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다면? 맷집 좀 키웠다 생각하죠 뭐”
“실패한다면? 맷집 좀 키웠다 생각하죠 뭐”
  • 정지선 기자
  • 승인 2010.04.07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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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열풍의 주인공,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를 파헤치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 실패하더라도 좌절은커녕 맷집이 강해졌다며 웃어넘길 수 있는 배짱 두둑한 사람, 그가 바로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다. 신시컴퍼니를 혹시 모르는 이가 있다면? 뮤지컬 <맘마미아>, <시카고>, <갬블러> 등을 무대에 올린 기획사이자 제작사라면 감이 오는가. 박명성 대표는 앞서 언급한 뮤지컬의 책임프로듀서로서, 한국 최초 라이센스 뮤지컬 계약을 따내 지금의 뮤지컬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지난 10년간 뮤지컬에 모든 열정을 쏟아낸 박 대표. 앞으로 10년은 연극에 온 열정을 쏟겠다고 선포(?)했다.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릴 때마다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가도 환호하는 관객들을 보면서 다시 힘을 얻는다는 그는 스스로 미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아니하면 미치지 못한다고 했다. 미치지 않고서는 도달할 수 없었던 지금의 자리, 신시컴퍼니의 박명성 대표를 파헤친다.

강남 구룡사 지하에 위치한 신시컴퍼니 사무실은 기자가 기대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우리나라 대형 뮤지컬의 산실이라고 보기에는 의외(?)로 소박한 사무실의 모습에 한 번, 박 대표의 첫인상에서 풍겨져 나오는 알 수 없는 강한 아우라에 두 번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인터뷰는 그렇게 시작됐다.

불리한 조건 도리어 ‘자극제’로

- 연극 <엄마를 부탁해>가 성공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요즘도 바쁘신가요.

늘 그렇죠.(웃음) 연극 <대학살의 신>이 4월 6일 오픈이고요, 뮤지컬 <아이다> 오디션이 진행 중입니다.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

- 지난 3월 29일 서울연극협회 주최로 100분 토론이 열렸는데요. 아르코 극장과 대학로 예술극장 통합부터 국립극단 발전방향에 이르기까지, 연극계 안팎으로 다양한 문제들이 논의됐습니다. 2007년 서울연극협회 역대 회장이자 연극계 종사자로서, 현 연극계를 어떻게 보십니까.

서울연극협회의 가장 큰 사업으로 서울연극제를 들 수 있는데요.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교감이 잘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로 연극 발전 방향에 대해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공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죠. 이번 토론회 개최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연극의 활성화를 위한 정책은 사실 현장 사람들이 만들어내야 하거든요. 현장과 협회 사람들이 자주 만나서 연극 발전을 위한 문화정책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 박 대표님하면 라이센스 뮤지컬 계약의 효시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쪽에서 상당히 분리한 계약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무모한 도전을 감행하셨네요.

저는 어떤 일이든 자신감을 갖고 진행하는 편입니다. 모험, 도전, 위험한 발상을 전제로 한 실험을 한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에요.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는 오히려 우리 스텝들의 맷집을 강하게 만들어주거든요. 그 당시 불리한 조건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제게 자극제였죠. 흥행을 확신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분야에서 박명성의 위치를 찾고자했던 시기라서 모험은 불가피했거든요. 처음으로 책임 프로듀서를 맡은지라 부담도 됐고요. 아마 그 때 실패했다면 프로듀서로 자리잡는데, 더 긴 시간이 걸렸겠죠.(웃음)

‘댄싱쉐도우’는 내 운명(?)

- 피해갈 수 없는 질문이 될 것 같은데요. 뮤지컬 <댄싱쉐도우>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비싼 수업료를 치르셨어요. 박 대표님에게 있어서 <댄싱쉐도우>는 어떤 작품인가요.

애증 관계랄까요.(웃음) 흥행하리라 생각했거든요. 우리나라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소재가 전쟁의 상처, 그로 인한 인간성의 폐허, 이념의 갈등 그런 거잖아요. 해외 예술가들과 작업하면서 해외 시장의 물꼬를 틀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20억이 넘는 손실을 봤죠. 그 때는 정말 회사 문 닫는 줄 알았어요.

- 그래서였을까요. 무대세트를 몽땅 태우셨죠?

무대를 불에 태우는데도 한 600여만 원의 비용이 들었어요. 그 때 만든 작품에 대한 미련을 남김없이 버리자는 의미에서 무대를 태웠죠. 새롭게 다시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뮤지컬 <맘마미아>
뮤지컬 <시카고>

 

 

 

 

 

- 신시컴퍼니는 대형 뮤지컬 위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큰 작품을 고집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사실 대형 뮤지컬을 제작할 수 있는 회사가 몇 개 되지 않거든요. 적어도 신시 그리고 박명성 만큼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지 못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랄까. 요즘은 소극장에서도 뮤지컬을 많이 제작하잖아요. 크고 작은 뮤지컬들이 적당한 비율로 시장을 형성해야죠. 결정적으로는 뮤지컬의 대중화, 활성화를 위해서 큰 작품이 필요하거든요. 전 그런 작품을 만드는데서 스스로 만족감, 쾌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공연의 흐름, 연극으로 바꾸고파

- 박 대표님에게 있어 뮤지컬은 어떤 존재인가요.

