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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 초청 배경이 궁금하다.
지난해 11월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에 참여했을 당시 내가 노원문화예술회관상을 수상한 인연으로 노원문화예술회관 관장이셨던 최진용 관장님께서 그 예술가를 초청하게 되면서 참가하게됐다.
뉴욕에서 오랫동안 공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 뉴욕에서 공부와 활동에 대해 듣고 싶다.
댄스학교에서 여러 가지 공부 계획을 짜고 여러 장르를 배웠다. 특히, contemporary 중심으로 공부를 했다
춤을 중간에 그만 뒀다가 다시 시작했다. 이유가 있을 것 같다.
확실히 표현하긴 어렵다. 굳이 설명하자면 두가지 이유를 꼽을 수 있다. 첫 번째는 신체적(무릎) 부상 때문이었다. 부상 때문에 병원을 10군데나 다닐 정도로 심각했다. 병원에서도 이유를 알 수 없어 다시 춤을 시작할 상황이 되질 못했다. 또 한 가지는 정신적인 면이었다. 사람은 옛날 과거를 안고 산다. 하지만 나는 과거, 예전의 것들이 점점 커져서 그 당시 현재의 나를 이겨버렸다. 그래서 나도 알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이 찾아와 춤을 그만뒀던 것이다.
방황의 시기였다고 볼 수 있나
굳이 방황이라고 까진 할 수 없었지만 크게 보면 그 시기는 방황하면서 저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춤을 다시 시작하면서 어떤 것을 다시 찾게됐는지
무엇보다도 단순히 춤이 아니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찾았다. 그리고 세상에는 다른 행복한 일이 많지만 춤이, 내게 주는 행복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만들면서 춤추는 것으로 인해 내 자신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개인적인 종교는 없지만 무대위에서 춤을 추고 있으면 그 공간 안에 어떤 존재가 있다고 느낀다.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 존재의 메시지 전달한다는 생각이 든다. 댄서로서 예쁘게 보이기 보다 메시지 전달에 관심을 더 두고 있다. 예를 들어 토마토를 손으로 터뜨리거나 담배를 뜯거나 하는 것 등은 일상적이지 않지 않은가. 이런 것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일상은 그렇지 않다(웃음)
지금은 신체적으로 무리가 없는가
지금도 아플 때가 있지만 예전보다는 덜하기 때문에 아픔은 잠시뿐이다. 예전처럼 걷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적은 없다.
이번 두 작품 전체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관객들이 춤을 보면서 각자 자신의 취향대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작품 자체를 자신 안에 투영시켜서 감상했으면 하는 것이다.
작품 [f.ex]에서 ‘뻔뻔스럽다’는 무엇을 의미하나
뻔뻔함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방어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테마로 잡았다. 현재까지 결과라는 것은 뻔뻔함에 대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저 현상으로 인정한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일상을 살기위해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f.ex]가 부토적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포스트 모던댄스, 부토적 경향 둘 중 어느 것도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내 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지금 외국에서 돌아와 귀국한지 3년됐다. 일본이 부토가 뿌리깊이 남아 있어 조금은 영향을 받았겠지만 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나라가 다르면 공기뿐만 아니라 먹는 것이 다르므로 장르에 대해 이렇다하고 정해 놓고 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무용 수준은 어느정도라고 생각하는지
뭐라고 평하기는 어렵다. 다만 공연예산이 삭감되고 있는 일본에 비해 한국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좋은 무용수들이 육성되고 있는 것 같다.
끝으로 이번 공연에 참가한 소감을 말해 달다.
먼저 다른 곳에서 흔하지 않은 좋은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관심에도 감사를 표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좋은 무대를 위해 준비기간 동안 서로 배려하려고 애썼지만 언어문제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다. 작품 면에서는 생각하는 것을 모두 전달하기 위해 완벽히 납득할 수준은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스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히 진행돼 관객들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다. 마지막으로 공연을 위해 최선의 도움을 준 스텝과 관객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