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부터 현재까지 세밀하게 살펴보는 학문과 삶의 조화
근대부터 현재까지 세밀하게 살펴보는 학문과 삶의 조화
  • 박기훈, 이상정 기자
  • 승인 2010.08.1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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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최대 인문학 전문 박물관, 인문학 박물관

[서울문화투데이=박기훈, 이상정 기자] 보통 ‘인문학’이라고 하면 ‘고리타분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러한 인문학을 주제로 다룬 박물관이 고등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면? 십중팔구로 학교 내에 조그맣게 위치한, 박물관 같지도 않은 도서관쯤으로 여기고 지나칠 뿐이다. 하지만 이번에 찾아간 인문학박물관(종로구 계동 중앙고등학교 내 위치)은 이러한 생각이 부끄러운 것임을 깨닫게 해준다. 3층의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건물 안에서 다양한 서적과 자료들이 여기저기 앉아 우리네 사람들을 조명하고 있는 인문학박물관. 해가 동그랗게 눈을 뜬 무더운 여름날, 골목과 골목을 갈라가며 종로구 계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인문학박물관 외관(중앙 고등학교 소재)

젊은 인문학 박물관

2008년 7월 1일 일반인 공개를 시작한 인문학 박물관은 같은 해 중앙 중·고등학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원파 김기중(圓坡 金祺中) 기념관을 박물관으로 바꿔 개보수 한 것으로, 다양한 자료들과 서적을 통해 인문학의 대중화를 꾀하는 문화 교육 공간이다.
박물관은 근대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나타내는 4,000여 점의 자료를 섹션별로 정리해 전시하고 있다. 각 섹션에는 서적, 신문, 포스터 등을 통해 인문학적 사고(思考)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볼 수 있다. 

쉽고도 어려운 인문학

인문학이란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반성의 규범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은 지나온 과거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올바른 가치를 가지고 미래를 살아가고자 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 문학, 역사, 예술, 법, 종교 등이 인문학의 범주에 속한다. 이렇게 많은 분야가 있음에도 우리가 인문학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회의 가치를 판단한다는 거시적인 주제 때문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인문학이한 경험과 생활을 통해서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 지 추구하는 학문일 뿐이다.

인문학 박물관의 건립취지도 이러한 인문학에 대한 선입관을 타파하고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인간을 이해한다 - 삶의 뜻과 정서

인문학박물관의 입구를 열고 들어서면 왼편엔 아직 일반인에게 개장하지 않은 인문학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고, 오른편에는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전시실이 들어서 있다. 전시실에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적 방직공장을 건립하고 동아일보를 창간하는 등 교육가, 근대기업가, 언론인, 정치가로써의 인촌 김성수 선생의 삶과 업적에 관련한 서적 및 사진들이 전시돼있다.

2층부터는 본격적으로 인문학 관련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크게 ▲근대화와 생활방식의 변화 ▲근대화와 공론체계의 변화 ▲생활의 이념의 세 가지 주제로 나눠 인간의 발달과정을 보여주고 근대 이전부터 현재까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 1905년에 나온 대한일보의 경부철도 개통식 기사는 20세기 초 근대화가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조명하고 있다. 철도의 개설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지리적 인식이 사람들에게 주어졌고, 이에 따라 사람들의 심상적 경계가 어떻게 확대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2층 전시실 가운데에는 ‘생활의 의미를 묻는다’라는 제목으로 서적들이 둥근 원을 그리며 사회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지침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가운데선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가 눈길을 끈다.

특히, <한국부두노동백년사(전국부두노동조합, 1979)>, <항일학생사(양동주, 청파출판사, 1956)>, <새가정(새가정사, 1956)>, <향토(정음사, 1946)> 등 평소에는 보기 어려운 책들도 볼 수 있으니, 관람을 통해 보다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이외에도 10여 개의 섹션에서 다양한 사진과 신문, 서적을 전시하고 있다. 인문학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친절한 방식으로 전시돼 있으니 삶과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은 하루쯤 종로구 계동으로 발걸음을 옯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인촌의 서적과 생전 어록이 전시돼있는 1층 오른편 인촌전시실
▲인간의 근대화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섹션

 

 

 

 

 

 

 

인간, 바람이 불자 태어났다 - 시대의 숨은 넋

3층에서는 ▲근대적 이성과 감성체계로서의 교육과 예술, 그리고 대중문화의 기능 ▲역사의식은 역사를 만든다와 같은 주제로 역사적·정치적 관점으로 바라본 우리 삶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근대부터 외세의 침략, 일제 강점기, 해방기, 민주화운동, 독재 정치 등 우리 역사에 있어 핵심적인 사건들 속에 숨어 있는 정치 및 철학을 살펴 볼 수 있다.

