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변증법 & 4대강 정비
청계천의 변증법 & 4대강 정비
  • 권대섭 기자
  • 승인 2010.07.0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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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최소화 한 자연생태 하천으로

누가 뭐래도 청계천 없는 서울을 생각할 수 없다. 그것은 한강과 함께 이 나라의 수도를 결정짓는 제1요소였다. 600여년 전 조선이 건국되고 도읍을 정할 때 한강을 마주보며 서출동류(西出東流)하는 이 개천이 있었기에 도읍지로서 주목을 받았다.

정도전 무학대사 등 당대의 명인들은 동에서 나와 서쪽 바다로 향한 큰 강 '한강'을 외룡(外龍)으로 보고, 이 외룡을 바라보며 서쪽 인왕, 백악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역류하는 개천을 내룡(內龍)으로 보았다. 외룡과 내룡이 서로 상응해 합류하며 내사산(內四山 : 백악산 낙산 인왕산 남산)과 어우러진 한양벌을 천하의 명당으로 보았던 것이다. 청계천은 곧 한강과 함께 오늘의 서울을 태동시킨 제1지리요건이 되었다.

처음에는 개천으로 불리웠던 청계천은 도읍 후 도심 가운데 위치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여러 가지 기능과 의미로 시민생활을 지탱하는 역할을 했다. 

첫째, 청계천은 도심하천으로서 자연스레 하수도 기능을 했다. 조선초기 이미 인구 20만까지 성장했던 한양의 시민생활은 청계천이라는 거대 하수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시민들은 청계천과 연결된 여러 지천을 통해 곳곳에서 생명수를 접할 수 있었으며, 온갖 더러운 것들도 이곳에서 소화되어 도심 청결이 유지될 수 있었다.

둘째, 청계천은 조선의 역대 왕들이 왕정을 펼친 중요한 축이었다. 태종 임금은 이 개천을 정비함으로써 시전(市廛)을 열어 도시 형태를 갖추었으며, 세종 임금은 개천에 흐르는 물을 재어 홍수를 예방하려 수표교를 놓기도 했다. 제21대 영조 임금은 개천을 준설하는 대대적인 역사를 벌이기도 했다. 영조는 특히 청계천을 준설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장기간 여론조사까지 했다고 한다. 마치 현대 사람들이 청계천을 복원할 것인지를 놓고 여론조사를 벌였던 일을 방불케 했다.

청계천은 한편 북촌과 남촌을 구분짓는 경계가 되었다. 그 북쪽엔 궁궐을 중심으로 고관대작들이 모여 사는 북촌이 형성되었고, 그 남쪽엔 남산을 중심으로 이른바 '딸각발이' 정신을 보여줬던 가난한 선비들의 남촌이 형성됐다. 또한 천변엔 시장 상업으로 돈을 모은 상인들과 역관으로 부를 형성한 사람들이 중인촌을 이뤘다.

청계천은 시민들의 놀이마당이자 문화마당이기도 했다. 해마다 명절이면 이곳에서 다리밟기, 연등행사, 연날리기, 편싸움이 벌어졌으며, '전기수'라는 이야기꾼이 있어 이곳 천변을 순회하며 고전소설을 읽어 주기도 했다.

청계천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했다. 아낙네들의 빨래터로, 거지들의 움막촌으로, 아이들의 멱감는 터로도 기능했다. 이런 청계천이 현대 빈민촌을 거친 후 무려 40여 년 간이나 콘크리트 길바닥에 덮여 있다가 복원된 것은 당연한 일이며, 참 잘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청계천에 대한 비난 여론이 자주 언론에 등장해 신경이 쓰인다. 서울시가 섬진강 토종 물고기를 억지로 청계천에 풀어 인공 수족관 같은 전시 홍보효과를 노린다는 둥 관리에 드는 엄청난 예산을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자연 생태하천으로서 자연스런 복원을 추구하기보다 지나치게 인위적인 복원구조를 만들어 놨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청계천 복원사업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생태계가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처음 복원을 시작할 때부터 생태 전문가들의 조언을 제대로 듣고 시공했더라면 관리비도 줄이고 깨끗한 물을 유지해 고기를 사서 풀지 않아도 저절로 돌아왔을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이다. 수족관 같은 하천으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이 말이다.

지금 한창 논란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도 마찬가지다. 강을 정비 한답시고 자연상태의 아름다운 천변 숲을 깔아 뭉개고, 시멘트 콘크리트 보를 설치하며, 바닥을 파내어 본들 거기 지나친 인공이 가미된다면 오히려 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대한 그 강의 역사성과 자연 상태를 살리며, 꼭 필요한 인공만 가해 깨끗한 물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관리비도 줄일 것이고, 국민들도 그리 심하게 반대하진 않을 것이다.

청계천 복원이란 '정(正)'이 인공 수족관이란 '반(反)'에 부닥쳤으니, 4대강 사업에서만큼은 전철을 밟지 않는 이상적 '합(合)'을 이뤄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