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매치 포인트'
[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매치 포인트'
  • 황현옥 영화평론가
  • 승인 2010.03.11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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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유혹의 시작

 “삶은 운에 의해 좌우되기에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네트에 걸린 테니스공처럼 순식간에 득점, 실점으로 갈린다.” 주인공 크리스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  <매치 포인트>는 미국의 말재주꾼이자 최고의 영화감독 우디 알렌의  2005년 작품이다.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매치 포인트란 탁구, 테니스같은 종목에서 게임마다 이기는 게임 포인트와 달리 경기의 진짜 마지막 승부의 한 점수를 뜻한다. 약간의 운과 아슬아슬한 순간을 지칭하며 영화의 내용과 영화속 인생들의 은유적 표현으로 적합한 말이다.

 감독 우디 알렌은 우리나라 나이로 76세이다. 여배우 미아 패로우와 오랜 동거 기간중 입양아 한국계 순이 프레빈을 아내로 맞이한 문제적 인간이며 헐리우드에 반기를 든 오리지널 뉴요커 감독이다.

 20년전 필자는 우디 알렌 회고전에서 <애니홀>을 보고 극찬하는 사람들을 보고 이해하지 못했다. 마치 중학생이 유명한 고전소설을 읽고 알 수 없는 감탄의 해설에 의아해했던 기분이랄까? 누군가 핵심을 말해줘도 인생의 깊이를 알지 못하면 맘에 와닿지 않는게 영화이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문화적 촌평을 할만큼 미국을 가본적도 그들의 문화가 어떤지도 모르고 마냥 칭찬하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우디 알렌의 영화가 무척 좋아졌다.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와 보편적 표현양식이 그동안 전세계적으로 평준화된 점도 있고, 우디 알렌이 나이가 들수록 훨씬 열정을 표현해 내는 방식, 사랑의 관점 ,배우를 보는 안목이 멋있어졌기 때문이다.

 주인공 크리스역의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매치 포인트>이후 <튜더스1,2,3>시리즈 헨리 8세역으로 유명해졌고 곧 국내 개봉을 앞둔 <프롬파리위드러브>의 주인공이다. 비열하고 남성적인 열정을 동시에 지닌 악마적 캐릭터가 <매치 포인트>에서 무척 잘 어울렸다.

 스탕달의 명저 <적과흙>의 고전적 신분상승을 꿈꾸는 줄리앙 소렐보다 선이 굵고 1951년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열연한 영화 <젊은이의 양지>의 조지보다 더 고의적인 살인자 크리스는 비극적이기보다 매치 포인트 상황에서 득점에 성공한 승자가 된다.  이를 두고 분노하는 순수한 팬들이 많았지만 역시 세상은 그럴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상대역 노라는 스칼렛 요한슨이 맡았는데 너무 아름답고 요염하게 나와서 그녀가 크리스에게 유혹당하는게 안타까울 지경이다. 그러나 스칼렛 요한슨은 2006년 우디 알렌과 다시 손잡고 나온 <스쿠프> --무척 유쾌하고 귀여운 작품. 우디 알렌의 연기가 돋보인다-- 에서 살인자를 복수하는 산드라역으로 진가를 올린다.

 전반적인 <매치 포인트>의 평가는 내용의 진부함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플롯이다. 신분 상승을 위한 결혼과 물질적 계급이 빚어낸 영국의 상류 문화를 보는 기분은 씁쓸하다. 사랑은 역시 세상의 풍파를 이겨내는 인간관계의 진행형일뿐 누구에게 인생을 올인하는 건 지혜롭지 못하다. 진심의 문제가 아니라 워낙 인간은 그런 존재인 것이다.

2005년, 미국.영국, 우디 알렌 감독, 범죄.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