유명한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획득 기사의 경우(조선중앙일보 1936년 3월 18일), 일제시대 때의 시대적 아픔을 조명하는 동시에 일제의 이념과 손기정, 그리고 중앙일보의 정치적 신념이 충돌하는 이치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정치적 성향과 관련된 서적들 중에서는 박헌영의 <일반정세와 조선의 진로(1946)>가 눈에 띈다. 해방직후 혼란한 시대상을 사회주의적인 측면에서 해결하고자 한 이 서적의 경우 불온서적으로 묶여 있다가 최근에 들어서야 그 연구가 개시됐다.

이밖에도 대중문화 속에 녹아든 인문학적 성향에 집중하는 섹션에서는 이상, 한용운, 윤동주, 김소월의 1950년대 판본 시집을 찾아볼 수도 있다. 또한 1950년대의 영화 포스터와 만화책들도 함께 전시돼 있어 아이들과 함께 방문해도 좋을 듯하다.

▲인간의 근대화 및 다양한 가치를 소개하는 제2전시실 전경
▲제2전시실 한가운데 자리잡은 미셸푸코의 <감시와 처벌>, <권력이론>

 

 

 

 

 

 

 

인문학의 대중화를 꿈꾼다

현재 인문학 박물관에서는 12주 코스로 <인문문화교육> 교양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현재 제 3기 <인문문화교육> 강좌를 시행 중이며, 이번 회차는 앞으로 2주가 남아있다. 각 강좌에서는 다양한 인문학 적 시점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인문학이 얼마나 쉬운지를 설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3기 1회 강좌에서는 박재문 충북대 명예교수의 강의로 조선시대의 문신 이덕무를 주제로 그의 삶과 저서에 관련한 이야기를 진행한 바 있다. 오는 14일에는 일진회를 주제로 일진회의 역사적 배경과 다른 나라에 존재하는 유사 일진회 단체를 파헤치는 시간을 갖는다.

각 강좌는 해마다 열리는 것이 아니라, 한 달 반 간격으로 열리기 때문에 이번에 기회를 놓쳤다 하더라도 너무 낙심해할 필요는 없다. 교양강좌는 인문학 박물관 설립의 목적이 ‘인문학의 대중화’에 있기 때문에 강좌를 신청하면 누구든 참여 가능하다.

강성원 인문학박물관 학예실장 인터뷰


‘인문학의 대중화’ 위해 아주 작은 단체서부터 노력해야

인문학박물관의 남다른 특징이 있습니까

인문학박물관은 단일박물관으로는 굉장히 큰 편이고, 차후 인문학 도서관을 개관할 예정입니다. 현재 지하에는 강당이 따로 있어, 토요일에는 인문학 교양강좌를 여는 등의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문학 박물관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타 박물관과 달리 시대순이 아닌 주제별로 문화사가 전시돼 있습니다. 또한 근현대 문화사를 중심으로 전시가 돼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소장품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지요

전시장에 전시된 전시품을 비롯해 도서관에 소장된 물품까지 포함하면 약 20,000여 점의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기증을 받거나, 딜러를 통해서 구매하거나, 직접 일본으로 가서 구해 온 물품들입니다. 인문학 박물관 계획 당시부터 대략 2년 간 모았습니다.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전시품은 1950년대 해방기의 서적들입니다. 여기에 1920~30년대 서적과 신문들은 소장가치가 높아 아끼는 물품들 중에 하나입니다.

특별히 무게를 두고 있는 인문학 분야가 있으신가요

인문학박물관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역사와 철학입니다. 현재 사회에서 가장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를 통해 인문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여러 가지 교양 강좌와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주요 관람객은 어떤 층인지요

아무래도 학생이 오기는 어려운 내용들로 구성돼있기 때문에 4, 50대의 성인 관람객들이 주로 찾아오십니다. 가끔 가족 단위 관람객도 있습니다. 또한 이곳은 북촌문화벨트안에 있어서 외국 관광객들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외국인의 경우, 안내인이 없으면 무료로 하고 있습니다. 이는 박물관에 간단한 외국어 책자를 제외하고는 외국어 시설이 없기 때문입니다. 해설사의 경우 수요는 많으나 공급이 부족해 구하기 힘든 실정입니다

기획 중인 전시가 있으신가요

내년 1월쯤으로 예정 중인 기획전시가 있습니다. 주제는 현재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수레바퀴 밑에서’라는 기획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인문학이 쇠퇴해가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합니다.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선 아주 작은 단체에서부터 노력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인문학을 학문으로 접근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강좌와 같은 활동들을 통해 생활의 하나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 입니다.

관람객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물관이 개장 한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이들이 존재유무를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좀 더 많은 홍보를 할 예정입니다. 관람객 분들도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인문학을 위해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