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의 유혹, 그 끝은 어디인가
표절의 유혹, 그 끝은 어디인가
  • 성열한 기자
  • 승인 2010.07.08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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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씨엔블루…우리의 대중문화 더럽히는 끊임없는 논란

[서울문화투데이=성열한 기자] 한류(韓流)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이는 우리 대중문화의 성장을 반증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눈이 높아진 대중들은 더 신선하고 독특한 문화에 목말라 있다. 그에 따라 대중예술가들의 고충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좀 더 쉬운 방법으로 더 잘 팔리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표절의 유혹은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우리 대중문화의 큰 걸림돌인 표절이 끊이지 않은 원인은 무엇이며, 표절의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4집 앨범의 일부가 표절임을 인정한 이효리와 솔로 데뷔곡 ‘하트브레이커’로 표절 논란을 받았던 G-Dragon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표절

최근 가수 이효리의 표절 논란이 우리나라 대중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사건은 이효리의 4집 앨범 수록곡 중 작곡가 바누스(본명: 이재영)가 작곡한 7곡이 네티즌들에 의해 표절 의혹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결국 이효리는 팬카페를 통해 표절임을 인정하면서 4집 활동을 마무리했고, 바누스는 표절에 이어 학력까지 거짓으로 들통 나면서 이효리의 소속사(엠넷미디어)는 지난 1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사기 및 업무 방해 혐의로 그를 형사 고소하기에 이른다.

가수 이효리는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선도하며 패션과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아이콘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아왔다. 하지만 솔로 데뷔 당시 일본 가수 아무로 나미에의 스타일을 카피한 앨범 자켓 사진을 시작으로 미국의 유명 가수인 비욘세, 그웬 스테파니, 제니퍼 로페즈, 크리스티나 아길레나 등의 패션 스타일과 유사하다는 의혹이 계속돼 왔다. 또한, 2006년 발표한 ‘Get ya’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 ‘Do something’과 비슷하다는 논란을 받는 등, 표절 시비의 중심에 있었다.

이번 ‘바누스 표절사건’은 이효리가 사기를 당한 피해자로 결론지어지고 있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번 앨범의 프로듀서로서 앨범을 총지휘하고 음반의 수록곡 전체를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했다고 공언해 온 이효리는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한 만큼 어떠한 책임이 뒤따를지를 두고봐야할 상황이다.

대중 음악의 발전, 표절 문화의 발전?

사실 우리 가요시장에서의 표절 의혹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대 최고의 인기 그룹이었던 룰라는 3집(1995년) 타이틀곡 ‘천상유애(天上有愛)’를 발표, 댄스와 트로트를 섞어 놓은 듯한 독특한 리듬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일본의 아이돌 그룹 닌자의 ‘오마츠리 닌자(お祭り忍者)’라는 곡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 ‘표절그룹’이라는 오명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리더인 이상민은 자해 소동까지 벌였고, 이 사건은 대중문화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김민종은 ‘귀천도애(歸天道哀)’의 표절이 밝혀져 한동안 가수생활을 접었고, 90년대 최고 가수로 일컬어지는 서태지도 뮤직비디오, 음반 재킷, 무대 연출에서 표절의혹을 받았다. 이어 백지영, 박지윤, Y2K, 디바, S.E.S, 조성모, 이승철, 핑클, H.O.T, god 등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가수들 대부분이 표절 의혹을 받은 바 있다.

최근에는 빅뱅의 리더 G-Dragon의 솔로 데뷔 음반 타이틀곡 ‘하트브레이커’의 도입부가 미국의 유명가수 Flo Rida의 'Riht round'와 유사하다는 논란이 있었으며, 아이돌 밴드 Cnblue의 데뷔곡 ‘외톨이야’가 인디밴드 그룹 와이낫의 ‘파랑새’를 표절했다는 의혹은 아직까지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이렇듯 가요계의 역사와 함께한 표절의 역사는, 앞으로도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표절 의혹을 받은 곡들이 논란만을 만들어 냈을 뿐 명확한 기준이 없어 제대로 된 결론이 난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표절을 통해 주목을 받는 노이즈 마케팅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이효리는 표절을 인정한 것만으로 바누스에게 사기를 당한 피해자라는 이미지와 함께, 최초로 당당히 표절을 인정한 가수라는 긍정적인 평까지 받고 있다. Cnblue는 표절 논란이 계속된 ‘외톨이야’로 각 음원차트와 지상파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불과 15년 전, 룰라가 쓸쓸한 퇴장을 할 때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씨엔블루의 ‘외톨이야’는 와이낫의 ‘파랑새’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판단할 명확한 기준 없어

1990년대에 표절은 공적인 제재를 받았다. 정부의 주도하에 공연윤리위원회의 평가에 따라 표절곡이 걸러지는 형태였다. 공적 기관에서 판단하는 만큼 가수나 작곡가들도 표절에 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법적 제재까지는 아니었지만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 아래 검증을 거쳤기 때문에 표절 시비나 논란이 일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1999년 공연윤리위원회 내 표절위원회가 폐지되면서 표절에 대한 검열 기능도 사라졌다. 현재는 원작자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표절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일반 대중들의 감시에 의해서 표절 의혹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표절 작곡가에 대한 법적인 제재나 징계도 원저작자에게 관련 수익을 넘기도록 하는 것뿐이기 때문에 ‘고의적인 표절’이 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해외 유명 저작자들은 표절을 가리기 위한 소송 자체의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시장이 작아 얻어지는 수익이 크지 않기 때문에 복잡한 소송을 걸려 하지 않는다.

