코우쉬 톰슨(Tracy Naa Koshie Thompson) 등이 공개됐다. 최종 작가 리스트는 5월 중 발표될 예정이다.

▲방정아,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 2021, 광목천에 아크릴릭, 370×610cm.
▲방정아, 미국, 그의 한결같은 태도, 2021, 광목천에 아크릴릭, 370×610cm.

유기된 건물의 재탄생

조직위는 부산현대미술관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을 모두 새롭게 구상했다. 부산시 중구 중앙대로 132번 길 12에 위치한 중앙동 현대빌딩은 이전에 자동차 전시장으로 활용되었던 건물로 연면적 4,799.1㎡에 달한다. 초량재는 부산시 동구 초량상로 117-8에 자리한 1960년대 지어진 2층 가옥으로 이번 2024부산비엔날레에서는 처음 전시장으로 활용한다. 지어진 시대의 건축 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배의 모양을 본떠 지어진 양옥집은 과거 집주인이 해운업에 종사했을 것을 짐작하게 한다. 두 건물 모두 지금은 더이상 사용되지 않고 있던 유기된 건물로, ‘유기의 미학’을 경험할 수 있다. 베라 메이 감독은 “전시 장소는 계속 논의 중이며, 배에서 전시가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추가로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해적’과 ‘불교’라는 모티프의 개입으로 엮인 주제가 다소 개연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필립 피로트 감독은 이에 “해적 공동체에서 '협상된 권한'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소통이 중요한 상황에서 다국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은 시각적 언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라며, “시각적 언어가 풍성한 역사를 가진 불교와 맞물리는 지점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해적과 불교의 공통점은 속세를 등지게 된다는 것에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기자들이 우려하듯, 부산의 지역적 특성과의 연관성이 ‘해적과 바다’, ‘동아시아와 불교’의 관계 정도로 단순하고도 피상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점, 그리고 시각적 언어가 중시되는 모티프의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연결고리가 약하고 임의적인 결합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지적을 피해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한편, 전시는 기존에 발표한 개최 일정보다 2주 가량 앞당겨진 오는 8월 16일에 개막한다. 여름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곤 하는 부산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한 것으로, 과거 청년비엔날레 시기에는 7-8월에 개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