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웠던 우리들 삶에 봄이 피어오르다
추웠던 우리들 삶에 봄이 피어오르다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2.25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절기에 대한 고찰, 그 안에서 살펴보는 봄의 이야기들

우리 선조들은 태양의 중요성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태양과 지표면상과의 거리에 따른 열과 빛, 그리고 에너지의 차이에 따라 모든 절기를 만들어 그에 가장 합당한 노동을 고안해낸 결과가 바로 24절기이다.
법정공휴일이 아닌 탓에 유명한 절기 몇 개만 날씨소사로 얘기하며 그 전통이 퇴색되고 있는 요즘이다. 아무리 사회가 각박하다지만 우리 전통의 명맥을 잊는 것보다 더 심각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번 기획을 통해 봄 신상품에 열 올리기보다 봄에 관련한 절기에 대해 제대로 알고 그 의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절기, 대체 무엇일까

황경(黃經, 남극과 어떤 천체를 지나는 대원이 황도와 교차하는 점으로부터 춘분점까지의 각거리를 말함) 15° 간격으로 나눈 24개 시점을 모두 절기라 부르기도 하며 이 날을 입기일이라고도 한다. 즉, 춘분은 황경이 0°가 되는 날이며 이날을 춘분입기일이라 한다.

또한 절기 입기일 부터 다음 입기일 전까지의 기간을 말하며, 기간은 대개 15일이다. 예를들어 춘분날부터 청명(淸明) 전날까지가 모두 춘분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24절기 중 대체로 음력 월초에 오는 절기 12개만 절기라 하고 나머지 12개는 중기라고 하여 구별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5일을 1후라 하고, 3후를 1기라 하여 1년을 24기로 나눌 때 양력으로 월초에 있는 것을 절기라 한다. 입춘, 경칩, 청명, 입하, 망종, 소서, 입추, 백로, 한로. 입동, 대설, 소한이 그것이다.

반면 양력으로 월말에 있는 것을 중기라 한다. 오늘날 태양력에 따르면 절기는 매월 4~8일에 있게 되고, 중기는 매월 하순에 있게 된다. 중기는 윤달과 관련이 있다. 태음태양력에서는 중기가 월의 중앙에 오지 않고 월초 또는 월말에 오기도 한다. 또 중기가 들지 않는 달도 있다. 중기는 절기를 제외한 나머지 12개의 절기를 일컫는다.

◆24절기, 어떻게 정했나

인간이 역(歷)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계절의 변화를 알기 위해서다. 특히 농경사회에서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기에 우리 민족에게는 생활의 율동과도 같은 것이었다.

계절은 태양의 운동에 따라 변하지만 과거에는 음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달력과 계절이 일치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음력에 태양의 운동을 반영한 24절기를 같이 사용했다.

24절기는 춘분점(春分點, 태양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점)부터 황도(黃道, 천구(天球)에서 태양의 궤도)를 따라 동쪽으로 15도 간격으로 24개의 점을 정했을 때 태양이 각 점을 지나는 시기를 말한다.

절기는 이처럼 음력을 썼던 농경사회에서 필요에 따라 양력과 관계없이 만들었지만 태양의 운동을 바탕으로 정한 결과 양력과 일치하게 됐다. 하지만 입춘이 지난 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감에도 싸늘한 요즘 날씨를 보면 절기가 오늘날과 맞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은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기후 변화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디지털 시대가 더 정확하다고 신봉할지 모르지만, 사실 24절기의 이름은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후를 잘 나타내 주도록 정해졌기에 우리나라 기후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일 년의 시작, 봄에 관련한 절기

입춘(立春)

봄을 상징하는 입춘은 24절기 중 첫째로 새로운 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이날 내리는 비는 만물을 소생시킨다 하여 반겼고, 입춘 때 받아둔 물을 부부가 마시고 동침하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단군 신화에서 나오는 파와 마늘 역시 오신채의 정신이 들어가있다

입춘날 먹는 음식으로 오신채(五辛菜)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파·마늘·자총이·달래·평지·부추·무릇 그리고 미나리의 새로 돋아난 싹이나 새순 가지 등 8가지 가운데 노랗고 붉고 파랗고 검고 하얀, 각색 나는 다섯 가지를 골라 무친 것이다. 노란 색의 싹을 한복판에 무쳐놓고 동서남북에 청·적·흑·백의 사방색(四方色)나는 나물을 배치하는데 여기에는 임금을 중심으로 사색당쟁을 초월하라는 정치화합의 의미가 담겨있다.

이외에 다섯 가지의 맵고 쓰고 쏘는 오신채를 먹음으로써 인생오고(人生五苦, 세상을 살아가는 데 따르는 다섯 가지 괴로움)를 참으라는 처세의 교훈도 담겨져 있다.

비판보다는 비평을 일삼는 정치, 사소하고 조그만 자기 고민으로 우울해하고 죽어가는 사회. 오신채의 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오늘이다.

우수(雨水)

우수는 제법 포근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해 눈 대신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시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우수, 경칩에 대동강 물이 풀린다” 는 말이 있듯 대지가 움트기 시작하는 때이지만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 감기 환자가 속출하기도 한다.

▲이제는 자주 볼 수 없는 논·밭두렁태우기

농부들은 논밭에 있는 병충해 예방을 위해 논·밭두렁 태우기를 하는 등 본격적인 영농준비에 들어간다. 논·밭두렁 태우기는 겨울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각종 병충해를 박멸해 증산을 꾀한다는 것에서 시작된 하나의 풍습이다.

하지만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제거되는 병·해충은 11프로에 불과한 반면 천적인 거미와 꽃노린재 등은 오히려 89프로나 차지한다하니 지혜로운 조상들도 완벽할 순 없었나 보다. 게다가 좋은 농약의 개발과 산불 예방차원으로 요새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우수 절기 때쯤 정월 대보름이 있기 때문에 오곡밥을 먹기도 한다.

