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 황현옥 영화평론가
  • 승인 2010.07.07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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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322일 비행하는 남자 <인 디 에어>

<인 디 에어>의 빙햄(조지 클루니)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기 위해 비행기에서 1년에 322일을 보낸다. 그가 하는 일이란 여러 회사에서 해고 대상자들을 위탁받아 대신 해고를 통보하는 일이다.

직접 사업장에 찾아가 해고노동자들의 억울함을 들어주고 그들이 뱉어내는 심한 원망을 능숙하게 달래주는 유능한 직원이다. 가끔은 동기부여가가 되어 인생의 배낭을 가볍게 하는 무소유의 삶에 대해서도 강연 한다. 그가 공항 체크인을 30초 전후로 처리하는 과정은 숙련된 전문직 이상이며 그를 대하는 공항 여직원들의 반가운 미소와 체계화된 인사는 그를 편하고 즐겁게 한다.

어쩌면 세상에는 똑같고 진부한 말이 싫어 수만 가지의 은유적 언어로 세상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오히려 좋은 여행되세요? 맛있게 드셨습니까? 같은 뻔한 말로서도 세상을 감동시키기도 한다.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쉴드는 <감정노동-노동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상품으로 만드는가?>라는 저서를 통해 현대사회 서비스직 종사자들을 육체노동,정신노동자와 다른 감정노동자로 규정짓는다. 고객만족을 위해 자기 감정을 통제하고 일상적인 매뉴얼화된 말과 손님을 보고 눈을 마주치는 동시에 미소 지으며 노동하는 사람들이다. 아마 현대인들 모두는 고급음식점에서 퉁명스런 음식 서비스를 받고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서비스종사자들이 오늘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어떤 기분인지는 우리는 알고 싶지 않다. 단지 돈을 내고 받는 서비스의 질에만 관심이 있다. 그들이 교육받은 똑같이 반복되는 말을 듣고 싶어한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누구나 현대인들은 일의

영역에서 일 이외에 서로를 잘 알 필요가 없는 프로가 되야 하기 때문이다.

해고를 대행하며 빙햄이 행하는 친절한 서비스는 감정 노동자로서 자부심과 프로의식이었다. 그러나 그가 알렉스(베라 파미가)와 나탈리 두 여자를 만나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자신의 얼굴을 매뉴얼화된 가면 속에 집어넣고 살았다는 외로움을 느낀다.

알렉스는 빙햄과 똑같이 비행기로 오랜 시간 출장을 다니는 여성으로 빙햄과 서로 부담없는 연인관계이다. 나탈리는 회사 신입여직원으로 해고통지를  인터넷 화상으로 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막대한 출장비를 줄일 수 있는 아이디어이지만 빙햄은 부정적이다. 다양한 해고노동자들의 반응을 나탈리에게 보여 주기 위해 빙햄은 출장에 데리고 가기로 한다.

빙햄, 알렉스, 나탈리가 출장지에서 우연히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빙햄은 문득 인생의 배낭 속에 아무것도 없는 짐이 행복한 것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때론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이 사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희망이며 삶의 존재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 디 에어>는 조지 클루니의 명연기가 돋보이는 대사들을 듣는 즐거움이 있고 <주노>를 만들었던 33살의 제이슨 라이트먼 감독이 완숙한 영화적 완성도를 만들었다는데 찬사를 보내고 싶다. 실제 해고노동자들의 해고 반응을 영화속에 집어넣어 더욱 사실적인 느낌이 나고 우리 이웃의 아픔과 좌절, 감정 노동의 힘듬도 이해하는 수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