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춤에 쓰이는 용어
전통 춤에 쓰이는 용어
  • 이철진 한국춤예술원 대표. 이학박사
  • 승인 2009.03.12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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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춤 용어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어요. 몸짓이라는 것이 몸의 일부인것 처럼 다리, 팔, 몸통, 뭐 이렇게 이름 붙이기가 까다로워요. 예를 들어 축구의 목표는 골이고 이를 위하여 선수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운동 제스쳐는 '차다'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차는 것이 다리의 부위와 몸통 방향에 따라 '차다' 즉 '킥'의 이름을 달리합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춤 역시 다양한 언어가 몸짓에 내재되어 있겠지요? 어쩌면 골을 목표로 하는 축구 경기보다 몸 자체의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하는 춤에 있어서 그러한 용어가 훨씬 많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아는 춤사위 용어는 너무도 일천 합니다. 그리고 별로 사용도 하지 않아요.

제가 학습할 때 들은 이야기도 까치발, 잔걸음 정도가 다 이고, 학습하면서 스스로 생각한것도 ‘공력’이라는 말과 같이 추상적인 면이 있지요. 물론 용어 정의하려고 노력한 -예를들면 박금술선생- 분도 계시지만 성공한 것 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발레의 경우처럼 발모양에 따라 1번에서 5번까지 번호를 매기지도 않으니.... 물론 개인적으로 이러한 노력에 동감하더라도 같은 용어를 쓰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생각해요. 용어를 같이 사용하면 동작이 어느 정도 통일이 되어야 할텐데 선수(?)들은 그것을 거부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에 한국 춤 학습의 특징이 있는것 도 같습니다. 자 그럼 뜸들이지 말고 들어가 볼까요?

▲ 이철진 한국춤예술원 대표. 이학박사
용어 해설에 들어가기 전에 이 용어의 해설은 순전히 제 개인적 차원에서 해석된것 임을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이 용어들에 대하여 더 상세한 해석이 있으면 공유하기를 기대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 차원이란 제가 춤추면서 얻은 경험적 차원이란 말이기도 하구요. 먼저 순수하게 한영숙에서만 쓰이는 용어가 있습니다. 혹시 다음과 같은 말을 아십니까?
 
* 궁굴리다, 지숫다
 
아마도 한영숙선생의 고향인 충청도 사투리라고 생각됩니다. 이 용어들은 한영숙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또 그래서 한영숙류의 특징으로 제가 생각하는 중요한 용어이기도 합니다. 그 말의 뉘앙스로 어떤 몸짓 같은 것을 느낄수 있지요? 몸을 크게 둥그렇게 한다거나 강아지가 무서운 것을 보고 컹컹 거리듯이 몸을 사납게 움씬 거리는 모양... 뭐 그런것 같습니다.

정확하게는 오른발을 앞으로 하고 첫박자에 몸을 숙이고 두 박자에 오른발을 올렸다가 다시 세박자에 오른발을 내려놓으면서 몸을 웅크리고 네 박자에 다시 한번 웅크리는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 지숫기에 의하여 몸은 어떠한 굴곡을 가지게 됩니다. 즉 무릎의 굴신에 의하여 몸전체의 운동이 동시에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지숫기는 일정한 틀이 없어요. 위의 기본이 익숙해지면 걸으면서도 뒤로 오면서도 또는 팔과 함께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서예에서 일획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일획속에 모든 서예의 테크닉과 특징이 모두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제 생각에 춤에도 그런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지숫기 입니다. 이 지숫기에 한영숙의 일획, 일미가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을 하면 한영숙이고 이것을 하지 못하면 아무리 순서를 흉내 내어도 한영숙이 아닌게 되는거죠.
 
