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뿔 위에서 싸움을 벌이다
달팽이 뿔 위에서 싸움을 벌이다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05.27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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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일 분단국가...화해 평화 통일지향이 불변의 진리

중국 위나라 혜왕이 제나라 위왕을 하도 미워 해 자객을 보내 죽이고자 했다. 그러자 공손연이 말했다. "그런 편법보다 정정당당한 군사적 대응으로 혼 쭐을 내야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계자라는 충신이 달려왔다. "군사 대응은 곧 전쟁입니다. 그것은 백성들의 고통을 너무 크게 하니 삼가하심이 옳을 듯 합니다"

조야의 의견이 분분해지자 재상 혜시와 화자는 대진인이란 현자를 왕에게 추천해 그의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다.

대진인은 혜왕 앞에서 이렇게 물었다. "왕께서는 달팽이를 알고 계시겠지요?"

혜왕이 영문을 몰라 대답했다. "달팽이는 왜?"

어리둥절한 혜왕을 향해 대진인이 말했다. "달팽이의 왼쪽 뿔에는 촉씨(觸氏)가 나라를 세웠고, 오른쪽 뿔에는 만씨(蠻氏)가 나라를 세웠는데, 두 나라는 항상 영토를 더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다가 전사자가 만 명이나 되었고, 어떤 때는 서로를 추격하는데 보름씩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혜왕이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게 무슨 황당한 거짓말인가?"

대진인이 자세를 고쳐 잡고 말했다. "제 말은 절대로 거짓이 아닙니다. 만약 왕께서 우주를 마음대로 날아다니시며 땅에 있는 나라를 보신다면 아무리 큰 나라일지라도 아주 작게 보일 겁니다."

혜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대진인이 다시 말했다. "위나라니 제나라니 아무리 따져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광대한 우주에 서 본다면 그저 달팽이 뿔 위에서 작은 욕심을 다투고 있을 뿐입니다"

혜왕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대진인의 인격과 성인다움에 감탄했다.


채근담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부싯돌 불빛 속에 길고 짧음을 다툰들 그것이 얼마나 되겠으며, 달팽이 뿔 위에 자웅을 겨룬들 그 세계가 얼마나 크겠는가?

천안함 침몰원인이 북한소행이라는 발표가 공식화 되었지만 조야의 반응은 분분하다. 한국 미국 일본과 서구의 나라들은 북한에 대한 강경대응과 전방위 압박을 논한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한반도 긴장고조와 불안을 원치 않는 눈치다. 각 나라의 이해관계가 서로 다를 것이다.

국내 반응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남북교류 전면 중단과 북한에 대한 응징, 국민단합을 당부했다. 수사적 이나마 한반도 전체 민족의 평화라는 궁극적 표현도 담았다. 그런데 일부 보수 언론들의 논설은 가관이다. 국민이 3일만 참아준다면 북한 정사정포의 70%를 파괴하고, 전쟁승리와 한반도 자유통일이 가능하다고 떠든다.

많은 보수논객들이 이 같은 논리에서 마치 전쟁을 해서라도 단호히 대처하라며 대통령을 압박하는 듯한 인상이다. 이와 정반대 편에 선 의견도 물론 있다. 도올 김용옥 같은 학자는 천안함 관련 정부 발표에 대해 0.0001%도 납득할 수 없어 구역질이 난다며 직설을 퍼부었다.

착하고 순진하며(?) 애국적인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부분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묻고 싶은 게 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소행이라 하더라도 그런 사태를 유발한 대한민국 정부의 책임은 없는지? 이명박 정부 출현 후 지난 10년 정권을 좌파정부로 규정하며 차별화한다는 것이 지나치게 북한을 압박해 간 건 아닌가?  前 정권의 긍정적 대북정책마저 교조적 논리로 부정만 한 것은 아닌가? 결과 천안함 사태가 일어난 건 아닌가? 한마디로 대북정책의 실패라는 측면은 없었는가?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무는 법이다. 도둑을 쫒아도 달아날 구멍을 두라고 했다. 그래놓고 지금 와서 군 기강이 해이하다느니, 국민안보의식이 무뎌졌다느니...중요한 건 대통령의 제1 의무는 국가를 지키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이 편안하게 잘살게 해 주는 것이다. 지금의 국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는 전쟁촉진 분위기다. 그토록 살리겠다고 장담했던 경제도 망가지는 분위기다. 

현명하신 국가 지도자들이 잘 알아서 하겠지만 국민은 더 이상 불안을 원치 않는다. 3일만 참으면 북한을 궤멸시켜 자유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두려운 건 우리가 달팽이 뿔 위에서 다툴 동안 미국은 남한을, 중국은 북한을, 일본은 독도를 먹을까 하는 것이 더 우려스럽다.

남북 지도자들은 제발 이성을 차리고, 국면을 크게 넓게 깊게 보는 안목과 지혜를 가질 것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