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 전통 제화거리는 사라지고
85년 전통 제화거리는 사라지고
  • 박솔빈 기자
  • 승인 2010.07.2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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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교 제화거리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서울역. 조금만 벗어나면 신발가게가 줄지어 서있는 염천교 제화거리를 만나게 된다.

40곳 이상의 제화점과 피혁점이 몰려있는 이 거리에는 신사화, 숙녀화, 스포츠 댄스화 등 다양한 신발이 가게마다 수백 켤레씩 진열돼 있다.

소가죽으로 만든 구두가 기본 5만 원, 웬만한 브랜드의 신발들에 비하면 반값도 되지 않는다. 양피는 물론 악어나 뱀피 등의 특수 가죽으로 만든 구두까지 40~50% 저렴한 가격에 판매된다. 대부분의 여성 구두는 3~6만 원 선에 샌들부터 부츠까지 디자인도 다양하다.

이곳의 가격이 특별히 저렴한 이유는 일반소비자도 도매가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긴 도매상가니까 시중 단가보다 훨씬 싸게 나오죠. 공장에서 직거래하다 보니까 싼 가격으로 나오는 건데 메이커 이런거 따지지 않는 사람들이 주로 와요."

이 구두골목은 약 85년 전인 1925년 일제 강점기 시절 경성역에 생긴 화물창고에서 시작됐다. 창고로 들어갈 피혁들이 밀거래되면서 잡화상과 피혁점, 구두 수선점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해방 후에는 미군들의 중고 워커를 재활용해 신사화를 만드는 가게도 문을 열었다.

이곳의 수제화는 유명 제화점보다 값이 싸고 품질이 좋아 큰 인기를 누렸고 서울역과 인접한 지리적 특성을 활용해 전국을 대상으로 한 도매시장으로 급성장했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대형 제화업체와 값싼 중국산 구두에 밀려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제 곧 장마철이다. 구두공장의 비수기는 여름 장마와 함께 시작된다. 비가 내리면 지독한 가죽냄새와 본드 냄새로 가득한 공장의 제화공들의 일거리도 줄어든다.

"여름엔 구두장사가 잘 안되니까 주문이 없어요. 그냥 휴가나 마찬가지지. 하루 건너 일거리가 있어도 다행이고."

하지만 그나마 있는 일거리마저도 위태롭다. 대부분의 가게들이 재개발에 가게를 비워야 할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교류단지 조성을 위한 ‘서울역 전시·컨벤션센터’ 건립이 승인되면서 서울역북부역세권 개발에 가속도가 붙게 된 것. 이 자리에는 4년 뒤 서울 최대 전시·컨벤션센터가 들어선다. 일제 강점기부터 85년의 세월을 품에 안은 염천교 구두골목이 고작 오피스텔과 호텔, 컨벤션센터에 밀려나는 것이다.

"이게 내 건물도 아니고 세 들어사는 처지에 돈이 있어야 가게를 옮기지. 옆집도 문 닫았잖아."

문 닫은 가게도, 문 연 가게도 시름이 깊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