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진부한 시각을 거둬라 ‘500일의 썸머’
사랑에 대한 진부한 시각을 거둬라 ‘500일의 썸머’
  •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0.03.02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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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500일의 썸머(이하 썸머)는 요즘 세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랑, 결론적으로  사랑에 대한 완결된 의미는 없음을 보여준 에시드한 로맨틱 코미디다.

사랑의 테두리를 이루는 것은 운명의 안쪽일 수도 바깥쪽일 수도 있다. 운명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주문이며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마법의 속성을 지닌 단어다.

 운명이라는 아우라로 사랑을 규정 짓고 싶어하는 세상의 모든 연인들에게 영화 썸머는 사랑을 규정할 수 있는 도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귀뜸해 준다.

카드회사의 카피라이터인 순수청년 샘에게 사장 비서로 들어온 썸머는 한순간의 운명으로 다가온 사랑의 여신이다.

그러나 사랑이나 운명을  믿지 않는 썸머는 샘이 자신의 삶을 구속하지 않은 그저 좋은 친구로  남길 바란다. 그러나 친구와 연인의 애매한 관계로 발전하게 되고 연애의 예측할 수 없는 기상예보는 500일 간 지속된다. 기성세대에게 비춰지는 썸머는 이기적이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조금도 남기지 않는 냉혈한처럼 보일 수 있는 인물이다.

하지만 썸머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처럼 열정적이며 솔직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따르는 평범한 여자일 뿐이다. 

순수한 소년 같은 샘에게 사랑은 운명일 수 밖에 없고  그 운명은  사랑에 대한 강박증으로 작용하며 끊임없이 샘을 괴롭힌다. 샘은 자신을 운명으로 느끼지 않은 썸머가 결코 이해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유하지 못한 사랑은 미움으로 변해간다.

수많은 사랑에 관한 로맨스 영화가 여주인공의 시선에서 연인을 바라보았던 것과는 달리 영화 썸머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남자의 마음을 마치 일기장을 한장한장 읽어 내려가는 듯한 재미를 주는 영화다. 각본가의 실제 이야기가 담긴 것이라 공감 100%의 현실감을 주고 있기도 하다.

일상에서 쉽게 털어낼 수 없는 사랑의 단상을 주인공의 독백이나 친구들의 대화를 통해  디테일하게 표현함으로서 매순간 지루하지 않게하는 것과, 만난 날짜 별로 에피소드와 그 안의 감정들을 만화적 기법들을 적용해 표현하고 있는 것도  무척 재미있고 신선하다. 

기적이나 운명은 존재하지 않고 정해진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샘은 성장통을 겪은 소년처럼 우연히 만난 새로운 사랑에  용기있게 다가선다.

사랑을 기적이나 운명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요즘 세대에게는 주인공 톰의 표현대로 ‘우주의 이치인 우연’을 믿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

인간이 하루에 선택해야 하는 것이 평균적으로 400가지가 넘고 꼭 해야 되는 선택은 10가지가 넘지 않는다고 한다. 

영화 썸머는 ‘사랑에 대한 선택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소유나 대립의 구도가 아니다.’, ‘새로운 사랑을 꿈꾸기를 두려워하면서도 결코 가볍게 치부할 수없는 외로움을 견뎌내야 한다고 믿는 것은 ‘감정의 관습’일 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준다.

소심하면서도 귀엽고 순수한 톰을 연기한 조셉 조든 레빗이나, 사랑을 믿지 않았던 미워할 수 없는 매력녀인 썸머핀을 맡았던 조이 데샤넬은 마치 실제 주인공인 듯한 느낌을 줄만큼 이 영화의 완성도를 이뤄낸 배우들이다.

카피라이터의 위트가 담긴 카드의 문장을 살린 대사들도 무척 흥미롭다. (결국 사랑을 잃은 톰이 카드의 글은 모두 거짓말이라며 회사를 뛰쳐나가게 된다.)

영화자체의 컨셉이 멜로 드라마, 혹은 연인들을 위한 리얼 tv쇼같은 이미지를 센스있게 영화로 표현해낸 것이라 영화 안에서 예술적 혹은 미학적 가치를 두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예쁘게 풀어낸 사랑에 대한  방정식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그런 의미에서는 밉지 않은 영화다.

또한 사랑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나 좀더 다양한 의미를 찾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위안과 용기를 주는 고마운 영화가 될 것이다.

문제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는가다.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