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짚어보는 한류와 아시아의 미래(1)
다시 짚어보는 한류와 아시아의 미래(1)
  • 정정숙/ 문화관광연구원 문화예술정책실 연구위원
  • 승인 2010.05.13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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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는 본질적으로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보여준 사례였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교집합이 이끌어가는 민간의 문화교류가 결국 타문화 이해와 즐기기라고 하는 소통의 확산을 가져온 것이다.
 
대중문화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에 의존한다. 따라서 대중문화 상품은 대중의 기호를 파악하고 그 욕망을 만족시켜주는 한 존재 가치가 있다. 지금과 같은 경쟁적 자본주의 시스템은 개인들로 하여금 더욱 더 대중문화에 탐닉하게 한다. 현실적 삶의 고단함을 잊는 데 대중문화만큼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겨울연가의 주연배우인 배용준에 대해서 욘사마로 호칭하고, 그의 어록을 남기는 등 거의 종교적 차원으로 떠받들어지는 것도 일종의 예방복지 혹은 치유효과의 단면이라고 하겠다. 즉 대중문화상품을 통해 소비자는 미적 감각을 만족시키고, 심리적 위안을 느끼며, 즐거움을 얻는다.

한편 문학이나 연극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서는 감동과 오락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메시지까지도 제공받는다. 그래서 정서적 풍요와 함께 지적 만족과 실천적 윤리지침까지도 얻는 효과를 소비자들은 누린다. 게다가 각 국가의 전통문화는 작품 감상 자체의 즐거움과 역사인식과 정체성에 대한 통찰력도 제공한다. 

문화상품의 순수한 문화적 효과란 정서적 풍요와 심미안의 향상이겠으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가면 정체성, 역사관, 지식과 정보의 제공이라는 부문으로 그 효과가 끝없이 확장되어 나간다는 점이 문화상품의 특성이다.

아시아 각국의 대중들이 문화상품으로부터 감동과 재미를 느끼면 그 재미는 작품 안에 있는 스타·음악·장면 등 다양한 부문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같은 작품에 공감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동호회에 참여하여 해당 작품 이외의 관련 상품으로 관심을 확산할 기회도 갖게 된다.

더 나아가서 이들은 미디어와 같은 한 가지의 문화상품 감상 이외에도 해외관광, 그룹별 봉사, 독서회 활동, 어학학습 등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서는 활동영역에도 관심을 넓혀 가고, 이러한 과정에서 얻어지는 새로운 정보는 타문화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따라서 한류의 경제성 못지않게 한류의 문화적 효과를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다양한 행정적 지원정책들이 고안되어야 할 것이다. 수요자를 배려하는 문화교류 정책을 입안하고, 외국인들이 한국의 언어와 기초예술과 전통예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국의 문화예술을 공익적 차원에서 무료감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거나 한국어 교습을 실비로 제공하는 등의 구체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기능적인 일반 공산품의 수출과 달리 문화상품은 파급력이 정신적인 측면에까지 이르고, 따라서 세대를 계승하여 그 효과가 대물림될 수도 있다. 따라서 문화상품의 영향력은 경제적인 가치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수치나 통계로 환산할 수 없는 특징도 동시에 지닌다.

소비자들은 정서적 위로와 재미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한국인과 한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정신적인 활동 쪽으로 적극 선회될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선회 가능성이 아시아의 연대를 창출할 가능성과 맥이 닿는 부분이다.  

우리를 포함하여 동북아인, 동아시아인, 아시아인은 근대 이후 항상 자신을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아시아 지역 시민으로서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타자인 서양을 통해 발견했다. 아시아인에게 서양은 두려움의 대상이자, 경외의 대상이었다. 서양이 경외의 대상이었기에, 아시아인은 각자 서양만을 바라보았을 뿐 아시아인으로서의 자신과 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한류’에 의해 아시아가 한국을 재발견하고, ‘한류’의 성공적 진출로 인해 우리가 아시아와의 새로운 관계를 다시 고민하기 이전에 ‘아시아’는 세계지도상의 추상적 지역 개념에 불과했다. 심지어 냉전의 여파와 식민-피식민 관계라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아시아는 문화적 연대보다는 정치적 외교적 갈등관계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

  그 결과 한국은 아시아라는 지역에 있으면서도, 아시아가 아니었고, 아시아 내 국가들에게도 한국은 낯선 곳이었다. ‘한류’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문화적 기초’를 갖춘 진정한 의미의 지역으로 아시아가 변모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한류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동북아, 동아시아, 아시아 사이의 문화적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의 대중문화산업이 ‘시장’으로서의 ‘아시아’만을 발견했을 뿐, ‘지역’으로서의 ‘아시아’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에 기인한다.

‘한류’를 중심으로 한 한국과 아시아의 문화교류는 소수 한류 스타에 대한 의존도가 과도하며, 교류되고 있는 문화 내용 또한 대중문화 영역에 편중되어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