지난 10년간 뮤지컬에 제 모든 열정을 쏟았어요. 그리고 모든 것을 투자했고, 희생도 했죠. 한 공연을 마칠 때마다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회의감마저도 들지만요. 공연을 보면서 박수치며 즐거워하고 감동받는 관객들을 보면 금방 잊어버려요. 작품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가요. 인간의 정서를 풍요롭게 만들잖아요. 자부심을 느끼면서 일해요.

- 이제 우리나라의 뮤지컬 시장도 많이 커졌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작년부터 신시컴퍼니에서는 연극을 꾸준히 제작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뮤지컬에 온 열정을 쏟았다면, 앞으로 10년은 연극에 그 열정과 노하우를 쏟으려 합니다. 제가 뮤지컬에서 연극으로 선회한 이유는요. 뮤지컬 시장의 낀 거품 때문입니다. 너도나도 뮤지컬 제작에 나서다보니 뮤지컬을 장사의 수단으로 생각해 접근하는 제작자들이 많아졌고, 그 과정에서 거품이 끼기 시작했죠. 저라도 그 거품을 빼는데 일조하려고요. 기초순수예술인 연극은 공연시장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요. 이제 공연의 흐름을 뮤지컬에서 연극으로 바꿔보고 싶어요.”

- 뮤지컬 시장의 거품에 대해 언급하셨습니다. 그런데 라이센스 뮤지컬을 계약하면서 로열티를 가장 많이 지불한 분이 박 대표님 아닌가요?

지금은 10년 전보다 시장 규모가 10배 이상 커졌어요. 그만큼 제작비에도 거품이 생겼죠. 지금은 우리 스스로 경쟁해 로열티를 올리는 꼴이 됐어요. 시장 환경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수익창출도 어려울 정도로 거품이 심합니다. 이제는 창작 뮤지컬을 제작해 명품으로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뮤지컬은 ‘앙상블’이다

- 요즘 뮤지컬 시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연예인 캐스팅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각각 장단점이 있죠. 중요한건 연예인 스스로가 그 작품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투자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여부입니다. 그로 인해 작품이 빛나면 좋겠지만 스타 입장에서 뮤지컬을 경험삼아 해본다는 생각으로 참여하면 회사나 배우 모두 손해죠. 스타의 기량이 뛰어나 작품의 수준까지 올린다면 다른 뮤지컬 배우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요. 뮤지컬만 고집하는 배우들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위화감이 조성돼 팀의 앙상블이 깨지면 더욱 큰일이죠. 뮤지컬에서는 무엇보다 앙상블이 중요하거든요. 작품 한 편 올리고 회사 문 닫을 게 아니라면 관객들로부터 신뢰를 쌓아야죠.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소위 ‘사단’이라고 하죠. 박명성 사단에는 어떤 배우들이 포진해 있는지 궁금합니다.

성기훈, 이건명, 배혜선 등 좋은 배우들이 많죠. 저희 신시컴퍼니는 유일하게 단원제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요. 지금 뮤지컬계의 중추를 담당하는 배우들이 바로 그들이죠.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한다는 것은 우리 신시를 위해서만은 아니고요. 뮤지컬 시장을 넓히는 길이잖아요. 인재양성에는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한 때는 배우로, 지금은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데, 서로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실제로는 어떤가요.

조명, 음향, 무대감독, 조연출 등 10년 이상 현장에 있으면서 몸으로 체득한 것들이 뮤지컬을 만드는데 가장 큰 자산으로 활용됐죠. 현장에서의 경험이 가장 값지거든요. 서로의 교감이 매우 중요한 일이기에, 제가 작업을 잘 아니까 이해하고, 과감한 주문도 하고 그래요.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의 정서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야 말로 프로듀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현장의 정서를 읽는 안목, 그것도 현장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거잖아요.

관객들의 요구를 파악해야

- 신시컴퍼니 작품은 거의 흥행에 성공해왔는데요. 작품 선택의 남다른 기준이 있나요?

그런 건 없어요. 관객의 트렌드랄까. 관객들이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지 그 요구를 파악해야죠. 관객의 정서와 프로듀서의 정서 코드가 밀착됐을 때, 작품이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있거든요.

연극 <엄마를 부탁해>
연극 <대학살의 신>

 

 

 

 

 

-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은가요.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핵가족, 결손가족 등 요즘 가족이 해체되고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삶의 근간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중요성을 몰라요. 엄마가 왜 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아빠는 왜 존경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가을소나타>, <엄마를 부탁해>, <대학살의 신> 모두 가족에 대한 이야기죠. <엄마를 부탁해>는 뮤지컬로 제작 중이에요. 연극은 ‘무대예술’이라는 포장을 통해 한 시대의 문제를 가감 없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숙제를 안고 갈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명작(名作)이죠.”

- 그동안 올린 작품들 모두 소중하겠지만 특별히 아끼는 작품이 있나요.

모두 소중하고 특별하죠. 꼭 한 작품을 택하라면, <렌트>라는 작품이요. 오늘날 신시가 뮤지컬 제작사로 성공하는데, 밑바탕이 된 작품이거든요. 그 당시 공연 관계자들이 모두 실패한다고 했던 작품이었는데, 결국은 성공했죠.

- 지금의 성공을 발판삼아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서 계실까요?

“그 때가서 시장의 흐름을 또 봐야겠죠. 창작 뮤지컬과 연극에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서 동남아권에 수출하고 있지 않을까요.(웃음)”

- 서울문화투데이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우리가 말로만 ‘문화의 시대’라고 하는데요. 문화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풍부한 문화 자산을 남겨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문화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이은영 편집국장/ 정리 정지선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