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지본>을 아십니까
<딱지본>을 아십니까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10.07.2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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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중화·독서 열풍 일으켰던 시골장터 그 책들

그때는 그것이 <딱지본>인 줄 몰랐다. 1970년대 전반 고향 시골 장터 한 켠에 널찍한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진열 돼 있던 알록달록한 표지 그림의 책들. 초등학생 공책 정도의 두께와 크기를 가졌던 이 책들에 그려진 그림들이 하도 재미있어서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오랫동안 만지작 거렸다. 어린 초등학생이 그러고 있으니 인심 좋은 책전 할아버지가 그냥 한 권을 주셨다. <심청전> <춘향전> <옥당춘전> <박씨부인전> 등 우리 고전소설들이 시장바닥 책전에 그득했다.

책 한 권을 얻어 들고 집에 가서 할아버지(할배)께 자랑했더니 마침 그런 책들이 할배 계시는 방 시렁에도 여러 권 있었다. 한글 세로쓰기로 얇게 편집된 책들은 사람 손을 하도 타서 책장 끝자락이 흐물흐물 닳아 있었다.   어른이 되서 보니 책 표지가 아이들이 갖고 놀던 딱지처럼 알록달록하다 하여 이 책들을 <딱지본>이라 부르고 있었다.

당시 우리 할배께선 동네 다른 동년배 남자 어르신들이 화투놀이로 시간을 보내는 긴 겨울밤을 이용, 이 딱지본을 벗해 읽곤 하셨다. 때로는 이 딱지본을 들고 동네 할머니(할매)들이 모인 방으로 초대되곤 하셨다. 경로당도 없고,  마을까지 전기도 TV도 없던 시절, 시골동네 할머니들에겐 긴 겨울밤을 재밌는 이야기로 메꿔 줄 분이 필요했다. 할머니들은 대개 우리 할배보다 나이가 많거나 동년배의 동족부락 이웃 또는 일가 집 아지매들이었다. 할배께선 그 할머니들에 둘러쌓여 딱지본을 펼치셨다. 그리고는 낭랑한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변사또 수청을 거부하다 옥에 갇힌 춘향이...과거보러 한양가신 몽룡 도련님은 소식이 없구나..."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할머니들도 많았던지라 할배께서 읽어 주시던 고전 소설 이야기 자락은 꿀맛보다 나았다.

"허허~! 토골 어르신(할배 택호) 촉성 참 좋니더~!"

낭랑한 음성으로 이야기가 굽이 칠 때마다 할머니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 전개에 감탄하고, 낭랑한 할배 촉성에 감탄했다. 이렇게 한 대목 이야기가 끝나면 할머니들은 할배를 그냥 보내지 않으셨다. 동네 구판장에서 큰 주전자가 넘치게 받아 온 막걸리를 대접했고,  긴 대롱에 재어 피우던 풍년초 담배를 그득 담아 함께 나눠 피웠다. '남녀칠세 부동석'의 교육을 받고 자란 그 세대 할배와 할매들...그것도 번듯한 양반을 칭하던 곳에서 이런 장면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내게 있어서 딱지본은 이런 추억이 서려 있다. 학교 갔다 오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들러 오던 시골장터, 땅바닥에 자리 하나 깔고 펼쳐있던 알록달록 책들, 늙으신 책전 할배, 우리 할배, 그리고 동네 할매들...그런데 알고 보니 이 딱지본은 일제시대 땐 전국 장터를 휩쓴 베스트셀러였다. 1920~30년대엔 전국 장터를 통해 책읽기의 대중화를 선도했다고 한다. 내용도 <이순신전> 등 우리 역사 속 영웅전을 비롯해 고유의 고전소설들을 다룸으로써 민족의식 형성에도 기여했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이 이달 14일부터 홈페이지를 통해 열고 있는 '한국 딱지본 사이버 전시전'은 이런 사실들을 잘 말해준다. 시장에서 국수 한 그릇 값 정도인 육전(六錢)에 팔려 '육전소설'이라고도 불린 딱지본 전시전에서 서울대 도서관은 모두 212책을 공개했다. 그 중 소설책이 대부분이고, 재담집 4책과 잡가집 7책이 포함됐다. 특히 이들 일제시대 딱지본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게 디지털화 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나라를 빼앗긴 암흑 시대에 대량 생산된 책이 싼 값에 뿌려짐으로써 문화대중화와 국민독서열풍을 일으켰던 <딱지본>. 올 여름 새삼 이 딱지본을 생각나게 한 '사이버 전시전'을 보면서 다시 한번 국민독서 열풍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책읽는 국민이라야 진정한 선진국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