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균의 배우열전④
김은균의 배우열전④
  • 김은균 연극평론가
  • 승인 2010.05.13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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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고 강렬하게 - 이 승 호

▲에쿠우스  공연 중 이승호(위)
연극배우들의 일상은 일반인의 리듬보다는 한 템포가 느리다. 그러나 배우 이승호는 생활인의 일상처럼 항상 꾸준하다.

“뭐 특별한 방법은 없는 것 같네요. 다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버릇이 되어서 아무리 전날 술을 먹고 늦게 잤어도 여섯 시면 일어납니다. 그리고 배우가 몸에 대한 관리도 중요하지만 저는 정신에 대한 관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항상 맑은 정신 상태를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그가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나주이고 지금도 고향연극을 위해서 틈틈이 노력하고 있다. 그가 연극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시절이었다. 고등학교 입시 때 1차로 경복고를 쳤다가 떨어지고 2차에 붙은 학교가 중동고등학교였다.

“ 당시 중동고등학교는 드세기로 아주 유명한 학교였지요. 운명이랄까 1학년 때 제 짝이 당시 유명했던 배우인 김승호씨의 아들인 김희라 그 친구 덕분에 연극반엘 들었었는데 그때의 멤버들로는 한해 위로 전원일기에서 일용이로 나오는 박은수 선배 그리고 일 년 후배로 국립극단에 있는 김재건과  2년 후배로 정동환 등이 있었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연극은 그의 평생의 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중앙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하게 됨으로서 무대는 평생 그의 직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재학 중에 실험극장에 입단을 하게 되고 오늘날까지 실험극장 무대를 지킨 산증인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공연목록의 첫 순위에 올라 있는 작품이 <에쿠우스>와 <아일랜드>이다.

1974년 운니동의 실험극장 시절 개관공연으로 올린 <에쿠우스>가 대박을 터트리면서 알런의 강태기 다이샤트의 김동훈과 이승호는 한국소극장시대의 새로운 역사를 장식한 작품의 주역이 되고 만다. 이후 1977년 아돌 후가드作  <아일랜드>는 서인석과 연출을 맡은 윤 호진과 함께 셋이서 도원결의를 맺고 머리를 완전히 삭발을 하고 나서  6개월간의 지독한 연습과 8개월간의 장기공연으로 소극장의 신기원을 이룩하게 된다.

이후에도<아마데우스> <신의 아그네스> <사람의 아들> <안티고네> 등 한국 연극사에 기록에 남을 공연들이 많이 올려졌다.  그리고 한국연극배우협회를 창단에 참여하여 현재의 조직으로 자리 잡는 데에도 큰 공헌을 하게 된다.

그가 항상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지 빨라진 현재의 세태와 그것이 연극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작금의 연기교육이다. 연기자로서 화술교육의 필요성에 절감하는 그는 살아있는 말맛을 표현하는 것이 연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말은 소리로 표현하는 것인데 말과 행동은 반복된 훈련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지만 말의 느낌은 생각을 통한 분석으로 나온다고 확신한다.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작품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전에 실험극장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이 낙훈 선배와 같이 윌리 로먼에 캐스팅이 되었었는데 무슨 사정인지 이 낙훈 선배가 도중하차를 하면서 이 배역이 다른 배우에게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연출이 저를 아들인 비프 로먼으로 캐스팅을 했었는데 배우생활 40년 만에 캐스팅을 거절한 적이 그때가 처음일 정도로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작품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정도 있었지만 작품이 가지고 있는 매력 때문에 언젠가는 이 작품을 반드시 하고 싶습니다.”

현재는 서울연극제 참가작인 카프카의 <심판> 알버트K에 출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