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촉도>와 소쩍새
<귀촉도>와 소쩍새
  • 김우종 (전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 승인 2010.02.2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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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촉도'는 돌아오지 못하는 망자의 울음소리

힘든 것은 많다. <죄와 벌>에서 라스코리니코프가 전당포집 노파와 그 조카를 죽인 것도 대단히 힘든 살인이었고 그 때문에 그는 살인 후 열병환자처럼 신음하게 된다. 그렇지만 그의 행위가 그렇게 힘들었다는 것 때문에 살인이 미화되거나 정당화 될 수 없고, 그 결과로 전당포 집에서 들고 나간 장물들이 미화되고 정당화 될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을 미화하고 정당화한 것은 라스코리니코프 자신뿐이었다. 서정주도 이런 라스코리니코프와 같은 유치한 논리를 그의 친일 시에 도입한 것이다.


ㄹ. <귀촉도>와 소쩍새


소쩍새와 죽은 자들

이 시에서 봄부터 그렇게 울었다는 소쩍새 울음은 가엾게 죽어서 고향에 돌아오지 못해 한이 맺힌 망자亡者의 울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터에서 죽거나 포로가 되어 멀리 가버린 후 죽어서 돌아오지 않는 망자의 울음이다. 서정주 자신이 그런 의미로 소쩍새 울음을 시어화詩語化해서 상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용례用例가 그렇고, 특히 이를 다른 시 <귀촉도>에서 그가 사용한 시기가 거의 동시적이기 때문이다.

또 이 시들의 소쩍새 울음은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일치한다. 전쟁은 끝났는데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기다리며 한숨과 눈물의 세월을 보내는 많은 가족들이 있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즉 제1연은 그렇게 중국 땅에서 태평양에서 죽어서 그 넋이 소쩍새가 되어 한 맺힌 울음을 토하게 만든 많은 생명들의 댓가로 저 혼자 고고하게 살아남은 일본 천황폐하를 아름다운 국화꽃에 비유한 것이다.

1947년의 <국화 옆에서>와 1948년 시집 <귀촉도>는 같은 해방직후가 된다.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굽이 굽이 은하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1948년 <귀촉도> 제3연에서)

 

이 시의 제1연에서는 '진달래 꽃 비오는 서역삼만리西域三萬里가 나오고, '흰 옷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巴蜀三萬里'란 말도 나온다. 이별의 슬픔을 표현한 시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는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저승 세계, 극락의 세계이며 작자는 그 죽음의 길을 고운 진달래꽃으로 장식하여 이별의 슬픔과 가는 자에 대한 연민의 정을 한껏 심화했다.

여기서 '다시 오지 못하는 파촉 삼만리'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고국 또는 고향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님이 '귀환 불능점인 파촉으로 가버린 것이다'라고 어느 교수의 <서정주 평전>(2008년) 내용은 해석이 잘못된 것이다. 작자 자신이 시에서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 삼만리'라 했는데 거꾸로 파촉으로 갔다고 해석했다.

이 시는 중국에서 촉나라가 망한 후 진나라로 끌려가서 다시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어 버린 많은 병사들이 소쩍새(귀촉도)가 되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귀촉도 귀촉도歸蜀道 歸蜀道' 하며 피맺힌 울음을 울었대서 그 이름이 귀촉도가 되었다는 전설에서 전쟁과 죽음과 이별의 이미지를 따온 것이다.

작자는 이 시의 말미에 귀촉도와 소쩍새, 접동새, 자규는 모두 같은 새 이름이라고 주석을 붙여 놓았다.

그렇다면 그는 <국화 옆에서>에서처럼 소쩍새란 단어를 써도 되었겠지만 '촉나라로 돌아오는 길?이란 한자어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을 의미하고 그 전설을 통하여 내용을 더 구체화하고 싶어서 ?귀촉도'를 썼을 것이다.

'소쩍새'와 달리 '귀촉도'에는 전쟁과 죽음의 의미가 구체화된 전설이 붙는다.

그러므로 이 시는 전쟁 직후라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그 때는 바로 2차 세계대전 직후가 된다. 1931년의 만주침략부터 따지면 15년 전쟁이 끝나고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자는 돌아오지만 죽은 자는 소식도 없이 그 혼이 소쩍새가 되어 밤마다 피를 토하며 뒷동산에 찾아와 울던 때가 된다.

이 무렵에 전쟁터에서 아들이나 아비나 형제자매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기다리던 사람들이 기쁨으로 눈물바다를 이루는 대단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동시에 이것은 돌아오지 못하는 가족의 슬픔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에 대한 반증이다.

당시의 대중가요 <귀국선>은 그 같은 민족의 감정적 감정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들려준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국산천 찾아서

얼마나 그렸던가 무궁화 꽃을

얼마나 외쳤던가 태극 깃발을

갈매기야 울어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희망도 크다.

돌아오네 돌아오네 부모형제 찾아서

몇 번을 울었던가 타국살이에

몇 번을 불렀던가 고향 노래를

칠성별아 빛나라 파도야 춤춰라

귀국선 뱃머리에 새날이 크다.

(1946년 손로원 작사)


태평양의 그 넓은 바다와 육지에서 살아 돌아오는 귀국선의 뱃노래는 이렇게 감격적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살아남지 못한 사람들은 귀국선에 타는 대신 날개를 달고 진작부터 고향의 뒷동산까지 날아와 있었다. 소쩍새가 되어서 날아 와 울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이 <국화 옆에서>에서는 '봄부터 그렇게 울었었나 보다'라고 말한 소쩍새이며 <귀촉도>에서는 서역 만 리로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고 청상과부를 울리고 있는 귀촉도다.

김우종 (전덕성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