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월
세 월
  • 홍정자(수필가)
  • 승인 2010.02.25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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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세월은 하늘과 땅 뿐

 세월은 같은 공간에서도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달리 느껴진다. 똑같은 긴 시간을 거치면서도  탄생의 시간은 길기만하고 임종의 시간은 찰나의 사실로 경악하게 된다.

 어린이 세월은 콩나물 자라듯이 쑥쑥 크기만 하고, 젊은이 세월은 아침마다 오기만하며, 추억에 잠긴 늙은이 세월은 저녁마다 가기만한다. 자식 잃은 어머니 세월은 슬프기만 하고 신혼부부 달콤한 세월은 짧기만 한데 홀아비 외로운 세월은 길기만 하다.

  세월은 자라지도 늙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늙고 병들면서 오지도 가지도 늙지도 죽지도 않는 허공에 저마다 제 세월을 한탄한다. 

 정처 없이 떠도는 구름, 갈 길도 모르는 체 흘러만 가는 강물,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닷가 파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세월은 하늘과 땅뿐인가.

 꽃이 피고 비 내리며 낙엽지고 눈 내리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세월이고, 동구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 새벽녘 잠결에 듣던 피아노소리, 가을밤 창밑에서 울던 귀뚜라미소리는 귀에 들리는 세월이다.

 인생살이 별것인가. 먹고 마시고 일하고 노는 것은 몸의 세월이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는 오욕칠정은 마음의 세월이다. 아는 세월, 모르고 지나는 세월이 다 개구리 올챙잇적 삶을 모르고, 죽은 사람은 산 사람의 슬픔을 모르고,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의 심정을 알 리 없다.

 하루살이는 하루밖에 모르고 하루를 살고, 천년을 사는 소나무는 천년을 사는 줄도 모르고 신다. 인생이 제아무리 만물의 영장이라고 큰소리 쳐도 백년세월 안팍이다. 영웅호걸이나 굼벵이, 지렁이도 저마다 제 세월을 사는 게 우주의 섭리 아닌가. 

 하늘 땅, 산천초목, 사람이 세월이고, 몸과 마음이 세월이라. 몸 따라  마음 따라 사람 따라 세월은 달라지니 달라지는 세월은 일념즉시 무량겁(一念卽時 無量劫), 모두가 마음에서 오고 가는 것이거늘. 그러기에 가신님 기다려도 오지 않는 세월이 있고 보내도 가지 않는 세월도 있다. 

 세월은 낯익은 풍경들을 뒤로하고  사라지는 열차같이 앞모습을 감춰버리고 뒤꽁무니만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된 한정된 시간을 그저 그렇게 보낸 것이 회한이 되고 고통이 되어 세월타령을 한다.

 시간이란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 시간은 활동하기 위해 존재하고 움직이지 않는 자에게는 무의미하다. 백년을 살고도 남는 게 없는 삶을 살 수 도 있고 하루를 살아도 남는 인생이 있다. 인생이란 주어진 시간을 얼마를 살던 어떻게 보내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홍정자 수필가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