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연재] 다시 보는 놓친 영화
  • 황현옥 영화평론가
  • 승인 2010.08.2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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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소년 <빌리 엘리어트>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가릿 대처가 가장 유능한 영국 총리중 2위로 뽑혔다고 얼마전 신문에 났다. 1979-1990년까지 최장수 총리기록과 냉전체제 종식에 상당한 공헌을 한 대처수상은 공기업 민영화와 노조 권한 축소를 통해 비능률의 상징인 영국병을 개혁한 인물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빌리라는 소년이 발레리노가 되기 위해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하지만 대처 집권초기인 1984년, 영국북부 던햄 탄광촌에서 탄광노동자들의 파업이 영화의 큰 배경을 차지한다. 영화는 정치적 색채를 띠지 않고 그 상황만을 카메라속에 담으며 쇠락해가는 탄광촌에서 어른들은 생존이란 문제를, 그 속에 아이들은 장래의꿈을 고민하는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빌리 아버지와 형이 매일 파업에 참여하면서도 서로 의견이 엇갈려 싸우거나, 파업에 참가 안하는 사람들에게 배신자 운운하며 광부들끼리 슈퍼에서 멱살을 잡는 장면, 매일 50센트를 내고 권투나 발레를 하는 탄광촌 아이들, 빨간색 벽돌집들이 성냥갑 모양으로 탄광촌을 물들인 모습, 경찰들이 쉬는 시간 한가롭게 공놀이하는 모습, 장기화된 파업으로 집안형편이 어려워지자 겨울 땔감으로 피아노를 부수는 모습등.. 모두 빌리가 꿈을 찾아가는 어려운 환경을 표현하는 감성적 배경이 된다.

이 영화는 군더더기없이 꼭 필요한 순간만을 편집했는데 그 중 가장 명장면은 빌리가 런던 왕립발레 아카데미에서 편지가 한통 도착했을때 그 내용을 직접 빌리가 읽게 하는 아버지, 형, 할머니가 보여준 배려와 지지이다. 극의 긴장감과 감동을 끌어당기는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역량이 빛난 순간이었다.

 탤런트 김혜자는 예전 인터뷰에서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으냐는 질문에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 할머니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치매 할머니라서 대사도 별로 없고 몇 장면 나오지 않지만 빌리에게 꼭 필요한 가족의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역할이었다. 필자는 그때 김혜자의 말에 공감했다. 그녀가 갖고 있는 배우로서의 욕심이 무엇인지 금방 알 수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빌리 엘리어트>는 영국 감독 스티븐 달드리의 첫 장편 영화였는데 후에 나온 작품 <디아워스><더리더: 책읽어주는 남자>도 훌륭했지만 작품성에선 <빌리 엘리어트>가 최고였다.  열정적이고 섬세한 소년의 감성을 이끌어낸 감독의 연출력과 더불어 1986년생인 빌리역의 제이미 벨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훌쩍 커버린 어른으로 성장하여 2009년 <할람포>-영국 에딘버러를 배경으로한 로맨스 영화, 무척 재미있고 훌륭함-라는 영화의 주연배우로서 역시 뛰어난 감성적 연기를 보여주었다. 발레 선생님역의 줄리 월터스는 <빌리 엘리어트>에서 가장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있는 배우인데 해리포터 시리즈의 위즐리 부인과 맘마미아에서 도나의 친구 로지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낯이 익다. 이 영화에서는 선생님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줘야할지를 보여주는 모범답안같은 역할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빌리 엘리어트>가 뮤지컬로 LG 아트센터에서 공연중이다. 영화를 만들었던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연출하고 피터 달링이 안무를 맡은 이 뮤지컬은 2009년 토니상을 10개부문 휩쓴 작품이다. 비영어권 나라로는 우리나라가 처음 공연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4명의 소년들이 이미 발탁되어 훈련을 거친 후 탭댄스, 발레와 노래를 선보인다. 춤추고 싶은 빌리의 열망과 그 꿈이 뮤지컬에서도 군더더기 없는 감동으로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힌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 영국, 2000 드라마/가족