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생각의 창고를 열다
박원순, 생각의 창고를 열다
  • 인터뷰/이은영 편집국장
  • 승인 2010.02.2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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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힘, 그들이 가진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박원순,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떠오르는 것들은 열 손가락으로도 다 헤아리기 어렵다.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그리고 희망제작소까지, 그 중심에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이 자리하고 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기는 쉽다. 진정 어려운 것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약한 것이다. 박원순은 그런 사람이다. 어린 시절 개구쟁이였다는 그는 이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생각장이’가 돼 있다. 소셜 디자이너, 박원순의 ‘생각의 창고’ 문을 열었더니 무궁무진한 아이디어들이 정치부터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분야별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생각의 창고’로 독자들을 안내하겠다.

언제나 바쁜 하루를 보내는 박원순 이사. 요즘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욱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선거를 앞둘 때면 늘 정당에서 러브콜을 보내곤 했다. 물론 이번 선거에도 어김없이 지난 1월, 민주당에서 공개적으로 러브 콜을 보낸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지방자치 민선 4기입니다.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죠. 이제는 지방자치발전이 새로운 단계로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완전히 그리고 새로운 비전이 펼쳐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합니다. 저는 국민공청제나 5개 야당 합당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물론 직접 참여할 생각은 아직도 없고 말입니다.”

답은 현장에 있다!

박원순 이사는 공무원들의 개혁, 나아가서는 정부와 민간이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 가면 반드시 길이 있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공무원을 바로 세우지 않는 한 개선의 여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을 예로 들어볼까요. 공교육이 문제라고들 하는데, 저는 교육부를 없애는 것이 오히려 교육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교육 현실은 현장을 지원하기 보다는 오히려 막고 있으니까요.”

현 정부에 대한 일침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박원순 이사는 현 정부가 복잡해진 현대사회를 운영하긴 어렵다고 지적하며, 작은 정부에 대해 언급했다. “공무원은 민간과의 협력 관계를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공치 또는 협치랄까요. 물론 공공성을 강화해야 할 부분이 존재합니다. 정부는 말이죠. 예산을 배치하거나 전체적인 코디네이팅을 담당해줘야 합니다. 정부가 지나치게 나서야 되겠습니까.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죠. 민간은 커다란 생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정 계층이 아니라 국민의 정부여야 하니까요.”

제2의 뉴욕이 아니라 ‘우리의 서울’을 만들어야

숭례문 화재 2주기를 뒤로 한 채 복구가 시작됐다. 박원순 이사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문화유산국민신탁과 재단법인 예올 주최로 열린 특강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는지 물었더니, 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밤을 새서 이야기해도 다 못하겠는걸요. 우리는 기본적으로 정신적인 유산 속에서 자주적인 근대화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물리적인 유산도 마찬가지고요. 근대화나 역사의 진전이라는 것이 우리의 것을 파괴하면서 이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사라졌어요. 저는 그 인식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중에 본지 기자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트위터에 올린 박원순 이사 

그는 제2의 파리나 뉴욕이 아닌 ‘우리의 서울’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것에 기초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서양의 아류 밖에 되지 않을테니까요. 서양의 것을 그대로 베낀다면 그것은 진정한 우리의 것이라 보기 어렵겠죠. 우리의 것을 융합하고 재해석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 신청사 짓는다고 하면서 발굴된 유물들,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아직도 그냥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도시 개발이나 공공시설이 우리와 단절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것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제2의 파리가 아니라 우리의 서울을 만들어야 합니다.” 진정 우리의 것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났다.

농촌이 바로 ‘블루오션’

그는 <마을에서 희망을 보다>라는 책에서 농업과 농촌을 블루오션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도 농촌이라고 하면 땅을 일구고, 검게 그을린 농부의 모습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을 박원순 이사는 기다렸다는 듯이 속시원하게 풀어주기 시작했다.

“6월쯤 1박2일 강연을 준비 중입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로, 안철수 박사 등 유명 인사들의 강연도 준비하고, 공연도 하고요. 귀농이라고 하면 농사짓는 것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농촌은 새로운 비전이자 블루오션입니다. 새롭게 가공하고 마케팅하면 분명 성공할 것이라 생각합니다.”그는 영국 런던 버로우 마켓을 예로 들어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버로우 마켓(Borough Market)은 영국 5대 관광지 중에 하나로, 농부들이 매일 직거래 장터를 열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최고의 관광지이자 도시민과 농민들이 함께 만날 수 있는 새로운 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 농촌도 그렇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국적으로 수 만개의 직거래 장터가 생긴다면 농가 소득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도 할 수 있어요. 농부들이 직접 물건을 파니까 도시민은 신선한 야채를 매일 접할 수 있고 말입니다.” 그야말로 일석삼조,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농촌인 것이다.

 

박원순 이사는 직접 스크랩한 신문을 보여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한창 인터뷰가 무르익었을 때,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을 어렵게 꺼냈다. 박원순 이사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기업 후원이나 정부와의 협력 사업이 중단된 배경에 대해 국정원이 자리하고 있다는 취지의 언론 인터뷰를 한 것에서 비롯, 민사소송을 제기 받은 상태다. 국정원과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그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것이다.

