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뿐인 국제영화제
허울뿐인 국제영화제
  • 성열한 기자
  • 승인 2010.07.2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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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함께하는 축제인가, 전시성 행사인가

[서울문화투데이=성열한 기자] 올 여름 다양한 영화제들이 열리고 있다. 7월만 해도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제12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개최됐고, 제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15일부터 11일간의 축제를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SICAF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 낙원음악영화축제, 정동진독립영화제, 제천국제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들이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제는 목적이나 컨셉에 따라서 그 영화제의 특성이 만들어지고 그 특성에 맞는 영화와 배우 및 감독을 초청해 관객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영화인들의 상호교류의 공간이다. 특히, 국제영화제는 전세계 다양한 영화와 제작진뿐만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방문해 국가나 지역의 브랜드이미지를 제고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축제다. 하지만 국내 영화제 중에서는 이름만 ‘국제(international)’을 붙였을 뿐, 실제로는 국제영화제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영화제들이 많다. 이것은 국내에서 개최되고 있는 국제영화제가 정확한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진 결과다.

영화제 홍보를 위한 스타 마케팅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다.

정체성 잃은 국내 영화제들

국내에서 개최되고 있는 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화제의 정체성이 모호함을 들 수 있다. 영화제가 만들어질 때부터, 영화제를 주최하는 도시의 특성에 맞추기 보다는 영화제가 개최되는 것 자체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정체성을 잃은 영화제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많다. 영화제를 개최하는 목적은 그 이후에 찾아나가는 식이다. 이러한 주제가 불투명한 영화제의 사례로 광주국제영화제를 들 수가 있다. 많은 문제를 일으키며 비판을 받아왔던 광주국제영화제는 최근 영화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지방자치단체의 전시성 행사의 일환이라는 것도 큰 문제점이다. 일반적으로 영화제의 가장 중요한 후원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지방자치단체다. 하지만 영화제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지나친 간섭은 영화제의 존폐를 위협하기도 한다. 또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치적 활용의도로 계획된 영화제도 자생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공공기관이 국제영화제를 지원하는 이유는 문화적 목적과 경제적 목적을 함께 이루기 좋은 행사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우리 영화를 국내외로 전파하고, 다양한 문화 속에서 각기 다른 주제와 목소리의 영화들, 또 할리우드 외 영화들을 소개해 영화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영화제를 개최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영화 관객이 확대됨과 동시에 지역사회가 결집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영화산업 전문가들 간의 산업네트워크를 형성해 지역발전도 모색할 수 있다.

▲국내 단편영화제가 필요 이상으로 개최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국제영화제의 또다른 문제점은 비슷한 성격을 지닌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에 개최됐던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대한민국국제청소년영화제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국내에서 청소년들에 의해서 제작되고 있는 영화가 많지 않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두 영화제 모두 각자의 특성을 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단편영화제 경우에도 부산아시아나단편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미쟝센단편영화제 등 10개 이상의 영화제들이 난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슷한 영화제가 많아지면 영화제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각 영화제의 개성을 살려나갈 때만이 수많은 영화제들이 공존할 수 있다.

협약기구 통한 발전 모색하는 해외 영화제들

국외의 영화제들은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지원을 받아 영화제가 운영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유럽의 경우는 지방 정부나 영화산업을 대표하는 기관이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형태가 대부분이고, 미국의 경우에는 지방 정부의 지원이 없고, 영화 시장의 수익과 연관된 관계자들의 모임단체에 의해 대부분의 지원이 이뤄진다. 정치적 의도에 휘말리지 않고 영화제 자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의 영화제 운영 지원금 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또한 국제영화제 협약기구를 통한 교규와 협력을 통해서 각 영화제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국제영화제작자 연맹(IFFPA)와 유럽영화제위원회(ECFF) 등 협약기구를 통해 영화제들 간의 파트너쉽을 장려하고 있고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유럽영화제위원회의 경우에는 32개국의 250여개의 영화제가 참여해 유럽 영화들의 상호 교류와 유럽 외부 지역을 상영을 위한 공동 활동을 통해 각 영화제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제 간에 커뮤니케이션은 비슷한 성격의 영화제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고 서로 정보의 교류가 가능해 더 다양한 질 좋은 영화들을 영화제에 상영할 수 있는 기회도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영화제가 독립적인 성격을 유지해 개성을 유지하는데도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양적 팽창 아닌 질적 향상 위한 비전 찾아야

▲영화제의 양적인 팽창 뿐만이 아니라 질적 향상에도 힘써야 한다.

옥성수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책임연구원은 그의 논문에서 우리나라의 국제영화제에 대해서 몇 가지 의견을 제시했다. 먼저 국제영화제의 효율적 운영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지원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료관객의 참여를 기준으로 운영 효율성과 관객과 전문가의 만족도를 따져 지원금의 차이를 둔다면 영화제의 개최 자체를 목적으로 한 영화제들이 줄어들 것이다.

다음으로 영화제의 내실 보다 출품국이나 출품작의 수의 집착해 양적 팽창에만 몰두하는 점을 지적했다. 급격한 규모 확대와 다양한 부대사업들은 오히려 영화제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특히, 영화제 개막식 행사에 초청된 수많은 인사들이 영화제 보다 관심을 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옥성수 연구원은 무엇보다 영화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중장기적인 비전과 목표를 설정해 각 프로그램의 독창성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질과 수준을 높여 영화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다른 영화제와는 다른 개성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해외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영화제간의 정보교환이나 기술지원 등의 교류를 활성화 할 수 있는 영화제협의체를 구성해 발전시켜는 것도 중요하다.

국제영화제로서 위상 만들어가야

▲칸영화제는 올해 15개국 19편의 영화가 경쟁부분에 초청됐는데, 그 중 할리우드 작품은 한 작품에 불과했다. 상업성보다는 영화제의 내실과 다양성에 힘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항간에는 지역의 이름을 갖고 있는 국제영화제들은 영화인들의 축제도, 다른 누구의 축제도 아닌 그 지역의 축제일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전시성 행사임을 꼬집은 말이다. 이러한 지적을 벗어나 국제영화제라는 이름에 맞는 영화제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환경적인 요인의 개선과 더불어 영화제의 주체인 영화인들의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 영화제의 주체인 영화인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정치적 영향력에 좌우돼 영화제가 변질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의 국제영화제들이 해외 유명 국제영화제인 칸 영화제,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와 같은 훌륭한 영화제로 성장해 나가기위해서는 눈앞에 1년을 바라보기보다 향후 10년, 20년을 바라보고 미래를 설계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