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꿈꾸면서 문화재는 뒷전인가
문화도시 꿈꾸면서 문화재는 뒷전인가
  • 박기훈 기자
  • 승인 2010.03.11 12: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색 시멘트 덩어리에 짓이겨지는 찬란한 역사

집 앞마당에 100년 된 희귀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집을 리모델링하는데 방해가 된다며 그 나무를 뽑아 다른 곳에 심었다. 혹은 그 나무가 너무 늙었다고 베어내고는 똑같은 모양의 조각으로 만들었다. 과연 그것이 원래의 의미와 장소를 지닌 원형 그대로의 나무인가? 기존의 자리에서 옮겨진, 혹은 똑같이 만들어진 조형물이 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우리나라 문화재, 특히 유물관리 실태가 이렇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 신청사 부지는 소중한 역사자료

작년 여름 서울시 신청사가 들어설 태평로 1가 31 일대 서울시청 북편에서 보물급으로 추정되는 임진왜란 이전의 무기류가 무더기로 출토됐다. 특히 대포의 일종인 불랑기자포(佛狼機子砲)를 비롯해 다수의 승자총통 등 철제 화약무기가 다량으로 출토돼 이곳이 조선시대에 각종 무기류를 만들던 관청인 군기시(軍器寺) 터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청 신청사 부지 내 조선시대 건물지 전경

당시 한강문화재연구원(원장 신숙정)은 “6월 11일 이후 서울 중구 태평로 신청사 터를 발굴 조사한 결과 건물터 1, 2, 12호에서 대포인 불랑기자포 2점을 비롯해 승자총통, 대형 화살촉 등 무기류 70여 점을 발굴했다”고 밝히며 “이번에 발굴한 유물은 불랑기자포 가운데 출토지가 확실한 최초의 유물”이라고 한 바 있다. 이는 서울시청 터가 조선시대 무기 제작 관청인 군기시 터였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시대 호안석축(護岸石築. 물가에 돌로 쌓은 벽) 1기와 건물터 21동, 담장 9기, 우물 2기를 비롯해 근현대에 이르는 각종 유구(遺構) 44기도 함께 확인되었던 역사적인 순간에 많은 이들은 그 터 자체의 보존을 염원했다. 특히 문화재위원회는 서울시 신청사 예정지와 청진지구 등 대규모 개발 현장에서 조선시대 유적 · 유물이 잇달아 쏟아짐에 따라 4대문 내 개발계획의 전면 재검토 필요성을 제기했다.

전문가들은 발굴된 문화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지적했다. 당시 한강문화재연구원이 개최한 발굴지도위원회에 참가한 지건길 문화재위원회 매장문과 위원장(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저기 파일(H빔)을 박아 놓은 것이 꼭 한양 600년의 심장 한가운데에 박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현장에 유구를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서울시는 이미 땅 속 깊이 60여개의 철제 에이치(H)빔을 박아놓고 공사를 진행 중인 상태이다. 이에 대해 김영근 문화시설사업단 신청사담당관은 “신청사 출토 유물들을 안전하게 이전 후 신청사가 완공되면 지하1층에 전시관을 만들어 보존하는 것으로 문화재청 심의에서 확정됐다. 문화재청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받으며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동상의 훼손이나 복원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부지에 더 많은 유물들이 땅 속에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신청사부지 후관 쪽 지하층은 이미 오래전부터 훼손돼있었다. 나머지 부분은 문화재 전문가의 입회하에 흙을 파냈었고, 그 부분들 중 일부에서 문화재들이 나왔다. 이후 전문가들과 지표조사를 계속 시행하면서 더 이상 땅을 파고 내려가도 아무것도 없다는 결과를 내렸다”고 답했다.

▲서울시 신청사 부지서 발굴된 보물급 유물 '불랑기자포'

이런 서울시의 입장에 대해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지금까지 서울시의 행태로만 본다면 믿을 수 없는 약속이다. 실례로 금성당(錦城堂) 같은 경우도 완벽한 복원을 얘기했지만 껍데기만 남게 됐다”며 과연 이것이 옳은 방법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이어 “땅 속에 더 이상의 문화재가 없다는 것도 섣부른 생각이다. 좀 더 시간을 두고 기다려봐야 한다. 종로 유적 발굴 때도 15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유물들이 대량으로 나왔다. 땅 속은 시대별로 층위가 다양하기 때문에 암반이 나오기 전까지 파내려가면서 조사해야 알 수 있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신청사 유물과 관련한 서울시의 태도에 대해 한 네티즌은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내며 유물만 건져내겠다는 모습이 마치 바다를 메우면서 바다고기들을 호수로 옮겨 먹이주고 잘 키우겠다고 하는 것 같다. 과연 그 물고기들이 호수에 적응해서 잘 살 수 있을까”라며 씁쓸해하기도 했다.

