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퓰리처상 사진전’
[리뷰] ‘퓰리처상 사진전’
  • 박소연 기자
  • 승인 2010.08.14 14: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실 이후, 그리고 침묵에 대한 신랄한 기록

[서울문화투데이=박소연 기자] 거죽을 간신히 덮고 있는 앙상한 뼈의 마디마디 위에 자리한 숨죽인 정적. 땅에 쳐 박힌 한 아이의 고개 옆으로는 메마른 풀 몇 포기가 절박하게 그러쥐어있는 작디작은 손이 놓여있다.

물기 한 방울 찾아볼 수 없는 땅에 간신히 솟아 오른 풀포기 뒤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에서는 냉엄할 정도로 차분한 기다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실낱같은 숨을 토해내고 있는 아이와 아이의 손에 쥐어진 풀, 그리고 그 멀찍이서 그 아이를 기다리는 검은 독수리. 이것은 동아프리카의 무자비한 기근에 대한 찰나의 기록이었다.

사진들은 결코 소란스럽지 않다. 사진 속 모습들은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곳에선가 벌어지고 있는 역사적 사실의 한 장면일 뿐이다. 선글라스를 쓴 채 총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군복 차림의 청년들을 담은 사진 아래 적혀 있는 ‘이성을 잃은 사형집행자들’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비석을 부여잡은 채 탄식하는 한 여인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찰나는 렌즈를 통해 순간에서 영원으로 유예된다.

유예된 이 기록들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있는 그대로의 정지된 순간을 사람들에게 내보인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감을 담담히 기다린다.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역사를 기록해야만 하는” 이들의 뷰파인더에 담긴 땀과 눈물들은 기억되어야만 하는 찰나의 장면을 포착해 세상을 향해 쏟아낸다. 당신은 어떻게든 이 사진을 똑바로 직시해야만 합니다, 라는 분명한 전제와 함께.

렌즈를 통해 그들이 겨눈 총구는 이제 그것을 대면하는 모든 이들을 향해 있다. 사진 속에 담겨있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울분은 전적으로 그것을 바라봐야 할 이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굶주린 수단 어린이와 때를 기다리는 독수리를 사진에 담은 케빈 카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말할 수 없이 차가웠다. ‘왜 아이를 먼저 구하지 않았냐’는 숱한 비난과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에 대한 생생한 기억 사이에서 끝내 스스로 생을 끊어야 했던 그에게 세계는 다름 아닌 사진 속 ‘독수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독수리’를 향해 겨눈 총구를 끝내 멈추지 않는다. 어둠 속에 숨겨진 ‘독수리’들이 여전히 그들의 렌즈에 끊임없이 비춰지고 있는 까닭이다. 그들의 뷰파인더를 통해 그려진 역사의 밑그림들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가느다란 숨소리처럼 끈덕지게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