“아직도 소송은 진행 중입니다. 금방 마무리 될 일은 아니니까요.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잘됐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게 되었으니까요. 정부와 같이 사업하기위해 만든 곳이 희망제작소입니다. 그런데 일반 기업들이나 정부와 협력하지 않으니 이제는 대중들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정부가 손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좋은 아이디어가 많은데, 우리의 좋은 아이디어를 다 잃었으니까요.” 그는 여유있는 모습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평범한 당신이 주인공인 시대 도래

시민사회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는 박원순 이사. 그는 강의에서 ‘Creative Common’ 이 되라고 주문한다. “2006년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YOU’를 선정하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시대라고 한 바 있습니다. 이전에는 리더가 있고, 따르는 이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모든 이들이 주인공인 시대인 셈입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와 행정, 기업경영, NGO 등의 가담시킬 수 있는 채널을 확보해야 합니다.”

대중의 힘을 강조하면서, 희망제작소 운영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희망제작소는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고, 그들의 힘이 우리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대학은 어떤가요. 등록금만으로는 운영이 힘들고요. 박물관 역시 민간 자원의 힘을 의존하지 않으면 운영이 힘듭니다. 우리 사회는 대중의 힘, 그들의 아이디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을 소셜 디자이너라고 소개했다.

그의 명함에는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라고 적혀 있다. 그래서일까. 사회 어느 한 분야에도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소셜 디자인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있었다. 희망제작소도 그의 작은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된 것이라니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공식적으로 지위를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왕의 잘못에 대해서 때로는 목숨을 걸어가며 이야기했습니다. 지금의 그 역할을 NGO가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필요한 단체들입니다. 아름다운재단이나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모두 정부의 도움 없이도 가능했습니다. 작은 아이디어가 지금의 희망제작소를 있게 했거든요.”

과거로부터 답을 얻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문득 그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졌다. 어린 시절 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수박 서리에 땅콩 서리까지, 서슴지 않았던 개구쟁이였어요. 소심한 면도 있었지만 놀기에 집중했죠. 저는 어릴 때 저지르는 잘못은 용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잘못을 깨우칠 수 있도록 하는 만들어주고, 동시에 그 아이들이 자신감이나 열정 또는 자존감을 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늘 실수하고, 실패하면서 그런 것들이 쌓여 배움이 되는 게 아닐까요. 실패가 좌절의 기억으로 남기보다는 새로운 경험과 교훈을 얻는 계기로서 남아야 합니다.”

그의 교육 마인드는 박원순 이사 어머니로부터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부하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그의 어머니. 경남 창녕 ‘장마’라는 아주 작은 마을에서 중학교를 마친 그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 밑에서 공부했다고 했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어느새 교육학 수업 나아가서는 역사학 수업 시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지난 1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사회적 갈등, 분단 등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할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 시간들을 그냥 과거로 남겨두지 말고, 높은 품격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과거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유교적인 생각들이나 개발시대 굴뚝 사업들이 아닌 보다 생태적이고 창조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민주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앞서 언급한 협치, 네트워크를 토대로 한 사고방식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

박원순 이사는 어린 시절 미래 자신의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의 제 모습을 어디 상상이나 했겠어요.(웃음) 이런 직업이나 역할을 생각지도 못했죠. 책을 좋아해서 시인을 꿈꾸기도 했고, 정치인의 꿈을 막연히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까요. 저는 지금의 제 모습에 만족합니다. 어느 재벌의 총수나 판사가 되는 게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웃는 그의 모습에 덩달아 따라 웃고 말았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떤 질문을 던지든 그 답의 끄트머리는 아이디어로 마무리됐다. 씽크 탱크(Think Tank)의 힘이란 게 이런 것일까. “지금의 현 교육 현실에서는 구체적인 꿈을 꿀 수 없습니다. 저는 직업의 세계를 알릴 수 있는 캠프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학과와 연계해 아이들이 좀 더 구체적인 꿈을 생각하고, 꿀 수 있도록 다양한 캠프가 마련돼야 합니다.”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에 하나는 ‘당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라고 했다. 식상하다고 여기면서도 꿋꿋하게 물었다. “한 명을 꼽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공자가 말하길,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고 했습니다. 세 사람이 같이 길을 걸어가면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는 뜻이죠. 무슨 일이든 누구를 만나든 배울 수 있습니다. 유명인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후배에게서 혹은 제자에게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려는 자세입니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비법은…

그는 ‘신뢰’를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아름다운재단이나 희망제작소 등 지금의 자리까지 오게 된 배경에는 신뢰가 자리하고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 정치, 기업도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합니다. 기업을 예로 든다면 ‘이 기업이 만든 물건이라면 믿고 살 수 있어’, 정치인을 예로 든다면 ‘이 정치인이라면 사회를 위해서 일할거야’라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신뢰의 원천은 투명성에 있다고 말하는 그는 그것이야말로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라고 일축했다.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는 인터넷에 모든 재정을 투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부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쓰인다면 누가 하려고 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그는 문화예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제만 생각하고, 이야기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단’은 현대차만큼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창조적입니다. 창조력과 상상력이 합쳐진다면 우리는 경제도 문화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를 위해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살피고 고민하는 진정한 장이, 박원순 이사. 그는 장이 중에서도 ‘생각장이’다.

 

항상 노트북을 챙겨 다니는 그에게 희망제작소 인턴들이 만들어준 ‘노트북은 내운명’

인터뷰,사진 이은영 편집국장/ 정리 정지선 기자 press@sctoday.co.kr

 

박원순(1956~)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1975년 서울대 법대 입학 후 학생운동으로 제적
1979년 단국대학교 사학과 졸업
1991년 런던대 정치경제대학원 수료
1980년 사법시험 합격(22회)
1982년 대구지검 검사
1986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1995년 ~ 2002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2년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현)
2006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현)
2008년 대한민국 디자인 홍보대사

2006년 필리핀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 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