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차없는 거리는 신기루인가?
인사동 차없는 거리는 신기루인가?
  • 권대섭 대기자
  • 승인 2009.03.06 0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사동 들여다보기 2/ 제한시행 역순환 교통 등 대안 나오기도

논의 분분하나 실행까진 아직 멀어

인사동 ‘전일 차 없는 거리’는 일종의 신기루 같다. 희뿌옇게 멀리서나마 보이면서도 다가서면 또 멀리 있다. 최근 들어 정체성 상실이니 싸구려 중국산 기념품의 천국이니 하며 말들이 많지만 그래도 인사동만한 거리는 서울에 없다.

평일에도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는 인사동 거리. 차와 오토바이 사람들이 각기 피해가며 아슬아슬 인사동 길을 가고 있다.

 전일 차 없는 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것도 이만한 거리를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만일 ‘전일 차 없는 거리’가 될 수만 있다면 인사동은 더욱 유명해 질 것이다. 결국 완전히 차가 없는 인사동에 대한 논의도 그나마 인사동을 포기할 수 없는 시민들의 기대와 애정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차 없는 거리의 명암

하지만 인사동 전일 차 없는 거리 시행은 현실적으로 빠른 시일 내엔 어려워 보인다. 장기적인 도시계획과 문화지구에 대한 섬세한 플랜이 맥락을 같이 하며, 상당기간 치밀하게 준비될 때 가능해 보인다. 인사동 고서점 통문관의 이종운 대표는 “인사동 주도로변의 기념품 가게들은 찬성을 하겠지만 도자기나 미술품, 목기 등 인사동 본래의 모습을 대변했던 전통가게들에겐 차 없는 거리가 고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 없는 거리로 사람들이 몰려드면 소품가게들은 득을 보겠지만 고가품을 다루는 전통가게들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고 만다는 것이다. 인사동을 찾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전통 물품 매니아들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말은 오늘날의 인사동 현실을 압축한 말로 들린다. 결국 전통가게들에 대한 문화적 보호대책 없이 시행되는 차 없는 거리는 오히려 인사동의 본래 모습만 망가뜨려 놨다는 이야기도 된다.

인사동 전통문화보존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 “현재의 토 · 일요일 차 없는 거리만으로도 인사동이 이만큼 상업화됐다”면서 “현 상황에 대한 대책 없이 전일 차 없는 거리를 시행할 경우 인사동은 완전히 유흥 거리로 변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임대료 상승은 차치하고라도 50여개에 달하는 화랑들이 매주 수요일 문을 열어 다음 주 화요일 문을 닫고 있는 현재의 시스템 유지에 타격을 주며 이들마저 빠져 나가게 될 것”이라며 예를 들었다. 물품 운반을 위해 차량운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사동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해정병원 관계자도 전일 차 없는 거리 시행 시 병원이 난감해 질 것을 우려 했다.

환자 운송은 물론 병원 물품이나 기기들의 운반 시 차량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이 관계자는 병원뿐만 아니라 인근 SK빌딩, 백상빌딩, 공평동 은행가, 대성산업 등 기업들도 반대하고 나설 것임을 지적했다.

정체성 유지가 관건

인사동 전일 차 없는 거리 시행에 대한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차 없는 인사동’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는 강해 보인다. 인사동을 자주 찾는다는 대학생 이민성씨(27, 종로구 신영동)는 “인사동 길 자체가 좁은데다 평일엔 차량이 끊이질 않아 불편하다”며 “차 없는 거리가 빨리 확대 시행되면 좋겠다”고 말했다.주부 김진영씨(45, 영등포구 신길동)도 “인사동을 서울시민 전체의 사랑받는 문화거리로 가꾸려면 언젠가는 전일 차 없는 거리가 돼야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런 반면 제한적 차 없는 거리를 의견으로 내놓는 이도 있다. 인사동 중심가를 이룬 쌈지길에서 가게를 운영 중인 P모씨(43, 성북구 돈암동)는 “전일 차 없는 거리를 실시하기 어려우면 매일 일정시간 차량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법이나 외곽 공영주차장을 확대해 주는 방법은 없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인사동 차(茶) 문화 보존회의 한 관계자는 “지금처럼 안국동 로타리에서 종로방향으로 흐르는 일방 통행제를 뒤바꿔 종로 쪽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차량을 역순환 시키면 꼭 필요한 차들만 인사동을 지나게 될 것”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인사동의 차량홍수가 지금보다 훨씬 덜하게 돼 문화지구의 분위기를 제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1997년 일요일 차 없는 거리로 처음 시작, 2003년 6월부터 토요일에도 차 없는 거리로 시행한 인사동. 관광객 1200만명 유치라는 서울시 정책과 맞물려 진행된 이 같은 조치는 일단 사람들을 인사동으로 끌어 모으는 데는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그에 따른 임대료 상승과 유흥 거리화, 전통가게들의 외곽 이주로 인한 정체성 상실 등 부작용을 낳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전일 차 없는 거리 시행도 궁극적으론 이런 부작용을 봉쇄하면서 정체성 유지를 전제로 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권 대 섭 대기자(kds5475@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