* 마루
 
이 역시 한영숙이 사용한 언어입니다. 어느 춤 관련 잡지에 한영숙 선생의 마루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나오더군요. 이것은 영어로 프래이즈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마루는 하나의 춤사위를 바탕으로 한번 나아갔다 돌아오는 하나의 단위를 말합니다. 이러한 마루는 살풀이에 정확하게 나타나 있는데요. 살풀이에는 7마루가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춤을 추다 보면 하나의 동작을 중심으로 나아갔다가 제자리로 돌아와서 정리를 하는 것이 보이는데 이것을 마루라고 본것입니다. 산 마루 처럼 하나의 산등성이를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째건 프래이즈로 해석하면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까치발, 잔걸음, 세발걸음

 이 말들은 한선생 만의 표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리저리 다니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많이 쓰입니다. 까치발은 말그대로 까치의 걸음을 닮은 것 같습니다. 까치는 뒤꿈치를 올리고 걷기 때문에 이 역시 깨끔발 처럼 발의 앞굼치를 사용하는 것이지요. 한영숙의 기본 발동작입니다.

그리고 잔걸음은 발을 잘게 부수어 나가는 것인데,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왼발을 잡아 당기고 다시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어 왼발을 잡아 당기는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한영숙에서는 반복은 하되 이 반복이 빨라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살풀이에서 두번 정도 그리고 태평무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발걸음은 그대로 세발걸음입니다. 서양에서는 투스텝이라고 하는 건데 이렇게 이야기 하면 우리는 수업시간에 버선벗고 옷바꿔입고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불호령이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한영숙에는 투스텝은 없고 세발걸음만 있는 것입니다. 세발걸음을 묘사하면 기본적으로 두박자 속에 세발을 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른발-왼발-오른발 이것이 세발걸음이고 나머지 두박자속에 왼발-오른발-왼발로 마무리하는 것이 살풀이 장단 네박자속에 이루어지는 세발걸음이겠죠.
 
*공력
 
무협지에서 나올법한 이 용어 역시 많이 쓰이는데 춤 보다는 판소리에서 입니다. 일갑자니 삼갑자니 하는 것은 양적으로 표현한 것 같고 제가 보기에는 수련을 하여 공들여 닦은 힘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연습과 수련에 의하여 생겨나게되는 소리나 몸짓의 그늘. 이것이 공력아닐까요? 그래서 공력을 줘야 한다, 공력이 약하다, 공력을 닦아야 한다등등의 말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늘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늘이야 말로 정말 멋지고 근사한 표현입니다. 그늘, 그늘진 춤, 그늘진 소리... 그러니까 햇빛에 가려진 부분 춤이나 소리에 얼핏 보이지는 않지만 그 숨어 있는 부분이 아닐까요? 그러니까 이 그늘은 소리나 몸짓이 가지고 있는 어떠한 신비한 기운, 춤이나 소리가 남을 감동시키게 하는 알수 없는 그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말을 들으면 그것은 대단한 찬사가 됩니다. 아, 아무개의 그늘진 춤이나, 아무개의 그늘진 소리는 남이 흉내 낼수 없는 그 만의 예술적 여운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말로는 하우저의 아우라(AURA) 또는 헤겔의 파토스 정도일 겁니다.
 
*초입
 
보통 판소리에서 본격적인 소리에 진입하기 전의 장단이나 소리길을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조금은 소리가 풀리지 않고 몸역시 최상의 상태를 나타내지 않는 것을 나타냅니다. 초짜랑은 또 틀리죠. 그래서 이 초입과 더불어 무슨무슨 대목이라는 말이 많이 쓰입니다. 예를 들어 판소리에서는 앞글자를 따서 수궁가의 '범피중류' 대목 이라거나 적벽가의 '조조 비난대' 처럼 어떠한 대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춤에서는 마루로 대신하거나 장단이름으로 대신하기도 하지요. 태평무의 겹마치기 부분이라거나 도살풀이 대목 등등... 초입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어떠한 시작 부분이지요.^^

전통춤 움직임의 정통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춤 용어는 새롭게 해석되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춤꾼에게만 요구되어지는 것 이 아니라 관객이나 비평가의 몫이 될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용어가 그나마 잘 정리된 곳이 판소리인것 같은데 이를 기본으로 보다 많은 문화적, 언어적 보고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