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균의 배우열전②
김은균의 배우열전②
  • 김은균 연극평론가
  • 승인 2010.04.08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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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날이 밝으면, 양동군

지난 3월 22일부터 강남의 복합문화공간 윤당아트홀(관장 고학찬)에서 모노드라마 <내일 날이 밝으면>이 공연되고 있다. 모노드라마 <내일 날이 밝으면>은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까지 훌륭한 연기자가 되기를 꿈꾸는 82세의 노배우 양동군 선생이 무대에 오른다.

그는 이번 공연에서 러시아 혁명 반란군의 백전노장 이반 가가노비치를 연기한다.

이반 가가노비치는 러시아 혁명 반란군의 백전노장으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이상을 위해 수많은 전투를 치르고 온갖 시련을 견뎌내며 투쟁하였지만 정치적 모함으로 감옥에 갇힌 상태다. 내일 새벽 날이 밝으면 그는 처형된다. 깊은 밤, 그의 생의 마지막 밤, 고요하고 차가운 독방에서 그는 자신을 구원해줄 유일한 존재, 따슈를 기다리고 있다.

세월이 흘러 긴 세월이 지나고 82세가 되어 양동군 선생은 백발을 휘날리며 드디어 그리운 무대로 돌아왔다. 그러기엔 너무 오랜 세월이 흘렀다. 선생은 1929년 백두산 동쪽 두만강 인근 북간도 용정에서 태어났다.

목사가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뜻을 따라 1946년 한신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설파하는 교리에 100% 동의한다는 서약에 차마 “예”라고 할 수 없어서 목사가 되지는 못했다.

그리고 한국전쟁 중에 이탈리아에서 세워준 군병원에 통역 장교로 근무한 인연으로 이탈리아 정부 초청 한국인 1호 장학생이 됐다. 신학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던 그는  설교보다 영화를 통해 전도를 하겠다며 로마의 국립영화실험센터와 국립연극학교에서 연출과 연기를 공부했다.

한국연극계의 해외유학파 연기자로서 그는 이태리에서 돌아와 1961년 한양대학교연극영화과 교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배우 최불암, 태현실이 그의 첫 제자였고 장용, 노주현, 고학찬, 임현식 등이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다. 하지만 군사정권에 반기를 들다가 얼마 안 가 학교에서 쫓겨났고 정권에 밉보여 대학 강단에 섰다 내려왔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배우 양동군은 사설학원 영어강사가 돼 있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모든 걸 접었던 것이다.

“제가 62년 드라마센터 개관 공연 ‘햄릿’에 출연했었어요. 유치진 선생이 연출했고 김동원, 최상현 선생이 햄릿을 했던 작품에서 저는 레어티스를 맡아 연기했는데 당시 미 8군 연극학교 교수가 제 연기를 보고 감명 받아 영자신문에 크게 기사를 실어줬죠. 마지막으로 연기한 건 73년이에요. 그이후론 머슴 생활만 했죠.”

생계에만 집중했던 시절을 머슴 생활이라고 불렀다. 연기에 대한 갈증이 극에 달한 적도 많았지만 억지로 삭이고 삭이다 보니 세월이 훌쩍 흘렀다. 일흔 살에 다시 외국어대학에서 ‘영상예술의 세계’ 과목을 강의하게 됐지만, 배우로서 연기를 하기는 너무 늦은 듯했다.

그런데 지난해 갑자기 한양대 제자였던 백일성 연출가가 양동군 선생을 찾아왔다. 스승에게 헌정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했다. 또 다른 제자인 고학찬 윤당아트홀 관장은 선뜻 무대를 내어주었다. 개인적으로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공연이 결정 난 뒤 두 달간 혼신을 다해 연습에 몰두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분장한 모습이 만족스러웠는지 “오늘 최고로 젊어 보인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90분간 혼신의 연기에 기력이 쇠했던 것일까. 박수가 한참 이어진 후에야 커튼콜에 화답한 그는, 객석으로 내려와서 감회에 젖은 듯 말했다. 

“‘무대의 아름다움에 얻어맞는 나’ 양동군이 30여 년 동안 무대를 멀리하고 살다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올해 제가 82세인데 죽는 날까지 단 5년, 10년이라도 계속 연기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잘못해서 미안합니다. 다음에는 더 잘하겠습니다.”

   

김은균 연극평론가 ahhaa37@hanmail.net

공연현장을 가장 활발히 누비고 있는 평론가이며 <연기론>, <배우론>, <연출가론>, <지역연극사>, <극단사>를 아우르는 동시대의 연극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수석졸업하고 로타리 장학생으로 프랑스의 Tourine Institute를 수료했으며 서울종합예술학교와 한서대 대학원에서 연극이론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