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딱지 21회
[연재] 딱지 21회
  • 김준일 작가
  • 승인 2010.04.22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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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 마을 두 동네

▲삽화 문길시인
8. 한 마을 두 동네

온 마을이 술렁거렸다. 집집마다 군수 이름으로 보낸 공문이 도착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신도시개발은 불가피하다, 최대한 보상해 준다, 주민들에게 우선적으로 분양권을 준다, 협조를 바란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마을회관으로 모여 들었다. 투쟁위원들도 읍내 하수도 공사장에 나가 있는 순철을 제외하고는 모두 달려 나왔다. 예정에 없던 확대 투쟁위원회가 열린 셈이다. 관심의 초점은 보상가였다.

싯가대로 보상을 한다는데 그 싯가가 얼만지 말해 줘야 할 거 아니야?

한 남자가 이장한테 삿대질까지 해 가면서 대들었다. 마치 이장이 싯가를 결정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불안하던 판에 정식으로 공문이 도착하자 다들 흥분한 것이다. 그처럼 아무런 소득도 없는 야단법석이 한바탕 지나간 다음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자리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회장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얼굴에는 냉기가 흘렀다.

우리가 투쟁위원회를 만든 건 우리 주민들의 생존권과 함께 우리 가족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섭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을 대신하여 앞장서서 싸울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분들과 똑같이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탭니다. 그런데 여러분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우리가 건설부 공무원입니까 토지개발공사 직원입니까? 왜들 이러는 거예요?

다시는 이러지들 마세요. 궁금한 게 있으면 서로 상의하고, 대표를 보내서 알아보고, 그러자고 위원회를 만든 거 아녜요? 이렇게 무슨 죄라도 진 것처럼 몰아붙이면 누가 이 일을 하겠어요? 절대로 이러면 안 됩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똘똘 뭉쳐야 해요. 다시 한번 이런 일이 생기면 우리 위원들 모두 그만둘 테니까 그렇게들 아세요.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회장이 말을 이었다.

지금 바로 나하고 이장님이 군청으로 가 볼 겁니다. 거기서 안 되면 건설부로 가 보고 토지개발공사도 가 보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제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가 가져올 소식을 기다려요.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 걸릴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이 닥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인내심을 갖지 않으면 이 싸움에서 우리가 지고 맙니다. 다들 아셨어요?

비록 기어 들어가는 소리지만 예 하는 대답이 여기 저기서 들렸다.
회장은 사람들을 꼭 국민학교 학생 다루듯이 하고 있었다. 다만 회장 자신도 당하는 사람들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우루루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이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깐만! 여러분 잠깐만요!

이장은 모처럼 분위기가 잡힌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여러분, 한 가지 깜박 잊어버린 게 있어요.

이장이 깜박 잊어버렸다는 것은 회비 문제였다. 투쟁위원들이 여기 저기 쫓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자면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그 비용을 가구 당 얼마씩 걷어야겠다는 것이다. 회비를 걷자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한 집에 얼마씩을 걷을 것인가 하는 데에는 의견들이 엇갈렸다. 학동에는 주택이 40가구, 마을이 54가구, 모두 해서 94가구가 살고 있었다. 한 집에 만 원씩을 걷으면 94만 원, 5천 원씩을 걷으면 47만 원이 된다.

사람들은 94만 원은 조금 많고 47만 원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7천 원 정도가 적당하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장은 얼른 곱셈을 해 보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장이 또 화가 난 얼굴로 학생들을 나무라고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