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균의 배우열전③
김은균의 배우열전③
  • 김은균 연극평론가
  • 승인 2010.04.2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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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소스 어린 희극연기의 달인 이도경

▲이도경(맨앞)
한때 덕수궁 돌담길에 자리 잡은 마당세실 극장에서 꾸준히 좋은 연극들이 공연되었던 명작의 산실이자 추억의 공간이었다.

작고하신 김상열 선생의 연출 작품에는 이도경, 최정우 등의 배우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였고 한용운의 일대기를 다룬 <님의 침묵>, 남아공의 인권문제를 한국정치사에 빗댄 <우자 알버트>, <그대의 말일 뿐> 등은 지금도 회자되는 좋은 공연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역량들이 결집되어 1992년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의 <불 좀 꺼 주세요>는 창작극으로서는 드물게 장기공연의 서막을 알렸고 조선 정도 600년 타임캡슐에 들어갈 정도로 작품성과 대중성을 확보한 대표적인 연극의 반열에 오른 것도 이도경과 최정우의 역할이 컸었다. 최정우의 연기가 진지한 정통파에 가깝다면 이도경은 커브에 능한 변칙 스타일이다.

짙은 페이소스를 자아내는 그의 모습은 어릿광대 ‘피에로’를 연상시키지만 그는 관객의 타이밍을 정확히 읽어내고 그 호흡을 빼앗을 수 있는 연기자이다. <불 좀 꺼주세요>와 <용띠 위에 개띠>에 이어 올해 삼월까지 공연된 <늙은 자전거> 역시 그가 아니라면 좀처럼 하기 힘든 역할이었고 그는 롱런의 공연으로 보답하곤 하였다.

창작극 사상 3년 6개월간의 최장기 공연을 기록한 <불 좀 꺼주세요>는 1,033회를 기록했고 <용띠 위에 개띠> 역시 1997년 5월 26일 초연 이후 대략 3.000회의 공연 횟수를 기록하고 있다. 자신이 기록한 최다공연기록을 스스로 경신하는 형국이다.

그는 장기공연 비결에 대해 “대부분의 연극은 연출자나 배우가 자기도 모르면서 하는 경우가 많을 만큼 어렵지만 이 작품은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감동과 웃음을 주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연기를 하면 할수록 연기가 구체적이고 깊어지기 때문에 작품의 디테일이 살아 움직이는 데 묘미가 있다”고 했다.

장기공연을 하면서 그가 공연을 펑크 건 단 딱 네 차례. 과로로 쓰러졌을 때, 정전으로 조명을 쓰지 못했을 때, 시위로 인한 교통 통제로 지각했을 때, 그리고 2002년 월드컵 4강전 때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 탓에 공연을 취소했을 때뿐이다. 공연을 하느라 그는 부모님 임종도 못 지켰다. 여동생 장례식 때도 무대에서 관객을 웃겼다.

그가 연극에 입문한 것은 경주중학교 시절 신라문화제 가장행렬에서 포졸역을 맡았을 때였다. 미술교사가 담배은박지로는 갑옷 비늘을, 노끈을 풀어서 수염을 만드는 걸 보고는 연극의 재미에 빠졌다고 했다.

한국영화에는 미남미녀만 나오지만 외국영화에는 “내같이 못난 사람도 배우를 맡게 해서” “내가 어른이 되면 우리나라에도 저런 시절이 올 것”이라고 생각해서 서울예술대학 영화과를 갔다 드라마센터에서 신 구씨가 나오는 연극을 보고는 연극과로 전과를 하게 되었다. 79년 학교 졸업 후 지금까지 출연한 작품은 40여 편 남짓인데 이는 장기공연이 많았기 때문이다. 1992년 이후 지금까지는 <불 좀 꺼주세요> <용띠위의 개띠> <늙은 자전거> 딱 세편이 추가된 셈이다.

그는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연극 '쥐덫'은 30년 이상 장기 공연되고 있는 영국의 대표적 문화상품"이라며 자신의 극장인 ‘이랑 씨어터’에서도 “꾸준히 공연되는 한국의 문화상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전했다.

갑자기 궁금해서 ‘이랑 씨어터’의 뜻을 묻자 “만희랑 도경이랑”이라고 했다. ‘만희’는 <불 좀 꺼주세요> <용띠위의 개띠> <늙은 자전거>를 쓴 이만희 씨로 그의 장기공연을 도운 극작가이다.

 

 
김은균 연극평론가 ahhaa37@hanmail.net

공연현장을 가장 활발히 누비고 있는 평론가이며 <연기론>, <배우론>, <연출가론>, <지역연극사>, <극단사>를 아우르는 동시대의 연극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수석졸업하고 로타리 장학생으로 프랑스의 Tourine Institute를 수료했으며 서울종합예술학교와 한서대 대학원서 연극이론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