유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발굴된 터이다. 이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 등재 심사 때 그 유적이 원래 놓인 자리를 중요시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만큼 그 장소를 통해 주변 환경을 알 수 있음은 물론 사라진 유적의 상부구조, 기둥의 굵기, 건물규모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이기 때문이다.

기존 것은 파괴하고 나온 것은 옮겨지고

서울시 신청사 부지의 유물에 대해 얘기하기 전에 앞서 언급할 것이 있다. 바로 청계천 복원과정과 동대문운동장 부지에서 나온 문화재들이다.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당시의 청계천 복원을 통해 국민들의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동안의 오염되었던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흘러 고기들이 찾아오고, 아름답게 꾸며진 조형물들로 편안한 쉼터가 되었다. 어디서나 청계천 복원의 ‘신화’에 관한 칭찬과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 산재해있던 조선시대의 수많은 문화재들은 자취를 감춰 우리의 역사가 흐르던 청계천리 현대식 중장비로 인해 맥이 끊어졌다는 목소리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취재 도중 만난 한 시민은 “서울시장 임기 안에 마치려는 빨리빨리 습성으로 만들어진 이 하나의 거대한 어항은 마치 집을 깨끗이 청소한다고 먼지 묻은 족보들을 다 태워 없앤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문화재들이 나올 때마다 서울시는 ‘선공사 후보존’ 을 약속했다. 그러나 조선왕조 역사가 담겨있는 문화재들이 나무상자에 넣어진 채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에 보관되자 여기저기에서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또한 도성의 변화와 궤를 짐작할 수 있게 해주던 많은 다리와 수문들의 훼손이 심각하다는 주장들도 쏟아졌다. 거기에 하천의 자연적인 S자 흐름을 일자로 반듯이 잘라 더 많은 유물들이 손실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에 방치된 채 인식표마저 사라져가는 청계천 문화재들

이러한 청계천 문화재 관리에 대해 구윤모 문화국 문화재과 담당 주임은 “많은 분들이 돌을 나무상자에 보관했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솔직히 나무나 철제나 차이가 없다”며 “또한 하수처리장이라 하면 지저분하고 오염된 곳이라고 편견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편견일 뿐이다. 게다가 펜스 설치, 용역업체를 통한 24시간 감시 등을 통해 잘 보존하고 있다. 펜스의 경우, 처음에는 개방적이었다가 지적들이 잇따라 안보이도록 교체까지 했다.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니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와서 보시고 나서 생각해 보실 것” 이라고 답했다.

이어 “유구로 출토된 돌들이 천여 개에 이른다. 그 정도를 보관하는 부지 확보도 쉬운 게 아니었다. 이를 위해 출토지역에 따라 구역별로 나눴으며 지금도 잘 보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황평우 위원장의 견해는 달랐다.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은 이전 청계천에서 나오는 하수처리 찌꺼기를 다 갖다 놓은 곳이다. 지금은 펜스를 쳐놓고 감시를 하고 있다지만, 당시 유구들이 쓰레기 취급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처음엔 정리 상태도 엉망이었다. 계속해서 지적하니까 그때서야 신경을 쓴 것”이라며 “나무상자에 보관하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무가 썩는 데도 계속 그 안에 담겨있는 것이 문제” 라고 지적했다.

부지 확보의 어려움에 대해선 “우리나라에 도자기가 만 개 이상 있다. 도자기들이 너무 많아 보관할 부지가 없어 하수처리장에 갖다놓는가? 청계천에서 나온 것들도 역사박물관으로 옮겨놔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동대문의 경우는 어떤가. ‘동대문 디자인&파크 플라자(이하 DDP)’ 건설을 위해 옛 운동장 시설물을 걷어내고 바닥을 발굴했더니 곳곳에 숨어있던 문화재들이 숨을 쉬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에 사용되었던 우물 등을 비롯 숭인지문-광희문으로 연결되던 서울성곽 외벽, 기와를 촘촘히 세워놓아 만든 기와보도와 같은 거대한 유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큰 규모의 홍예식 아치형 수문시설인 이간수문을 발견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나마 동대문의 경우엔 50억 원 규모의 발굴비를 들여 노력했고, 성곽 보존과 함께 유적공원을 조성하기로 최종 결정이 났다. 즉 서울성곽과 이간수문은 최소한의 응급 복구 처리만 하고 그대로 현장에 보존하기로 했으며, 훈련도감을 비롯한 주요 건물터는 성곽 바깥쪽 약 3천㎡ 부지에 이전 복원함으로써 유적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이번 신청사 부지 유물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여러 사례들을 보면서 ‘이전 복원만이 과연 최선의 방법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물론, DDP 공사 착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것이다. 그리고 발굴된 유물을 다른 곳으로 옮겨 사람들에게 전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다른 나라는 어떠한 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전시와 보존,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역사가 살아있는 도시라 하면 단연 이탈리아 로마와 그리스의 아테네를 꼽을 수 있다. 그들에게서 인공 회색건축물의 현대적 이미지가 생각되는가? 아테네 신전이나 콜로세움 같은 옛 유물들이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현재와 같이 존재하는 모습이 시대에 맞지 않게 답답하고 이상해 보이는가?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강화 유리 밑 바닥에는 유적 터가 한 눈에 그대로 보인다