경칩(驚蟄)

경칩은 글자 그대로 땅 속에 들어가서 동면을 하던 동물들이 깨어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무렵이다. 한편에선 이 무렵 대륙에서 남하하는 한랭전선이 통과하면서 울리는 천둥 때문에  땅속에 있던 개구리·뱀 등이 놀라서 튀어나온다는 말도 있다.

▲경칩에 사랑을 약속했던 조상들이 은행나무가 되어 현세의 연인들을 살펴보는 듯 하다

이날 우리 선조의 남녀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써 은행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았다. 은밀히 은행을 나누어 먹으며 천년의 사랑을 맹세했다고 하니 오늘날의 발렌타인데이인 셈이다.

근데 하필이면 왜 은행씨앗이었을까. 은행나무는 그 고약한 냄새와 달리 수나무와 암나무가 서로 맞바라보고만 있어도 사랑이 오고가며 열매를 맺기에 순결한 사랑을 유감(類感)한 것이며, 심어 그 싹을 틔우면 천년을 살아가는 영원한 사랑을 기원한 까닭이라고 한다.

역시 물렁물렁한 순간의 달콤함과는 대조되는 선조들의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춘분(春分)

춘분은 태양의 중심이 춘분점 위에 이르러 적도 위를 똑바로 비추며 밤과 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시기이다. ‘실제로 낮이 더 길다’는 잘못된 상식이 전해지기도 하는데 이는 태양이 진 후에도 얼마간 빛이 남아 있기 때문에 생긴 오류이다.

춘분은 만물이 약동하는 시기로 겨울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때이다. 추운 북쪽지방에서도 "추위는 춘분까지"라고 했다.

그러나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이때를 전후해 많은 바람이 분다. '꽃샘바람', '꽃샘추위' 라는 말 역시 꽃이 필 무렵인 이때의 추위가 겨울 추위처럼 매섭고 차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춘분은 봄의 중앙이며, 불교에서는 춘분 전후 7일간을 봄의 피안(彼岸)이라 하여 극락왕생의 시기로 봤고, 기독교에서는 부활절을 정할 때 기준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춘분 후 최초 만월 다음에 오는 첫 일요일).

청명(淸明)

청명은 보통 한식과 겹치거나 하루 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매일반"이라는 말이 생겼다.

청명이란 말 그대로 날씨가 좋은 날이다. 벚꽃이 만발하여 수많은 연인들이 벚꽃길을 찾아나서는 시기이다. 또한 날이 풀리고 화창하여 식목에 적당한 식목일이기도하다.

이렇게 화창한 청명이지만 당시 정부 정책은 흐리기만 했다. 당시 관(官)에서는 일방적으로 ‘봄철 논물 가두기’ 를 강력 추진했다. 청명이 되면 비로소 봄밭갈이를 하게 되는데, 논물을 가두어 두었다가 모내기 때 천수답(天水畓, 벼농사에 필요한 물을 빗물에만 의존하는 논)이나 물이 부족한 논에 요긴하게 쓰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가두어 둔 물은 대부분 봄 가뭄에 말라버렸기 때문에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았다. "한식날 논물은 비상보다 더 독하다" 는 말이 생길 정도로 농가에서는 논물을 가두어 두면 지력이 소진되고, 논갈이에 지장이 있어 이를 기피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조차 모른 채 계속 추진한 ‘봄철 논물 가두기’는 농민을 무시한 전시행정의 표본이 되었다.

‘국민과의 소통’보다 ‘밀어붙이기’가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다. 불현듯 차갑기만 한 한식이 아닌 진정한 청명의 의미가 그리워진다.

곡우(穀雨)

곡식에 필요한 비가 내린다는 곡우 무렵이면 못자리를 마련하는 것부터 해서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된다. 그래서 ‘곡우에 모든 곡물들이 잠을 깬다’, ‘곡우에 가물면 땅이 석자가 마른다’,  ‘곡우가 넘어야 조기가 운다’ 같은 농사와 관련한 다양한 속담이 생긴 것이다.

농사 중의 농사인 벼농사의 파종이 있는 날이므로 죄인도 잡아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하니 특별사면이 따로 없다.

▲선조들의 곡우 약수제의 모습을 그린 그림

오늘날엔 곡우 때 가장 큰 골칫거리가 생긴다. 바로 황사가 그것이다. 몽골건조지대와 중국 황하지방에서 불어오는 황사는 우리나라 곳곳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호흡기 질환 등을 유발한다. 이럴 땐 곡우 물을 마셔보는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곡우 무렵엔 나무에 물이 많이 오른다. 곡우물은 주로 산 다래, 자작나무, 박달나무 등에 상처 내서 흘러내리는 수액이다. 경칩 무렵에 나오는 고로쇠 물은 여자물이라 하여 남자들에게 더 좋고, 거자수(자작나무 수액)는 남자물이라 하여 여자들에게 더 애용되었다고 한다.

거자수는 특히 지리산 아래 구례 등지에서는 곡우 때 약수제까지 지낸다하니 예나 지금이나 정력에 관심이 많은 건 똑같나보다. 그 맛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스포츠 음료와 비슷해 보통 사람들은 구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맺으며

봄 절기를 알아보면서 입춘의 미학(美學), 우수의 변화, 경칩의 사랑, 춘분의 평등, 청명의 정치, 곡우의 태동(胎動)이 버무려진 사회가 되길 다시 한 번 상상해 보게 된다. 계절의 봄이 아닌 우리 사회에 진정한 봄이 피어올라 모두의 마음에 웃음꽃이 만발하는 그날 말이다.

서울문화투데이 박기훈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