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충무로야사] -굿거리장단과 찬송가의 불협화음으로 변주된 동리문학의 판타지(2)-
[연재 충무로야사] -굿거리장단과 찬송가의 불협화음으로 변주된 동리문학의 판타지(2)-
  • 이진모 시나리오 작가(영상교육원 교수)
  • 승인 2010.04.2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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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투데이=이진모 시나리오 작가(영상교육원 교수) ]그 후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소설가에 대한 열망을 접고 영화계에 들어왔을 때 나는 내심 <무녀도>는 물론 동리선생님의 주옥같은 모든 작품을 영화화 하겠다는 의욕으로 충일해 있었다. 그래서 선배동료 후배들에게 <무녀도>와 <역마>, <황토기>등의 각색 구성안을 들고 영화화를 권면했고, 영화사마다 찾아다녔다.

▲79년작 '황토기'

만약 상기한 모든 작품 영화화가 현실화될 때엔 적어도 <무녀도>와 <황토기>만큼은 우리고향의 강마을과 산지기마을에서 촬영하리란 심산이었는데 그것은 훗날 내가 원했던 대로 이루어졌다.

영화 <무녀도>는 당시 제작자본이 가장 탄탄했던 태창흥업주식회사에서 이미 황순원 선생의 <나무들 비탈에 서다>, <독짓는 늙은이> 등을 연출해 평단과 매스컴으로부터 절대적인 찬사와 평가를 받았던 최하원 감독이 연출했다. 최하원 감독은 당시 드물게 보는 명문대 출신인데다가 문학 연극 등에서도 뛰어난 커리어와 재능을 보인 연출자였다. 정통성을 바탕으로 한 치밀하고 탄탄한 연출력은 <무녀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각색은 작고한 선배작가이자 평론가였던 이영일씨가 최하원감독과 공동 집필을 했고, 캐스팅은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윤정희가 ‘모화’역을, 신인 유망주 신영일이 ‘욱이’역을, 현재도 영화 TV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창숙이 ‘낭이’역을 해냈다. 또한 몇 해 전에 타계한 허장강씨가 예의 개성 있는 연기로 작품을 빛냈다. 당시 ‘모화’역을 서로 맡기 위해 대스타였던 김지미와 윤정희가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빚어 영화계의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하원감독은 특유의 연출력으로 수작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아시아 영화제 작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고 흥행 면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문단과 매스컴은 이미 각색자와 연출자가 예상했던 대로 이견을 내놓아 다소 논쟁의 소지를 남겼다. 논쟁의 초점은 주인공 모화의 캐릭터 및 심리변화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즉 샤머니즘의 상징적 캐릭터가 에로티시즘적 변형으로 전환했다는 지적이었다. 따라서 자연히 전체적인 네러티브의 전개방향과 주제의식이 원작의 그것과 상당한 거리감을 주었다는 여론이었다.

당시만 해도 문학작품의 영상화에 대한 원작자와 문단의 시각은 엄격하리만큼 예민했고 까다로웠다. 문학작품 영상화나 각색과정에서 묘사나 표현 및 컬러와 주제의식이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문학에 대한 몰이해니 훼손이니 해서 각색자와 연출자는 비난과 질타를 감수해야만 했다. 간혹 문학 작품에 대한 몰이해와 주제 분석의 오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치명적인 이유는 영화가 막대한 제작자본이 투자되는 대중매체와 흥행매체라는 측면에서 종종 이러한 논쟁이 빈발하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 <무녀도>의 경우는 무턱 대놓고 그런 풍토에 편승한 작품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소설 속 인물의 한 단면에 포커스를 맞추어 지나치게 심오하고 경직될 수 있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그런 부분을 성에 대한 욕구로 대체 했을 뿐이었다. 앞에서도 기술했듯이 소설 <무녀도>는 이미 광범위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동리문학의 대표작이기에 오히려 이러한 대중매체의 표현과 접근시도가 충분히 이해되고 양해되리라고 믿었던 게 필자의 견해였다.

후일 동리선생의 또 다른 대표작 <황토기> 영화화 관계로 대학 스승이셨던 동리선생님을 흥인동 자택으로 찾아뵈었을 때 선생님께서도 이점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제와서 이 지면을 통해 새삼스럽게 영화 <무녀도>에 대한 이러저러한 뒷얘기는 큰 의미가 없다는 관점에서 이쯤 접어두었으면 한다.

사족으로 지금쯤 누구에겐가 소설 <무녀도>를 다시 각색 영화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젠 어느 누가 이 작품을 각색, 연출한대도 소설의 근원적인 중심테마에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한 보다 현대화된 기자재와 폭 넓은 인력, 향상된 기술로 더욱 승화된 영상을 구현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그리고 새로운 캐스팅에서 상상해어느 ‘낭이’와 ‘욱이’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의 이미지… 그저 상상해어느 것만으로도 뿌듯한 느낌이다.

(정리/조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