이들은 찬란한 문화유산의 ‘원래 자리에 원형 그대로 보존’을 통해 자긍심도 높이고 큰 관광수익도 벌어들이고 있다. 다시 말해 새로운 것을 오래된 것 위에 중첩시켜 시간과 공간 안에 3차원적 도시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처럼 손님이 주인의 터전을 빼앗고 개조하는 것이 아닌 역사라는 주인 안에 양해를 얻고 끼어든 셈이다.

그리스의 경우 지난 2008년 파르테논 신전에서 3백 미터 아래쪽에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짓는 과정에 새로운 유물들이 출토되자 강화 유리를 덮어씌우는 둥 원형 그대로를 보존한 채 엄격한 기준에 맞춰 건물을 지어 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는 완공 후 강화유리 바닥을 통해 발굴한 고대유적들을 그대로 내려 볼 수 있게 해 많은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효과를 제공했다.

이탈리아의 알프스 북쪽의 중요한 로마 도시로 간주되는 크산텐 고고학 공원 안에 있는 크산텐 로마 박물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곳 역시 개발, 관람객 편의, 금전문제 등의 핑계를 대며 유적지를 이전해서 복원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유적지에 기둥과 유리벽 등을 세워 조화로움을 유지하고 있다. 유적의 핵심적인 부분이 빠진 상태에서의 단순한 복원만 운운하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 박물관 설계에 참여했던 유명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시와 보존을 조화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온도와 습도 감지, 일광 차단 시스템 등을 갖춰 유물들을 보존하는 동시에 전시할 수 있다”며 “유물들을 그 시대의 재료와 형태를 그대로 모방해 재건하는 복원은 훼손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부분만큼만 필요하다. 지나친 복원이나 재창조도보다 세월을 따라 낡아가는 과정을 느껴야 한다” 고 했다. 개발에 혈안이 된 우리 정부관계자들이 정말로 귀담아 듣고 부끄러워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다른 나라의 경우 처리하는 방법은 각각 다르지만, 유적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엔 땅을 파지 않고 그대로 보존한다”며 “우리나라처럼 문화재를 부수는 나라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디자인보다 역사에 투자해야 할 때

▲크산텐 로마 박물관 전경

지난 1월 28일 서울시는 “그 동안 각 자치구나 개발사업자가 제각각 지표조사를 벌이던 것을 서울시가 일괄적으로 올해 안에 정밀 지표조사를 하겟다”는 내용을 담은 ‘4대문 안 종합보존방안’을 서둘러 발표했다. 하지만 이미 대규모 개발로 인해 4대문 안의 유물들이 거의 다 훼손된 상태에서 ‘4대문 안 만큼은 개발 전 발굴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한 전시행정이라는 비난만 일었을 뿐이다.

과거가 없으면 오늘도 없다. 오늘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과거의 보전이 없다면, 한 없이 펼쳐져 있을 것 같은 미래도 어느 선상에서 종결된다. 우리는 너무 미래지향적으로만 살면서 새로운 것만 찾고 있다. 글로벌 시대에 반하는 해묵은 소리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내일, 몇 년 후의 미래는 계속 과거를 향해 진행되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후손들의 과거이다. 그들은 과연 높고 아름답게 쌓아올린 콘크리트 건물들을 보며 자긍심을 느낄 것인가, 아니면 소홀한 역사 관리에 대해 선조들을 싸잡아 욕할 것인가. 지금 이뤄지고 있는 개발이 과연 개발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서울의 과거 지표층을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적 시청건물과 접목시킨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이미 서울시의 계획에 의해 물거품이 됐다. 유물의 가치는 그 유물이 놓아져 있는 환경이 매우 중요함에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시끌벅적한 이벤트를 벌이는 것보다 기반이 확실하고 때가 묻은 오래된 역사 건축물의 보존이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도 훨씬 이득이 된다는 사실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된다. 도시기반을 허물기보단 이미 있는 것을 보존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최고이자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가슴 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박기훈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