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딱지 22회
[연재] 딱지 22회
  • 김준일 작가
  • 승인 2010.05.12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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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 마을 두 동네

 

▲삽화 문길 시인
여러분들 지금 애들 장난하고 있는 거예요 뭐예요? 만 원이면 만 원이고 오천 원이면 오천 원이지 칠천 원은 또 뭐란 말예요? 지금 노가다 하루 일당이 얼맙니까? 여자가 이만 원, 남자가 삼만 원이죠? 그럼 우리 위원들 열 명 일당만 따져도 얼마예요? 여자가 여섯이니까 십이만 원에다, 남자가 넷이니까 또 십이만 원, 하루 이십사만 원이에요.

 여러분들 지금 우리한테 일당 주고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우리 위원들이 가족들의 생계고 뭐고 따 때려 치우고 오직 여러분들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만 하기를 바라고 있지요? 그러면서 한 달에 만 원도 아까워 가지고 7천 원밖에 못 내겠다는 거예요?

집집마다 적게는 몇천만 원 많게는 몇 억이 걸려 있는 문젠데 돈 만 원이 그렇게 아까워요? 나는 죽었다 깨나도 그 돈 가지고는 못 움직이겠어요. 관청을 드나들자면 돈이 든다는 거 뻔히 알면서 왜들 이래요? 나는 내 돈 써 가면서 이 일을 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으니까 희생정신이 넘쳐 흐르고 인심좋은 사람들로 새로 뽑아 봐요.

학생들은 여전히 순진했다. 그들은 깜짝 놀래 가지고 회비를 당장 만 원으로 올렸다. 그래도 회장이 사퇴의사를 굽히지 않자 회비는 만오천 원으로 올라갔다. 회장은 계속 고집을 부렸다. 결국 회비는 2만 원으로 결정되었다. 애당초 만 원으로 했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것을 두배나 바가지를 쓴 셈이다.

사람들은 그러면서도 회장의 눈치를 살폈다. 회장을 갈아 치우고 자신이 나설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관청을 상대하는 일이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 것인지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또 투쟁위원장같은 걸 맡아서 관청사람들 눈밖에 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회장은 그 여세를 몰아 아홉 명의 위원들을 거느리고 군청으로 떠났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제대로 깨닫기도 전이었다.

회장님 정말 잘 하셨어요.

지금까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만큼 조용하던 연화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밀어 붙이면 매사가 잘 풀릴 거예요. 회장님은 물론 여기 계신 분 모두 대운이 들었으니 믿음을 가지고 한번 해 봅시다.

회장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칭찬을 들은 어린애처럼 얼굴이 활짝 피었다. 족집게무당으로서 연화의 말에는 그만한 권위가 실려 있는 것이다.

운명은 개척하기 나름이지만 믿음을 가지고 해 보자는 말에는 나도 찬성이에요.

회장은 자칫 어색해질 수도 있는 국면을 그렇게 빠져 나갔다. 그러자 상구가 또 너스레를 떨었다.

삼신할머니 빽에다 예수님 빽까지 겹쳤으니 이제 무서울 게 없네요.

몇 사람이 기분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상만이 금방 한 대 올려붙이기라도 할 것처럼 험악하게 상구를 노려보자 조용해졌다. 군수는 부재중이었다. 도청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어쩐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군수 방을 좀 들여다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 대신 일행은 부군수실에 초대되어 녹차 한 잔씩을 대접받았다. 부군수는 그런 일에는 이력이 난 듯 싹싹한 태도와 매끄러운 말솜씨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그에 의하면 신도시개발은 군청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다.

아시다시피 군청이 무슨 끗발이 있습니까? 우리는 위에서 내려온 공문을 시키는 대로 전달만 한 것뿐입니다. 궁금하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여기서 시간낭비들 하지 마시고 토개공으로 가 보세요. 토개공이 맡아서 하는 사업이니까 거기다 물어 보는 게 제일 빠를 것 아닙니까?

토지개발공사 일산 현장사무소는 한참 막사공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갓 지어 놓은 조립식 사무실에서는 페인트 냄새가 풍기고 바로 그 앞에서는 불도저가 흙더미를 밀어내고 있었다. 역시 그곳에서도 소장은 건설부에 들어가 있고 일행을 상대한 것은 부소장이었다. 그러나 소득은 있었다. 부소장으로부터 설명서 한 장씩을 받게 된 것이다. 학동 말고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보니 아예 설명서를 나눠 주기로 한 것 같았다. 설명서는 간결하면서도 사람들이 궁금래 하는 모든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