이승철은 ‘소리쳐’의 표절 시비가 일어나 논란이 거세지자 원곡의 저작권자에게 저작권을 일부 넘겨주고 ‘표절이 아닌 인용이다’라며 사태를 마무리했고, G-Dragon은 표절 시비가 일어나자 Flo Rida에게 ‘하트브레이커’의 피처링을 받는 등 똑똑한(?) 대처로 표절 논란을 잠재운 경우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점점 더 모호해져가는 표절에 대한 기준은 팬덤문화(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그러한 문화현상)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예전에는 표절을 한 가수에게서 등을 돌리는 팬들이 많았지만, 현재는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무조건 옹호하는 경향이 많다. 때문에 표절 의혹이 있더라도 팬들이 성명서까지 발표하면서 가수를 보호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점점 대담해지는 표절 문화

많은 음악평론가들은 변화한 가요계의 환경도 표절곡을 양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앨범을 준비하는데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 소요되는 디지털 싱글이 일반화되면서 현재의 트렌드에 맞춘 음악이 제작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때문에 유행하는 음악과 비슷한 스타일의 음악들이 만들어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표절 의혹도 생겨난다는 것이다.

거대 기획사나 음반제작자들도 이러한 유행을 따라 작곡가들에게 특정 곡(레퍼런스 곡)의 스타일대로 제작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이렇게 제작된 음악들이 문제가 될 경우 법적인 문제에 대한 준비를 갖춰놓은 거대 기획사는 비교적 안정된 재원으로 저작자와 협의를 하거나 사건을 길게 끌어서 미궁으로 몰아가는 방식으로 대처하는 대담함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러한 환경은 점점 많은 표절 의심 곡들을 양산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징계 필요

외국의 사례를 보면 표절 판정이 매우 엄격하다. 인기스타도 표절의 잣대는 피해갈 수 없었다.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은 자신의 솔로앨범 중 ‘My sweet load’가 4인조 여성그룹 The Chiffons의 ‘He's so fine’과 멜로디가 비슷하다는 법원 판결에 의해 수익을 원작자에게 지불해야 했다. 최고 인기 그룹의 멤버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옹호했지만 본인의 표절 의사와 관계없이 멜로디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표절이 인정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 MC몽의 ‘너에게 쓴 편지’가 더더의 ‘It's you’를 표절했다는 법원 판결을 받은 선례가 있지만, 고작 배상한 손해액은 1,000만원에 불과했다. 그나마 2007년 아이비의 ‘유혹의 소나타’는 뮤직비디오가 게임 ‘파이널 판타지7’을 도용한 혐의가 인정돼 소속사가 3억원을 원작자에게 배상한 것이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표절은 반사회적 행위로 구분해 엄격한 잣대로 처벌하고 있다. 특히,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민사재판에서 가해자 행위가 악의적인 경우 실제 손해액을 넘게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에게 판례가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억제 효과가 크다.

1997년 자신의 전처를 살해한 미식축구선수 O.J.심슨에게 약 330억원을 손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것이 이 제도의 가장 큰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 이러한 수십·수백억의 배상 판결이 일반화되고 있다. 이러한 강력한 징벌 체계는 표절을 예방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표절위원회를 발족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법 찾아야

현재 한국음악출판사협회가 만든 저작권 가이드라인에서 표절은 ‘원곡의 멜로디, 가사, 리듬, 편곡 방식 등 사전 허락 없이 쓰는 모든 행위와 샘플링이나 커버 버전 모두 사전에 이용허락을 받지 않으면 경우’로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07년 12월 발표한 <영화 및 음악 분야 표절 방지 가이드라인>도 ‘가락(melody), 리듬(rhythm), 화음(harmony) 세 가지 요소를 기본으로 해,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같거나 두 곡에 대한 일반 청중의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추상적인 기준이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기준을 좀 더 확실하게 고쳐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자 한국저작권위원회은 지난해 12월 표절위원회를 발족해 올해 초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표절위원회는 그 동안 학술 분야뿐만 아니라 가요계와 기타 대중문화, 예술분야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표절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 제고와 이의 근절을 위한 다각적인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서 만들어졌다. 각 분야별 전문가와 법률 관련 학자 등으로 구성해 심의결과에 대한 공신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소송 절차와 보상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손을 놓고 있어 실질적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표절위원회는 공연윤리위원회가 맡았던 포괄적 표절 심의와 달리 감정 영역만 관여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피해자가 감정에 소용되는 비용(평균 500만원 이상)을 준비해야 가능하다.

이렇게 표절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경제적 보상을 받기는 어렵고, 피해자가 오히려 감정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알게 된 원작자들도 방치하거나 협의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개선 없이 개인의 양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놓은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인식 개선 절실

우선 환경적인 요건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사람과 그것을 듣는 사람 모두가 표절에 대한 인식을 달리할 때 우리 대중음악의 미래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중음악계는 음악의 저작권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며 불법다운로드 근절을 외치고 있다. 또한,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동남아 지역에서 우리 가요들이 불법 도용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책도 강구 중이다. 하지만 우리가 표절의 문화를 근절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한 대응도 쉽지 않을 것이다.

표절에 대한 논란은 대중음악에 국한 된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 영화를 비롯해 소설, 논문, 패션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뿌리 박혀있다. 표절에 대한 안일한 대처는 또 다른 표절을 낳게 된다. 우리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의 대중문화는 선진문화를 차용하는데 급급해 그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자신의 작업을 하기 위한 노력과 자존심을 지키는 문화인들이 노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