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충무로야사]추억의 명화 그 주제음악들 (한국영화 편)
[연재 충무로야사]추억의 명화 그 주제음악들 (한국영화 편)
  • 이진모 / 시나리오 작가(영상교육원 교수)
  • 승인 2010.08.1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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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춘석 작곡가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가득 슬픔 뿐이네
무엇을 할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건 모두가 돌아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통키타 가수 송창식이 열창한 이 노래는 1975년 하길종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바보들의 행진> 주제가이다.

노랫말에 내포돼 있듯이 다분히 좌절과 저항 의식이 파도처럼 출렁이고 있음이 느껴진다. 당시 군사 정권에 의해 통제된 젊은이들과 대학생들의 자유로운 열정과 의식체계에서 분출된 반응일 것이다.

영화 <초우>의 주제가는 혼자서 가만히 듣는 노래라면 ‘고래사냥’은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이다.  그냥 흥얼거리거나 무슨 가곡을 부를 때처럼 심각한 표정과 진지한 자세로 부르는게 아니라 M.T나 혹은 술자리에서 모두들 벌떡 일어나 손뼉을 치거나 발을 구르면서 군가처럼 합창하거나 열창하는 노래였던 것이다.

장발과 미니스커트 단속, 캠퍼스내 데모 진압대 투입, 학생 운동 주동자 검거 선풍 등 서슬이 시퍼랬던 군사정권의 강압적 통제가 이 노래의 선풍적인 유행을 더욱 부추기지 않았나 한다. 지금도 신, 구세대가 함께 합창하며 소통할 수 있는 노래는 유일하게 이 노래 뿐일 것이다.

영화 <바보들의 행진> 또 한곡의 주제가는 ‘날이 갈수록’이다. 전기한 영화의 원작자이자 시나리오를 각색한 작가 최인호씨와 함께 출연해 대학축제의 사회자 역할을 했던 학생가수 김상배군이 작곡 작사한 노래이다.

영화에선 ‘긴머리 소녀’를 불러 유명해진 김정호가 그 특유한 음울하고 슬픈 음색으로 불러 고래사냥의 좌절과 저항 의식을 허무함으로 전환시킨 이 노래도 역시 아직도 대학가 주변 카페나 미사리등 강변이나 바닷가 카페에서 간간히 들려지고 있는 노래 중의 한 곡이다.

‘몇미터 앞에다 두고’라는 노래를 부른 김상배라는 요즘 가수와는 동명이인인 이 작곡가는 요즘도 가끔 만나는 친밀한 후배로 한국영화 음악의 뉴웨이브로 앞장선 재즈 섹소폰의 일인자 정성조 음악그룹의 한 패밀리이기도 하다.

정성조씨는 서울대 음대와 뉴욕대에서 음악을 전공한 후에 귀국해 소설가 조해일의 원작 영화 ‘겨울 여자(김호선 감독)’ 등 숱한 영화 음악을 작곡 했으며 지난해 까지 KBS 악단장을 맡아온 다양한 대중음악의 귀재이다.

필자의 황순원 원작 각색 작품 <소나기>에도 음악을 담당해 김상배, 변성용과 함께 가끔 만나는 사이이기도 하다.

그 다음으로 많이 불려지고 있는 영화주제가는 가수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이 아닌가 한다. 마침, 그저께 이 영화에 여주인공으로 열연해 인기가 수직 상승했던 왕년의 전설적인 여배우 김지미씨가 미국으로부터 귀국해 영화 <하숙생>을 연출한 정진우 감독과 점심을 함께 한적이 있다. 김지미씨는 한국영화인복지재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자신의 흉상을 세우고 회고록을 헌액하기 위해 귀국했단다. 필자가 김지미씨를 만난것도 그의 회고록을 쓰기 위한 회합이었다.

주제가 ‘하숙생’ 다음으로 많이 불려지고 있는 노래는 가수 정훈희양이 불렀던 ‘안개’일 것이다. 60년대 한국단편문학의 백미격인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안개’라는 타이틀로 김수용 감독이 이 영화의 내용과는 상당한 이질감 내지 거리감이 있는 뉘앙스의 곡이지만 소설 (무진기행)의 열병 같은 문학적 파급효과 때문인지 상당히 오랫동안 유행되고 있는 주제가이다.

그 다음으로는 필자의 동료작가 이두형군이 시나리오를 쓰고 작사 까지 한 가수 최헌이 부른 ‘가을비 우산 속’과 필자가 김하림군과 공동집필한 영화 <비 내리는 명동거리> 등이 노래방에서 올드팬들에게 가끔 불려지는 정도이다.

지금도 가끔 비 내리는 명동거리를 홀로 지나가노라면 어디선가 ‘가을비 우산 속’을 흥얼거리던 작고한 친구 이두형군의 해맑은 모습과 술한잔 마시면 곧잘 (비 내리는 명동거리)를 가수 배호의 버전으로 불러대던 친구 김하림군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쏟아지는 빗발 속에 픗뜩픗뜩 떠오른다.

한국영화의 영화음악을 가장 많이 작곡한 작곡가로는 60년대 황문평, 최창권, 정윤주, 전정근, 박춘석, 이봉조, 길옥윤, 이철혁 등이 있으며 70년대 들어서는 정성조, 신병하, 김수철, 김영동, 강근식, 변성용 등이 있음을 부기해 둔다.
 
(정리 한상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